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과 밥그릇, 물과 물병중, 무엇이 중요하지?
무수한 수침자들중에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우리는 자조섞인 생각을 합니다.
”거듭남이라는 내용이 중요하지 물에 잠갔다 빼는 형식이 뭐가 중요할까?"
그러나 물은 물병에 담겨져야만 마실수 있습니다. 물이 물병이건 그릇이건 어디엔가 담겨지지 않으면 물을 사용하기가 어렵고 오래지 않아 흘러가 유실되거나 말라서 사라져 버립니다
내용은 형식이란 그릇에 담겨집니다.
형식이 없으면 내용물은 금새 유실되고 맙니다.
하나님은 믿는자를 의롭다 하시겠다는 중대한 언약을 생식기, 살에 두셨습니다. 할례라는 형식(그릇)에 담아두셨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쉽게 유실되지 않고 영원히 언약이 되도록 계획하셨습니다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창17:13)
안식일 기별, 절제기별, 건강기별, 십일조 등, '하라 하지말라' 로 이루어진 형식틀안에 복음이라는 내용물이 담겨졌습니다. 유실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안식일은 나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과 나와의 생명적 관계를 잊지 않게 하시려고 주신 날입니다. 이 본질을 보존해주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가 손발을 금하는 형식이었습니다. 이 행위라는 형식을 통하여 복음의 내용물이 온전히 보존될 것이었습니다.
형식을 무시하면 내용이 위태해집니다.
"성전은 교회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맞는 말이지만 교회조직이라는 형식, 교회건물이라는 형식, 예전(禮典)이라는 형식, 헌금제도라는 형식이 무슨 부조리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형식을 무시한다면, 그릇을 치워버리면, 내용물은 머지 않아 유실됩니다.
하나님은 원대한 하늘의 통치이상을 십계명이라는 인간의 문자 형식틀에 담아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지금까지 보존되어올 수 있었을까?
하나님과 죄인이 만나는 사건이 안식일이라는 날짜형식과 손발을 금하는 행위 형식에 담아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지금까지 보존되어올 수 있었을까?
헌신과 자기희생이라는 고귀한 가치가 헌금제도라는 형식에 담아지지 않았다면 지금 어느 누가 헌신 할것인가?
예배라는 중요한 사건이 예배당이라는 장소에서 모이는 형식으로 유지되지 않았다면 예배의 정신이 온전히 보존될 수 있을것인가?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창17:14)
형식을 무시한 자를 일컬어 언약을 깨뜨렸다고 말씀하셨음을 기억합니다.
밥과 밥그릇, 물과 물병, 내용과 형식중 무엇이 중요하지?
어느것 하나도 없어선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