부작용이 없는 치료법
병을 알면 약이 있다.
병을 다스리지 말고 몸을 다스리라.
병은 몸이 다스리고 몸은 마음이 다스리고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다스리게 하라. 이것이 인체의 법칙이다.
병이란, 건강 법칙을 범한 결과로 생긴 상황에서 육체의 조직이 벗어나려고 하는 자연적인 현상이다. 그러므로 병이 났을 경우에는 원인을 살펴보고, 비 건강적인 생활 습관을 개선하고 몸이 필요로 하는 조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몸은 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자연회복력에 의하여 회복되는 것이므로 몸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약물을 사용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통증을 제거하고, 증상을 완화시켜 주는 것처럼 보이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 주지 않으면 건강 회복은 기대할 수 없다.
건강을 회복하는 유일한 치료법은 사람의 삶 속에 천연계의 법칙과 도덕 법칙을 실천함으로 생활 속에 있는 치료제들을 사용하면서 말씀을 통하여 회복하시는 창조주의 손길을 만나는 것이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각종 암, 고혈압, 당뇨병, 관절염, 아토피, 피부 질환, 간장, 신장, 심장 질환 등은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에 변질이 일어나든지 기능이 저하됨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러한 질병들은 약으로 고칠 수 없는 병으로서 현대 의학이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이미 판명되고 있다. 세포에 문제가 일어나서 생긴 질병은 세포를 정상화시켜 주는 올바른 생활 습관을 길들여야 한다. 성경은 사람의 체질을 아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딤후 3:16) 안내서이므로 사람의 생활은 성경에서 가르침을 받아야 하며, 그렇게 할 때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사람을 능히 고치실 수 있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런던 시청 앞, 거리 한 복판에 높이 솟은 탑의 시계가 고장났다. 많은 사람이 고장 난 시계로 인해 약속 시간에 혼란이 생겼다. 시청에서 기술자들을 불러다 고치게 했으나 아무도 그 고장난 시계를 고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허름한 차림의 노인 한 분이 시장을 찾아와서 내가 고치겠노라고 하며 시계탑으로 올라갔다. 얼마 후, 시계가 정상적으로 되었다. 시장이 하도 신기하여 노인에게 어떻게 이렇게 쉽게 고칠 수 있었느냐고 묻자, 노인은 빙그레 웃으며 “이전에 내가 그 시계를 만들었던 사람이오.”라고 대답했다.」
어떤 기계를 사용하다가 고장이 생겼을 때, 그 기계를 만든 사람을 찾아가면 쉽게 고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몸이 고장 나면 사람을 만드신 창조주께 찾아가서 고침을 받아야 한다. 벧엘 수양원에서는 현대 의학에서 불치병이라고 하는 여러 가지 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처방을 받고 건강이 회복되고 있다.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고 그 말씀이 오늘날 병든 몸을 회복하는 치료제가 되고 있다.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내가 은밀한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기우지 못하였나이다” (시 139:13-15).
아버지의 정자와 어머니의 난자가 결합하여 수정된 생명체가 “나” 이다.
이 수정란은 먼지보다 더 작지만 인체의 여러 기관을 이루는 ‘유전자’가 들어있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하나의 세포가 유전자의 명령대로 분열 증식하여 각 기관을 형성하여 태어나게 되므로 태어난 아이는 말 그대로 세포 덩어리라 할 수 있다.
세포의 수가 늘어나는 것이 성장하는 과정이며, 세포의 기능을 잃어 가는 것이 병이 드는 것이며, 세포가 기능을 정지하는 것이 죽는 것이다.
그런데 태어날 때 생긴 세포가 죽을 때까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세포들은 각각 재생되고 파괴되는 과정을 일생 동안 계속하는데, 건강한 세포가 병들어 죽기도 하고 다시 다른 건강 세포가 그 자리를 메워 병이 낫기도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 몸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건강한 몸에 병이 생길 수도 있고, 병든 몸이 건강을 회복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병이란 완치도 불치도 없는 것이다.
인류는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최고의 걸작품으로 하나님 자신의 분신이 되도록 하셨다.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모든 신경과 근육과 기관에 그분의 생명을 흘려보내는 법을 친히 기록하셨다. 이 법은 사람의 삶 속에서 도덕 율법(십계명)의 원칙과 천연계의 법칙에 순응할 것을 요구한다.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행하여진다. 영계를 주관하는 법칙과 천연계를 주관하는 법칙이 동일한 법 안에 들어 있다. 인체를 주관하는 모든 법칙은 그 시작이 하나님께 있으며 그 특성과 중요성에 있어서 하나님의 율법과 동일하다. 그러므로 사람이 신체의 법칙을 범하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인성과 신성이 협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분의 일 속에서 보여 주시고자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도움 없이 일하지 않으시며,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하여 신성의 능력이 소집되지 않는다. 인간이 그 주어진 능력과 역량을 활용할 때에 그에게 힘을 주시고 그와 협력하시는 것이다.
그분의 모든 허락에는 하나의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순종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생명적인 관계를 지속함으로 영양분을 공급 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죄(불순종)가 없는 곳에는 질병도 없는 것이다. 성경에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죄의 결과가 죽음이라면 죄와 죽음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질병과 고통이며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고 구원의 길에 들어가면 죄 용서와 구원 사이에서 또다시 회복이 일어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인류가 살아가는 원칙과 목적에 결정적인 변화가 있지 않으면 모든 사람이 멸망할 것을 아셨다. 그것이 그분의 심령을 누르는 무거운 부담이었다. 그분께서는 당신께서 구원하실 온 인류에게 작용하고 있는 죄악의 세력을 보셨다. 온갖 질병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의 상태를 보셨고, 사단의 노예가 되어 비참하게 끌려 다니는 불쌍한 인류를 보시며 눈물을 흘리셨다. 사랑의 주님께서는 인류를 죄와 그 결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친히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다.
그분은 지금 아버지 앞에서 우리의 대변인으로 중보하고 계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다시 회복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희생으로 얻게 된 은혜 때문이다. 그분의 죽으심은 죄 지은 인류의 죽음을 대신했고, 그분이 죽으심으로 내놓으신 그 생명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회복과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마 8:17).
법은 사람의 안전을 위하여 세워진 보호망이다. 교통법규를 어기면 사고가 일어나고, 도덕 법칙을 어기면 사회가 문란해지고, 건강 법칙을 어기면 질병이 생긴다. 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범하므로 얻는 고통은 하나님이 내리는 저주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선택한 결과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속죄로 말미암아 죄인에게는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었으며 오늘날도 그분은 범법한 자에게 “네 죄는 내가 다 책임질테니 너는 다시 살아라”고 하시며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져”(시 107:20)주시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이며 인간에게 주어진 희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