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발견한 이후로 대쟁투의 삶이 시작된 것 같다.
영적인 것들이 분별이 되고,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것을 선택할수록 사단의 맹렬한 공격이 몰려오고, 투쟁과 분쟁과 많은 오해를 받게 되었다.
그전에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이었다. 사단은 한 영혼이라도 예수님께 빼앗기지 않고 멸망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포기하게 할 수 만 있다면, 사단은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신앙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만반의 대비책을 주셨다.
그리고 사단이 어떻게 공격해 올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물리칠 수 있는지를 말씀에 기록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우리의 신앙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셔서 우리와 영원히 살고 싶으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시고,
우리가 죽어야할 죽음을 대신 죽으신 그 사랑을 깨달을 때만이 우리의 신앙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생명을 잃을지라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강한 사랑.....
나의 생명을 주님을 위해 버릴 수 있는 믿음이 나에게 주어지길 기도한다.
어떻게 이런 기도를 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결코 변함이 없고,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주를 위해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택한 자들에게는
부활의 소망과 생명의 면류관이 보장되어 있다.
초대교회 역사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주고 있다.
그들에게 핍박은 예수님께로 하늘나라로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것이었다.
찬미가사가 떠오른다.
“큰 물결 이어서 나 쉬지 못하나 이 거센 풍랑 까닭에 더 빨리 갑니다.”
내 인생에 시련이 없었더라면 어찌 예수님께로 갈 수 있었겠는가?
시련과 시험은 나에게 너무도 큰 축복을 주었으며 새로운 삶으로 인도했다.
시련 가운데 불평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이다.
시련 속에 감사할 수 있다면, 그리스도인이다.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하시면 들의 풀 한포기도 시들게 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련과 시험들은 사단으로부터 오는 것 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것들을 통하여 우리가 하늘 백성이 되도록 연단시키시는 도구로 사용하신다.
우리 속에 있는 이기심, 세속적 욕망, 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기회들이다.
핍박과 시련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다. 세속적 번영과 명예와 풍요로움이다.
세상과 타협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서머나 교회의 역사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을 지라도 교회는 순결을 유지했었다.
그러나, 버가모 교회의 역사는 세속의 물결이 교회로 들어옴으로 타락하게 되었다.
사단은 지금도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를 쓰러뜨리려 하고 있다.
사단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는 방법은 예수님의 생애를 연구하고,
우리의 결점을 고치고, 예수님의 모본에 일치하고자 하는 열심있는 노력만이 승리의 방법인 것이다.
요한계시록 2:10~11“.....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내게 주리라.....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요한계시록 2:17“.....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충성하라고 하신다.
내 마음을 예수님께 드리면 충성의 마음 뿐 아니라 이 모든 약속의 말씀을 내게 이루어 주시겠다고 하신다.
예수님! 이 약속의 말씀을 받을 수 있는 자로 만들어 주세요.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