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저는 45세, 이름은 김○○ 입니다. 알코올 중독 증세와 우울증 때문에 이곳 벧엘수양원에 왔습니다. 저의 지난 시절은 공명심, 권세욕, 자만심, 정욕, 복수심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안기부, KOTRA(무역진흥공사), IBM 등 한국에서 가장 좋은 기업에서 저를 부르고 시험에 합격하기도 했습니다. 몇 백대 일의 경쟁을 물리치고 중앙일간지, 한국일보, 서울경제신문에 들어가 정치부, 외신부 기자 생활을 했습니다. 헛된 지식으로 충만해 있었고 지나친 자신감에서 오는 만용으로 혐오스런 인간이었습니다. 내 말이 모두 옳고 내가 가진 지식이 진리인 줄 알았습니다. 매일 먹고 마시고 쾌락에 젖은 도시에서 영혼의 빈털터리로, 괴로움에 지친 도시의 유목민으로 살아오면서 고독감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짧은 기간의 결혼이 이혼으로 이어졌고 아들 양육 때문에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왔습니다. 이혼과, 그토록 원했던 기자생활을 중단해야 하는 절망과, 그 고뇌 속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보람을 찾으면서 2년 동안에 부산에서 최고의 영어강사가 되었습니다. 인기가 하늘 찌르듯 했고 그 결과 큰 학원의 원장이 되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더욱더 저를 기고만장하게 만들었고 대단한 능력으로 여겼습니다.
거듭되는 아집과 자만심으로 저는 하나의 거대한 거짓과 모순 그 자체였습니다. 나의 말은 남에게 인정받기 위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았고 내가 가진 지식은 한낱 돈 버는 도구였습니다. 내 행동은 언제나 과장되어 있었고, 비겁한 쥐처럼 겁이 많으면서도 항상 만용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남에게 잘 보이고 인정받고 잊혀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쳤습니다. 남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진실한 나 자신이 없었습니다. 욕망과 쾌락과 미혹에 빠진 더럽고 비참한 영혼의 알거지였습니다. 그러나 비옥하지 못한 밭에서 자란 나무가 오래가겠습니까? 열매 없는 무성한 나무에 불과했습니다.
그토록 일취월장 하던 학원이 IMF 때 위기가 왔습니다. 학생이 계속 증가하니까 사태파악도 못하고 학원을 확장했고 늘어난 강사비와 한창 진행 중인 공사를 맡았던 회사가 부도나 그 공사비까지 떠맡다 보니까 믿기 어려울 정도의 짧은 기간에 학원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몇 년간은 기억하기도 싫습니다. 술독에 빠져 살았고 가치관의 혼돈 속에서 자살까지도 생각했습니다.
나를 지탱해 주던 모든 것이 순간적으로 사라진 공허함은 술이 아니면 채울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불쌍한 얼굴을 가진 내 자신을 발견하고 죄의 노예, 술의 노예, 타락한 영혼의 노예가 되어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마침내 항복의 흰 백기를 들고 제 발로 보호구역을 도망쳐 나온 인디언처럼 이곳 하나님의 집(벧엘수양원)으로 찾아왔습니다.
저는 이곳이 하나님 집인 줄도 몰랐습니다. 하나님 집에는 정신적 물질적 양식이 많아 수많은 사람이 먹고도 남아도는 곳이었습니다. 저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마음으로 말했습니다. “항복합니다. 예수님 무조건 항복합니다. 이제서야 탕자인 제가 아버지 집에 돌아왔으니 저를 보호하시어 아버지 집에 계속 머물 수 있기에 합당한 자가 되도록 도와주세요.”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곳에 들어와서 며칠 동안은 번민과 한숨의 나날이었습니다.
1주일 과일금식이 끝나고 비로소 원장님의 말씀 속에서 세포까지 강하게 치고 지나가는 빛을 발견했습니다. 정말 이상한 기쁘고도 야릇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때 이후, 내 마음속에서는 예수님을 만나려고 발버둥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 몸 속에서는 주님을 닮으려는 모습과 아직도 남아 있는 자아가 함께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모순 덩어리인 제가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신 사랑의 주님을 어떻게 만나겠습니까?
계속되는 혼돈과 갈급함 속에서 10일간의 물 금식에 들어갔습니다. 처음 며칠은 고통스러웠지만 마음이 그토록 가벼운 적이 일찍이 없었습니다. 완전히 제 자신을 내려놓기 위해 눈물과 함께한 불면의 밤을 보냈습니다. 매일 기도했습니다. “예수님! 정말로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너무나도 못났습니다. 주님을 알면서도 모르는체 한 죄를 용서해주십시오. 당신이야말로 저에게 생명의 힘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당신이 있으면 저는 절망에서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있으면 불행을 딛고 일어 설 수 있습니다. 더 이상 비참하지 않습니다. 천지가 생겨나기 전부터 계셨던 주님! 저는 주님을 믿습니다. 세상이 끝날 때까지 저와 함께 계셔 주십시오. 너무나 고마우시고 좋으신 주님, 감사합니다.”
이 순간 순간들을 하나님께서는 이제나 저제나 먼발치에서 보시면서 기다리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주님은 계속 나타나 주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만 아버지께 돌아온 행위 하나로도 엄청난 축복을 받았다’ 라고 자위하면서 말씀을 파고들었더니, 그토록 보고 싶었던 예수님이 임재하심을 느꼈습니다. 먼 곳에서가 아닌 바로 저 옆에 계셨습니다.
엘렌 G. 화잇 선지자의 글 <시대의 소망, 생애의 빛, 건강생활의 지혜>, 성경과 이곳 원장님의 강의 속에 주님이 계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장 3절).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한복음 6장 63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장 10절).
한 구절 한 구절 말씀을 읽고 씹어 먹었습니다. 그때부터 내 마음은 법열이 흘러넘치고 무명의 온갖 어둠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그 말씀이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씨앗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저는 홀연히 눈이 떠져서 어둠이 걷혔고 들을 귀가 열려서 나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씨가 되어 싹이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오! 하나님 아버지, 이토록 가까이 계셨군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달려와 껴안고 입 맞추고 빙긋이 웃음을 주시는군요. 왜 이토록 간절함과 새로움과 경외심을 고통 속에서 주십니까, 감사합니다.’
터져 나오는 희열과 눈물의 북받침으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좋으신 주님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저와 함께 계십니다. 그것도 바로 내 곁에서... 제가 마음을 돌려 예수님을 만난 순간 바로 그 순간이 죽음에서 새 생명으로 탄생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집안 식구들이 정신병원까지 집어넣으려고 한 저를 다시 태어나게 하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주님은 이제 내 안에서 나와 함께 늘 계십니다. 나처럼 미소 짓고, 눈물을 흘리며, 내가 잠들어 있을 때도 주님은 깨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생명입니다. 나의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부도덕하고 무신론적인 방송, 출판, 영화가 범람하고 인간의 영혼이 타락한 이 시대에 내가 말하는 수업과 내가 쓰는 책과 내가 부르는 노래 속에서 주님의 빛이 스며들어 어둠을 물리치는 도구가 되겠습니다. 베드로는 그 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굳은 신념과 주님을 향한 타오르는 불같은 정열과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것을 생각할 때마다 흐느껴 울어 항상 손수건이 젖어 있었답니다. 저도 예수님을 향한 불타는 정열과 뜨거운 사랑을 가진 베드로처럼 살겠습니다.
요즈음은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을 열심히 탐구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성경은 지난 역사이자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너무나 정확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원인 모를 질병,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지진, 해일, 테러 등은 예수님 재림의 임박함을 기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세 천사의 기별과 영원한 복음의 전파로 본향 에덴으로 향한 준비 기간이며, 채식을 비롯한 건강 개혁의 시기라고 봅니다. 성소진리, 구속의 경륜 등이 너무나 절실하게 마음에 다가옵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참 도구가 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직도 하늘을 보지 못하고 어두운 세상의 명예와 재물에 몰두하고 있는 내 이웃과 가족들에게도 이 빛이 비추어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