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각자 선택한 생활과 그들이 계발시킨 품성의 결과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대체로 아이들은 부모의 성질과 성벽을 물려받으며, 부모를 본받는다.
그같이 하여 부모의 죄는 대대로 그 자손들에 의하여 행하여진다.-
한 죄인이 많은 선을 패괴케 한다.”
“그들은 그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 진리들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했다.”
어제 밤에는 아들과 깊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아들은 답답함을 표출하지 못하고 울었다.
하나님을 알려고 해도 잘 모르겠고, 어머니의 말씀의 표준이 자기의 기호와는 맞지 않단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엄마가 말씀 안에서 아니라는 것들뿐이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러면서도 죄 속에 있는 것이 너무너무 싫은 것이다.
자기 자신의 모습이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하나님 안에서의 확신도 세상에 대한 확신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한 사람들은 그분께서 개입해 주시기를 부르짖었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 할 수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오늘날 청소년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기에 얼마나 많은 유혹물들이 있는지 모른다.
특별히 컴퓨터, 핸드폰과 같은 도구들은 아이들이 사람과 만나지 않아도 세상에 깊이 연결되어
세상의 바벨탑을 그리워하고 그들과 같지 않으면 인생을 실패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로 불안하게 만든다.
세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우리는 죄인이다. 죄로 기울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아들이 말씀이 이해가 되지도 않고 읽기도 싫다고 했다.
원인은 컴퓨터와 핸드폰이였다. 조용한 시간 공부하기 위해 들어간 컴퓨터는 우리아이의 유혹물이였다.
계속 세상의 신을 바라본 것이다.
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두려워한다.
세상에 살면서 세상을 놓는 일이 쉽겠는가?
“바벨탑 건설자들의 계획은 수치와 패배로 끝났다.
그들의 교만의 기념비는 그들의 어리석음의 기념비가 되었다.
지금도 사람들은 여전히 동일한 노선-자아를 의지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배척하는 노선을 따르고 있다.
그것은 사단이 하늘에서 실천에 옮기고자 하던 원칙이요 그의 제사를 드리는데 있어서 가인을 지배했던 원칙이다.”
아들이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자기 자아와 하나님의 뜻 사이에서 얼마나 큰
대쟁투를 하고 있는가를 볼 때 내 마음이 엄숙해지고 떨린다.
아직 어린 아들이지만 선택은 본인에게 있으니 얼마나 힘들까?
아들은 “어머니, 핸드폰과 컴퓨터를 치워주세요.”라고 했다.
사단이 얼마나 강하게 이 젊은 청년들을 자기의 노획물로 삼으려 하는지 두렵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대체로 아이들은 부모의 성질과 성벽을 물려받으며, 부모를 본받는다.”
‘하나님, 하나님의 영광 드러나는 부모가 되게 하시고,
아직 하나님을 잘 몰라 불안한 아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는 증인이 되게 해주세요.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