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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ble Bridge - Adventist Movement

연구서적

기독교회사를 살펴보면 아리안파쏘시니안파, 그리고 사벨리안파유니테리안파에 속한 사람들은 성령을 단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하나의 능력 또는 감화력으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당시 정통교회로부터 이단으로 취급되었다. 오늘날도 이러한 신학사상을 고수하는 교파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여호와의 증인교이다.

한번은 여호와의 증인교에 다니는 한 청년을 만났다. 여러 가지 교리에 관해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 청년에게 “성령은 개성을 가진 인격적인 존재자 하나님이신가? 아니면 하나의 능력이나 감화력   으로 생각하는가?”라고 질문을 했다. 그 때 그 청년은 “성령은 인격적인 존재자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성령은 단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서 나오는 하나의 능력에 불과합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성령에 관한 그릇된 지식을 가진 자들이 있다. 즉 성령은 하나님과 그리스도 사이에서 나오는 하나의 능력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삼위일체 되신 제3위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의 추상적인 능력이나 감화력으로만 알고 있는 자들이 있다.

이러한 그릇된 지식의 결과로 말미암아 크나큰 오류에 빠진 자들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한 때 재림교인이라고 자칭하던 자들 가운데 성령은 인격적인 존재자 하나님이 될 수 없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자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그리스도와 아버지의 영인 성령을 삼위일체 교리를 통해 독립된 개체의 성령 하나님이라는 실체로 만들고 경배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성령 하나님은 삼위일체 교리를 통해 교회에 들어온 사단의 영이다.--사단의 영인 성령 하나님을 믿음으로 교회는 ‘나는 저 구름 꼭대기에 올라가 가장 높으신 분처럼 되리라’(사 14:14 공동번역)고 한 사단을 경배하는 것이다”(홍영선, 경배와 흔들림, p. 11;  지구종말, pp. 215, 348). 

이처럼 성령의 개성을 부인하면서 삼위일체 교리에 나타난 성령은 사단의 영이며, 따라서 성령을 경배하는 것은 사단을 경배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오류가 아닐 수 없다. 그러한 가르침에 현혹되는 신자들이 있다는 자체가 서글프기 그지없다.

이러한 오류의 근본적인 요인은 어디에 있는가? 성령은 개성을 가진 인격체로 알지 못하고, 하나의 능력이나 감화력과 같은 추상적 개념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오류이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은 알면서도 성령 하나님을 모른다면 기독교의 신관((神觀)을 확실하게 갖지 못한 사람이며, 또한 충분한 그리스도인의 경험을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성령은 개성을 가진 인격적인 존재자이시다. 개성을 가진 인격적인 존재자의 개념이 무엇인지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개성이란 말은 일반적으로 지성, 감정, 의지의 기본적인 특성을 지닌 것으로 정의를 내린다”(John F. Walvoord, The Holy Spirit, p. 6).

여기에서 사용되는 개성 또는 인격이란 용어의 개념은 지, 정, 의의 특성을 소유한 인격적인 존재자를 의미한다. 즉 무엇을 알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행하는 특성을 가진 존재자를 인격적인 존재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능력, 힘 또는 감화력은 인격적인 존재자가 아니라 추상적 개념이요, 무생명체이며, 비인격체이다. 추상적 개념을 가진 능력이나 감화력은 생명도 없고, 무엇을 알거나, 느끼거나, 뜻에 따라 행하는 특성이 없다. 그러나 성령은 능력 자체가 아니라 그 능력을 소유하신 인격적인 존재자이시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과 똑같이 성령 하나님도 개성을 가진 인격적인 존재자이시다.

그러면 성령은 개성을 가진 인격적인 존재자라는 성서적 증거는 무엇인지를 고찰해 보도록 하자.


1. 성령은 개성을 가진 인격적인 존재자라는 성서적 증거


(1) 성령은 인격적인 속성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① 지성을 소유하고 계시다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10).

여기에 “통달하신다”는 말은 무엇이든지 “다 아신다”는 뜻이다. 성령은 성부 하나님의 깊은 생각까지도 다 아시는 지성을 소유하고 계시다. 성령은 사람의 동기와 생각을 다 감찰하시고 아시는 분이시다. 




② 감정을 소유하고 계시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케 말라”(엡 4:30).

성령은 탄식도 하시며, 근심도 하시는 감정을 소유하고 계신다. 이러한 감정은 오직 인격적인 존재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성이다. 만일에 성령이 능력이나 감화력과 같은 추상적 개념이라면 어떻게 탄식하며 근심할 수가 있겠는가?


③ 의지를 소유하고 계시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고전 12:11).

성령은 그의 뜻에 따라 각 사람에게 성령의 선물을 나눠주시는 분이시다. 어떤 이에게는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지식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고전 12:8-10), 등등의 선물을 그의 뜻에 따라 각 사람에게 나눠주시는 분이시다. 이와 같이 성령은 그 뜻대로 행하시는 의지를 분명히 가지고 계시다.

이처럼 성령은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소유하고 있다. 이것은 성령이 단순한 능력 자체가 아니라 인격적인 존재자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명백하게 증거하고 있다.

성령은 개성을 가진 인격적인 존재자라는 성서적 증거는 또 무엇인가?


(2) 성령은 인격적인 활동을 하신다는 점이다


① 가르치신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요 14:26).

“가르치는” 활동은 인격적인 존재자만이 할 수 있는 행위이다. 추상적 개념인 능력자체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가 없다. 그러나성령은 우리에게 구원의 진리를 가르쳐 주신다. 인간이 구원에 이르는 모든 진리를 가르쳐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시다.


② 생각나게 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예컨대 엄마가 어린 아들에게 생일에는 좋은 선물을 사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하자. 생일날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 사랑스런 아들을 보면서 엄마는 그가 했던 약속을 상기시켜준다. 다시 상기시켜주는 행위는 인격적인 존재자만이 할 수 있는 활동이다. 능력이나 감화력과 같은 추상적 개념은 우리에게 무엇을 상기시켜주거나 생각나게 해줄 수가 없다. 그러나 성령은 인격적인 존재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기억해 두었던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생각나게 해주신다.


③ 증거하신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 15:26).

증거하는 활동은 인격적인 존재자만이 할 수 있는 행위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하시는 주요사역 가운데 하나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이시라는 것을 증거해주는 일이다. 그러므로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통해서만 우리는 구주되신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만나는 체험을 할 수가 있다.


④ 중보하신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사실상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께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중보의 간구를 해주신다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중보의 기도는 오직 인격적인 존재자만이 할 수 있는 행위이다.


⑤ 말씀하신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딤전 4:1).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역사는 성령께서 직접 지도하신 역사이다. 인격적인 존재자이신 성령께서 하나님의 사업을 직접 지도하셨다. 주의 종들을 인도하시며, 어느 선교지역으로 가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효과적인지를 직접 말씀하시고 지도하셨다.


⑥ 명령하신다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행 13:2).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여럿이 있었다. 그 때에 성령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명령하셨다. 유대인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두 사람을 따로 세우라고 명령하셨다. 이것은 인격적인 존재자만이 할 수 있는 활동이다.


⑦ 책망하신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

여기에 “책망하다”라는 말은 원어적으로 “--을 깨닫게 하다”는 뜻이다. 성령은 죄를 깨닫게 해주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구원을 깨닫게 해주실 뿐만 아니라 계속적으로 죄를 범하는 자에게 심판이 있을 것을 경고하시는 분이시다.   


⑧ 거듭나게 하신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

거듭남의 경험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경험이다. 우리의 심령에 새로운 생명을 낳게 하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성령께서는 말씀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우리를 거듭남으로 인도하신다. 성령은 단순한 능력이나 감화력이 아니라 우리의 심령을 거듭나게 하시는 인격적인 존재자 하나님이시다.


⑨ 성화시켜 주신다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 3:5).

우리의 성품을 거룩하게 변화시켜 주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시다.

우리로 하여금 신의 성품에 참여케 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시다.

“마음이 청결케 되는 것은 성령에 의한 것이다. 성령을 통하여 신자들은 신의 품성의 참여자가 된다”(시대의 소망, p. 671).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의 마음을 차지하게 되면 우리의 생애를 변화시킨다”(상게서, p. 173).

인격적인 존재자이신 성령 하나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거룩하게 변화시키셔서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으로 성화시켜 주신다.

이와 같이 성령은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며, 증거하시고, 중보하시며, 말씀하시고, 명령하시며, 책망하시고, 거듭나게 하시며, 성화시켜 주신다. 구속 사업에서 성령 하나님의 활동과 역사는 절대적으로 필수적이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을 효력 있게 만드시는 분은 바로 성령 하나님이시다. 이러한 활동은 인격적인 존재자만이 할 수 있는 활동이다. 추상적인 개념인 능력이나 감화력 자체는 이러한 인격적인 활동을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성령은 능력이나 감화력 자체가 아니라 그 능력과 감화력을 소유하신 인격적인 존재자 제3위의 하나님이시다.

성령은 개성을 가진 인격적인 존재자라는 성서적 증거는 또 무엇인가?


(3) 성령은 인격적인 취급을 받으신다는 점이다


① 모욕을 당하신다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히 10:29).

“은혜의 성령”이란 명칭은 우리에게 “은혜를 알게 해 주시는 성령”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떠한 은혜를 알게 해 주시는가? 성령이 하시는 사역 중의 하나는 죄인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이다. 곧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은혜를 알게 해 주신다. 그러므로 성령 하나님께서 알게 해 주시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멸시하는 것은 바로 증거자가 되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성령은 모욕도 당하신다. 모욕은 인격적인 존재자가 당할 수 있는 수모다. 

그러나 능력이나 감화력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은 모욕이나 수치감을 느끼는 감정이 없다.


② 속임을 당하신다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행 5:3).

성령이 강림하신 후 초대교회는 성령이 충만한 교회였다. 성령 하나님께서 주의 종들을 통하여 복음사업을 지도하시는 시대였다. 이러한 때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고 거짓말을 함으로 불행하게도 죽임을 당하였다. 이처럼 성령은 속임도 당하신다. 성령은 하나의 능력이나 감화력과 같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분명히 인격적인 존재자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우리에게 증거해 주고 있다. 


③ 훼방을 당하신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마 12:31).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가장 두렵고 가장 큰 죄 중의 하나이다.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이다. 그들에게는 오직 두려운 심판이 기다릴 뿐이다. 이처럼 성령은 훼방도 당하신다. 이것은 성령이 인격적인 존재자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우리에게 증거해주고 있다.


④ 거절을 당하신다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 12:32).

사람이 용서받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가장 두려운 죄는 성령을 거역하는 일이다. 성령의 애소하시는 음성을 끝까지 거절하고 완고히 고집하는 자는 성령 하나님도 그 영혼을 구원할 수가 없다. 결국 용서함을 받지 못하는 불행한 자가 되고 만다. 이처럼 성령은 사람들에게 거절도 당하신다. 이것은 성령이 인격적인 존재자이심을 우리에게 증거해주고 있다.  

이와 같이 성령은 모욕을 당하시고, 속임을 당하시며, 훼방을 당하시고, 거절을 당하신다. 이것은 인격적인 존재자만이 받을 수 있는 취급이다. 마이크는 성능이 나쁘다고 아무리 비난을 해도 그 말을 알아듣거나 느끼지를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비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추상적인 개념인 능력이나 감화력 자체도 마찬가지다.  

“개성이 있다는 말은 자기의식, 자기자각, 자기의지를 가지고 자기결단을 내릴 수 있는 존재자임을 가리킨다. 개체란 접근할 수 있고, 신뢰를 받거나 의심을 받을 수 있으며, 사랑이나 미움을 받을 수도 있고, 경배나 모욕을 받을 수 있는 존재자이다”(LeRoy  E.  Froom, The Coming of the Comforter, p. 45).

성령은 개성을 가진 인격적인 존재자 하나님이시라는 성서적 증거는 또 무엇인가?


(4) 성령은 인격적인 신분으로 소개되었다는 점이다


① 증거자 또는 증인 (Witness)의 신분으로 소개되었다

“그것에 관하여 성령께서도 우리에게 증거자가 되셨으니”(킹제임스 한글역, 히 10:15).

“증인이란 용어는 확실한 증거 또는 법적근거에 대한 보충설명을 나타내는 법적 용어이다. 분명히 지성적 대리자만이 이러한 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Arther W. Pink, The Holy Spirit, p. 14). 

종종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 주변에서 그 사고를 목격한 증인을 필요로 한다. 자동차 자체는 증인의 직무를 수행할 수가 없다. 오직 지성적 대리자만이 증인의 직무를 수행할 수가 있다. 

이처럼 성령은 우리에게 증거자 또는 증인이 되신다. 그리스도의 몸을 속죄제로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하게 된 것을 성령은 증인으로 증거해주신다. 이것은 성령이 능력이나 감화력 같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지성을 가진 인격적인 존재자임을 분명하게 증거해주고 있다.


② 보혜사 (Comforter)의 신분으로 소개되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 14:1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 15:26).

“보혜사란 말은 영어로 Comforter(위로자)이다. 이 말의 원어인 헬라어는 ‘위로자’보다 더 고상한 뜻을 가진 ‘파라클레토스’이다. 그 뜻은 ‘곁에’라는 뜻을 가진 전치사 ‘파라’와 ‘부르심을 받은 이’라는 뜻을 가진 ‘클레토스’가 합해서 된 복합어로서 “곁에 있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즉 “보혜사”란 말은 “신자 곁에 있으면서 위급한 일을 당할 때마다 도와주시는 분”이라는 뜻으로 인격적인 존재자임을 명백하게 보여준다”(R. A. Torrey, The Person and Work of the Holy Spirit, pp. 67. 68).

우리말 성경에는 “보혜사”로 번역되어 있지만, 영문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 명칭으로 번역되어 있다.  킹제임스역에는 Comforter(위로자), 개정표준역과 새국제역에는 Counselor(상담자), 현대역에는 Helper(도와주는 자) 등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러한 명칭들은 곧 성령은 인격적인 존재자 제3위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분명하게 입증하고 있다.

성령은 개성을 가진 인격적인 존재자라는 성서적 증거는 또 무엇인가?


(5) 성령을 가리킬 때 남성 대명사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 15: 26).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요 16: 7, 8).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 16: 13, 14).

이처럼 성령을 가리킬 때 남성대명사를 사용하고 있다.

“신약 성경 가운데 헬라어 “프뉴마” 즉 “영”이란 말은 중성명사인데 통상적으로는 중성대명사로 받는다. 그러나 여러 경우에 있어서 (보혜사 성령을 가리킬 때) 남성대명사가 사용되어진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남성대명사를 사용한 이유에 대한 유일한 설명은 그 대명사가 인격자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John F. Walvoord, The Holy Spirit, p. 7).

성경에서 “영”이란 단어는 중성명사임으로 통상적으로 중성대명사로 받는 것이 문법적으로 맞는 것인데, 보혜사 성령을 가리킬 때는 남성대명사로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혜사 성령을 가리킬 때 “그가” 또는 “그를”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이것은 그 남성대명사가 인격적인 존재자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문법적으로도 분명하게 입증하는 것이다. 

이상의 성서적 증거들은 한결같이 성령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단순한 능력이나 감화력이 아니라, 무엇을 알고, 느끼고, 행하는 인격적인 존재자요, 개성을 가지신 분, 즉 제 3위의 하나님이시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성령은 개성을 가진 인격적인 존재자 하나님이시라는 증거를 성경에서 고찰해 보았다.

그러면 이제는 예언의 신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자. 영감으로 기록된 예언의 신의 사상이 성경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음을 우리는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성령은 개성을 가진 인격적인 존재자라는 예언의 신의 증거는 무엇인가?


2. 성령은 개성을 가진 인격적인 존재자라는 예언의 신의 증거


(1) 성령은 개성을 가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하나의 개성을 가지고 계신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개성을 가지고 계신 성령께서는 이러한 근거를 통하여 일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다”(복음전도, p. 616).

“성령께서는 하나의 개성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다...그분은 또한 신성에 속한 개성을 갖고 계셔야만 한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그분은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감추어져 있는 비밀을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상게서, pp. 617).


(2) 성령은 신성의 제3위의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대리자이신 신성의 제 3위가 되신 분을 보내시기로 결심하셨다”(오늘의 나의 생애, p. 36).

“죄는 신성의 제 3위가 되신 분의 강력한 작용을 통해서만 물리칠 수 있고 이겨낼 수 있으며, 그분은 제한된 능력을 가지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충만한 가운데 오실 것이다”(시대의 소망, p. 671). 


(3) 성령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하늘의 지극히 높으신 세 분, 곧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과 협력해야 하며, 이들은 우리를 통해 일하시며, 우리를 하나님의 동역자들로 만드실 것이다”(복음전도, p. 617).

“성부, 성자, 성령의 세 분의 별개의 개체들이 인류를 위해 함께 일하신다”(Manuscript 27a, 1900. 7).

“영원 지존하신 삼위일체, 곧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께서는 제자들을 인간을 초월한 힘으로 무장시켜 저들과 함께 사업을 이루기 위하여 전진하시며 세상 사람들로 죄를 깨닫게 하실 것이다”(복음전도, p. 616).

“성부, 성자, 성령은 무한한 능력을 가진 전지하신 분들로서 하나님과 진실 되게 언약관계에 들어가는 자들을 받아주신다”(Manuscript 27a, 1900, published in SDA Bible Commentary vol. 6, p. 1075).



(4) 성령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이시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이시나 인간적인 개체로 계시지 않으시며 따라서 독립적이시다”(상게서, p. 669).


(5)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을 효력 있게 만드는 분이시다


“세상의 구주께서 이루신 일을 효력 있게 만드시는 분은 성령이시다”(상게서, p. 671).


(6) 성령은 능력의 근원자이시다


“성령이 도우시면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다 할 수 있다...성령이 하시는 사업은 무한히 크다. 이 성령으로부터 힘과 능력이 하나님의 일군들에게 임하는 것이다”(복음사역자, p. 289).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 1:8). 

힘과 능력을 소유하신 성령 하나님이 우리에게 임하실 때, 비로소 우리는 그 권능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상의 진술들은 성령은 개성을 가진 인격적인 존재자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다.

성령은 아리안파나 유니테리안파처럼 단순한 능력이나 감화력이 아니라 그 능력과 감화력을 소유하신 인격적인 존재자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명백하게 알 수 있다.

그러면 성령은 하나의 능력이나 감화력이 아니라 그 능력을 소유하신 인격적인 존재자 하나님이시라는 교리가 왜 그토록 중요한가를 살펴보도록 하자.

3. 성령은 개성을 가진 인격적인 존재자라는 교리의 중요성


이 교리는 그리스도인 생활에 있어서 실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 준다. 성령을 단순히 능력으로 볼 때의 우리의 태도와, 개성을 가진 인격적인 존재자 하나님으로 볼 때의 우리의 태도는 큰 차이를 일으킨다. 

성령은 비인격적인 능력 자체가 아니라 그 능력을 소유하신 인격적인 존재자 하나님이라는 점을 알게 될 때에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갖게 되는가?


(1)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임재하시도록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태도를 갖게 된다


“성령이 어느 곳에나 거하기 전에 깨끗이 죄를 씻어버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성령은 거룩한 성령이며 죄와 오욕이 있는 곳에는 거하실 수가 없다”(레만 스트라우스, 성령론, p. 113).

성령은 능력이나 감화력 자체가 아니라 그 능력과 감화력을 소유하신 인격적인 존재자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면, 우리가 성령 하나님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임재하시도록 영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거룩하신 인격적인 존재자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임재하시도록 먼저 마음의 그릇을 정결하게 준비하는 태도를 갖게 된다. 왜냐하면 성령 하나님은 거룩하신 영이심으로 죄와 오욕이 있는 곳에는 결코 거하실 수가 없기 때문이다.

때때로 수돗물이 잘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수도 파이프를 점검해보면 그 속에는 녹이 쓸어서 물이 잘 흐르지 못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 때에 수도 파이프의 녹을 제거하고 찌꺼기를 청소하고 나면 물이 잘 흐르게 된다. 우리의 심령의 통로도 마찬가지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령 속에 임재하실 수 있도록 심령의 그릇을 정결케 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오늘 우리는 늦은비 성령의 능력이 우리에게 부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령 속에 충만하게 임재하시기 위해 우리 마음의 그릇을 정결하게 하고 있는가? 죄와 허물로 얼룩진 우리의 심령을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고 있는가?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임재하시고, 우리를 통해 막힘없이 역사하실 수 있도록 마음의 통로를 깨끗이 준비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성령은 능력이나 감화력 자체가 아니라 그 능력을 소유하신 인격적인 존재자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갖게 되는가?


(2) 내가 성령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나를 사용해

주시도록 내 맡기는 태도를 갖게 된다


“만일 우리가 성령을 단순히 하나의 능력이나 감화력으로만 생각한다면, ‘어떻게 해야 내가 더 많이 성령을 받을 수 있을까’하고 끊임없이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성경의 가르침대로 성령은 거룩하신 존재자로 생각한다면 오히려 ‘어떻게 해야 성령께서 나를 더 많이 사로잡으실 수가 있을까’하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R. A. Torrey, The person and Work of the Holy Spirit, p. 8).

“우리는 성령을 사용할 수가 없다. 성령이 우리를 사용하셔야 한다”(복음사역자, p. 285).

한 번은 한 젊은 전도자가 구도자에게 성경을 가르치게 되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성경구절을 펼쳐 읽으면서 그 구도자에게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도록 열심히 호소하였다. 그러나 그 구도자의 반응은 냉담하였다. 그 후에 그 전도자는 그 구도자를 토레이 목사에게 데리고 가서 성경말씀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때 토레이 목사는 성경구절을 펼쳐서 읽은 다음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도록 호소하였다. 그때 그 구도자는 마음 문을 열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다. 그 구도자가 돌아간 후 그 젊은 전도자는 토레이 목사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하게 되었다. “목사님, 참 이상한 일입니다. 목사님께서 인용한 똑같은 성경구절을 저도 읽으면서 호소했지만 구도자가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목사님께서 똑같은 성경구절을 가지고 그 구도자의 마음에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결심시킬 수가 있었습니까? 참으로 이상한 일이네요.” 그 때 토레이 목사는 그 젊은 전도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성경구절의 문자만을 가지고 구도자를 결심시키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실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성경구절을 통하여 성령께서 역사하실 뿐만 아니라 나를 사용해주시도록 내 맡기는 태도를 가졌습니다. 그때에 성령께서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당신과 내가 다른 점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사용할 수가 없다. 성령이 우리를 사용하셔야만 한다. 성령께서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시도록 내맡기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성령께서 나를 도구로 사용하시도록 내맡기는 태도를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한 태도이다. 

우리가 말씀을 연구할 때나, 또는 말씀을 가르칠 때, 항상 성령께서 나를 통하여 역사하시도록 내맡기는 태도를 반드시 가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성령은 능력이나 감화력 자체가 아니라 그 능력을 소유하신 인격적인 존재자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갖게 되는가?

(3) 모든 영광을 성령 하나님께 돌리는 겸손한 태도를 갖게 된다


우리가 성령은 무한한 능력을 소유하신 인격적인 존재자 하나님으로 알고, 그분께서 우리를 통하여 선한 일을 이루어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에는 우리로 하여금 더욱 겸손케 만들어 주며, 모든 영광을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돌리는 겸손한 태도를 갖게 해준다.

사도 바울은 능력의 근원을 잘 알았으므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자랑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자기를 통하여 선한 일을 이루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렸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였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4, 5).

우리를 통하여 선한 일이 이루어졌을 때 그 일을 이루도록 능력을 주신 성령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리도록 하자.

성령은 단지 감화력이나 능력 자체가 아니라 그 능력을 소유하신 인격적인 존재자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갖게 되는가?


(4) 성령 하나님을 예배의 대상으로 경배하는 태도를 갖게 된다


“성령의 개성에 관한 교리는 예배의 견지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다. 성령은 거룩하신 분이요, 우리의 찬양과 신앙과 사랑의 대상이 되기에 합당한 존재이신데도 우리가 그처럼 성령을 이해하거나 인식하지 못한다면 이는 신성에 합당한 찬양과 사랑과 신뢰를 도적질하는 것이다”(R. A. 토레이, 성경의 교의, p. 276).

성령은 하나의 능력이나 감화력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예배의 대상이 되시는 인격적인 존재자 하나님이시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과 똑같이, 성령 하나님은 경배와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성령을 단순히 하나의 능력이나 감화력으로만 곡해함으로, 하나님의 백성들로부터 마땅히 받아야할 경배와 영광과 찬양을 상실시키는 것이야말로 하나의 큰 죄가 아닐 수 없다. 이것처럼 성령 하나님을 모욕하고 슬프시게 하는 죄가 또 무엇이 있겠는가? 성령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무지와 이해의 부족으로 성령 하나님께 돌려야할 경배와 영광과 찬양을 제외시켜버린다면 이것처럼 성령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는 죄가 또 어디 있겠는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다.

성령은 단지 능력이나 감화력 자체가 아니라 그 능력을 소유하신 인격적인 존재자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갖게 되는가?


(5) 성령은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이시라는 신앙을 갖게 된다


“성령의 신성은 본래부터 그리스도인 신앙의 주요교리가 되어져 왔다. 기독교 시대 중 4세기경에 있었던 아리안 논쟁(The Arian Controversy)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개성과 신성에 관한 정통적인 교리는 항시 정립되어졌다.--아리우스(Arius)는 본래 성령의 개성을 주장했지만 후에 와서는 성령의 개성과 신성을 부인하고 말았다. 그의 견해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 정죄를 받았으며 그는 이단자로 낙인을 찍히고 말았다. 그때로부터 오늘날까지 정통적인 그리스도교회는 성령의 신성과 개성을 인정해왔다. 핫지(Hodge)가 표현한 대로 4세기 이후로 성령의 참된 신성은 그의 개성을 시인하는 사람들에게 결코 부정되어 온 적이 없었다. 성서 가운데 성령의 신성에 대한 증거는 너무나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John F. Walvoord, The Holy Spirit, 8).

“성령의 신성은 아다나시우스 신조(Athanasian Creed) 가운데 더욱 더 강하게 다음과 같이 증언되어 있다. 아버지는 하나님이시요, 아들도 하나님이시며, 성령도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세 분의 하나님들이 아니라 한 하나님이 존재하신다. 우리가 성령의 신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성령은 거룩하시며 단순히 아버지께로부터 나오는 감화력이 아니라 그분 자신이 친히 하나님이시라는 뜻이다”(J. Oswald Sanders, The Holy Spirit and His Gifts, pp. 18, 19).

그러면 삼위일체의 개념은 어떤 것인가?

개체(Person)는 세 분이지만, 본질(Nature)에 있어서 동질이신 한 하나님(one God)이시라는 뜻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개체는 세 분이시다

“For there are three that bear record in heaven,  the Father, the Word, and the Holy Ghost: and these are one”(KJV, 1 John 5:7).

“이는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이가 세 분이시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요, 이 세 분은 하나이시라”(킹제임스역 한글판, 요일 5:7).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마 28:19).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고후 13:13).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6, 17).

성경 가운데 분명히 개체(Person)가 세 분으로 나타나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성부, 성자, 성령 세 분이시다. 또한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실 때에도 세 분의 개체가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음을 볼 수가 있는데, 침례를 받으신 예수님, 비둘기 같이 임하시는 성령, 하늘로서 들려오는 성부 하나님의 음성이다.

개체로 볼 때 성부는 성자가 아니다. 개체로 볼 때 성자는 성령이 아니다. 개체로 볼 때 성령은 성부가 아니다. 개체로 볼 때 분명히 세 분이시다.


② 본질은 하나님이시다

본질로 볼 때 성부는 하나님이시다. 본질로 볼 때 성자는 하나님이시다. 본질로 볼 때 성령은 하나님이시다. 본질로 볼 때 성부, 성자, 성령은 하나님이시다.


③ 동일한 본질을 가진 한 하나님이시다

“이는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이가 세 분이시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요, 이 세 분은 하나이시라(These are one)”(킹제임스역 한글판, 요일 5:7).

성부, 성자, 성령의 본질은 동일한 본질이다. 그러므로 개체는 세 분(Three Persons)이시지만, 동일한 본질(The Same Nature)을 가진 한 하나님(One God)이시다.


④ 세 분의 관계를 삼위일체라고 부른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본질, 품성, 목적, 계획, 창조, 구속사업, 우주통치 등에 있어서 일치하신다. 다시 말해서 세 분의 신성이 동질이심으로 한 하나님(One God),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이러한 세 분의 관계를 삼위일체라고 부른다.

금실 좋은 부부를 가리켜 동심일체라고 말한다. 실제적으로 부부는 개체로 볼 때 일체가 아니라 이체이다. 그러나 애정이 같고, 뜻이 같고, 목적이 같고, 계획이 같은 부부를 가리켜 부부는 동심일체라고 부른다. 이와 같이 성부, 성자, 성령은 개체로 불 때 세 분이지만, 신성에 속한 본질은 동질이기 때문에 신학적인 용어로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본질, 품성,목적, 계획, 창조사업, 구속사업, 우주통치 등에서 일치하신 한 하나님,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분명한 사실은 모든 피조물로부터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성령은 단지 능력이나 감화력 자체가 아니라 그 능력을 소유하신 인격적인 존재자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갖게 되는가?


(6) 어떤 경우를 당하든지 보혜사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태도를 갖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약속하셨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내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 14:16).

여기에 “다른 보혜사”란 말은 “처음 보혜사”가 있었음을 전제한 말이다. 그러면 “처음 보혜사”는 누구였는가? “처음 보혜사”는 바로 예수님이였다. 예수님은 제자들 곁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보혜사”로서 늘 그들을 도와주셨다. 제자들이 병든 어린 아이를 고치지 못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을 때 그 아이를 고쳐주심으로 제자들 곁에서 도와주셨다. 제자들이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요청했을 때 그들 곁에서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베드로가 물위로 걸어가다가 물속에 빠지기 직전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를 건져주심으로 그 곁에서 도와주셨다. 이처럼 예수님은 제자들 곁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최초의 보혜사로서 늘 그들을 도와주셨다.

그러나 그가 하늘로 승천하신 후에는 또 “다른 보혜사” 즉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대리자로서 보혜사 성령을 이 땅에 보내주셨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10일째 되는 날, 바로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신 것이다. 보혜사 성령께서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만 아니라 세상 끝날 까지 우리 곁에 항상 함께 계셔서 우리를 도와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어떤 경우를 당하든지 우리가 그에게 도움을 구하면 보혜사 성령은 항상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도와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에게 “위로자(Comforter)”로서, “상담자(Counselor)”로서, “도와주시는 자(Helper)”로서 항상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도와주신다.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나 모든 슬픔과 고통 중에서나 앞길이 캄캄하고 장래가 암담하게 보일 때에, 또한 우리가 무기력하고 외로움을 느낄 때에 믿음의 기도의 응답으로서 보혜사가 보내신 바 될 것이다. 환경들은 우리를 모든 지상의 친구들로부터 분리시킬지는 모르지만 어떤 환경도, 어떤 먼 거리도, 우리들을 하늘의 보혜사로부터 분리시키지 못한다. 우리가 어디 있든지, 어디를 가든지, 언제나 그는 우리를 지지하시고, 붙드시고, 격려하시고, 위로하시기 위하여, 우리의 오른 편에 계신다”(시대의 소망, pp. 669, 670).

이 얼마나 귀한 하나님의 약속인가! 이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다. 

개인마다, 가정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가 있다. 앞길이 캄캄하고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우리는 어떻게 그 문제를 대처해야 하는가? 어려운 문제에 집착하여 골똘히 생각하노라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불면증에 시달리게 된다. 그럴 때에 우리는 어떻게 그 문제를 처리하고 있는가? 나의 염려와 슬픔과 고통을 가장 잘 아시는 보혜사 성령 하나님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면서, 전적으로 믿음으로 내 맡겨버릴 때에 성령 하나님께서 마음의 평안을 베풀어 주신다. 파라클레토스, 즉 신자 곁에 계시면서 도움을 구할 때마다 언제나 도와주시는 분, 곧 보혜사 성령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염려와 걱정을 내맡길 때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도와주신다. 그래서 필자는 파라클레토스, 즉 보혜사란 명칭을 매우 좋아한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의 일이다. 자두나무는 꽃이 피었다가 질 때 벌레들이 열매 속에 알을 까기 때문에 그냥 뇌두면 벌레들이 열매 속에서 서식하기 때문에 먹을 수가 없게 된다. 

하루는 자두나무에 살충제를 살포하기 위해 다이아매크론이라는 강한 살충제를 물에 희석하다가 실수로 그만 검지 손가락에 원액이 한 방울 떨어졌다. 우물가에 가서 씻으려고 가는 도중 이미 피부로 흡수되어 버린 상태였다. 하룻밤을 지나고 나서 소변을 보니까 검붉은 오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얼굴에 황달이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하루 하루가 다르게 몸이 쇠약해지면서 황달이 아주 심해지는 것이었다. 얼굴 피부색은 노랗다 못해 검어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게 되었다. 검진 결과 황달치수가 평균치보다 7배나 악화되었다는 것이다. 간이 엄청나게 파손되고 있었던 것이다. 당장 수술을 해야한다고 의사의 진단이 내려졌다. 필자는 농약에 중독되었다고 말했지만 의사는 농약중독이 아니라는 것이다. 병명도 확실치 않은 상태에서 가슴을 열어봐야 알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간이 급하니 빨리 수술 받을 준비를 하고 입원하라는 것이다. 다이아매크론이라는 농약을 사용하다 피부에 흡수되어 몇 사람이나 죽었다는 소문을 이미 알고 있던 터였다. 참으로 앞길이 암담하고 세상이 캄캄하게 보일 뿐이었다. 

그 때 필자는 이미 정신적으로 죽은 사람이나 다름이 없었다. 살아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볼 때 내 눈에는 딴 세상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앞길이 캄캄하고 암담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렇게 나의 인생은 끝나는 것이 구나를 생각할 때, 좀 더 건강했을 때 하나님의 사업에 헌신하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스럽게 느껴졌다. 

어떻게 내 마음을 추슬러야 한단 말인가? 눈물이 내 시야를 가렸다. 이제 내가 찾아가야 할 곳이 어디일까? 말할 수 없는 절망 중에 기도의 동산을 찾아가게 되었다. 뒷동산 소나무 밑에 무릎 끓고 조용히 기도하게 되었다. 모든 생사의 운명을 조용히 하나님께 위탁하면서 죽음의 순간을 위해 기도하게 되었다. 그 때 필자는 이렇게 기도하게 되었다. 

“하나님이시여, 제 인생의 삶이 이렇게 끝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떻게 제 운명을 거역할 수가 있겠습니까? 제 영혼을 준비시켜 주시고 제 영혼을 받아주십시요. 그러나 만일 다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지혜를 주십시요.” 

바로 그 때 파라클레토스, 즉 보혜사 성령 하나님에 관한 생각이 머리에 맴돌게 되었다. 파라클레토스, 신자 곁에 있으면서 도움을 구할 때마다 언제나 도와주시는 분, 바로 보혜사 성령 하나님께 조용히 지혜를 구하게 되었다. 기도가 마치는 순간 수술을 받기 전에 간청소를 먼저 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우리 교회 한 집사님의 도움을 받아 간 청소 약수를 마시면서 밤새도록 간청소를 하게 되었다. 밤새도록 대변과 소변으로 몸속에 있는 모든 독소들이 빠져나오게 되었다. 그 이튿날 아침, 눈이 밝아지면서 혈색이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로 더 이상 그 병원에 가지 않았다. 

보혜사가 되신 성령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지 아니하고 현대의학에만 의존하여 나의 생명을 맡겼더라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를 지금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분명 그때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더라면 병명도 찾지 못하고 수술실험도구만 되었을 것이고 더 이상 이 세상에 살아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보혜사 성령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심으로 나의 생명을 살려주셨음을 확신하면서 성령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바이다.

우리가 어떤 경우를 당하든지 보혜사 성령 하나님께 도우심을 간구하도록 하자. 우리의 염려와 걱정, 슬픔과 고통을 보혜사 성령 하나님께 전적으로 내맡기자. 그때에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주실 것이며,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어느 성경학자는 각 시대를 다음과 같이 구분하였다. 구약시대는 성부 하나님의 시대요, 신약시대는 성자 하나님의 시대이며, 오늘날이 시대는 성령 하나님의 시대라고 말했다. 그 어느 시대보다 오늘날은, 성령 하나님께서 보혜사로서 우리와 가장 가까이 계셔서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계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돕기 위하여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우리 곁에 계셔서 우리를 도와주시려고 기다리신다. 어떤 경우를 당하든지 보혜사 성령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는 성도들이 되도록 하자.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령 속에 충만하게 임재하셔서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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