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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ble Bridge - Adventist Movement

연구서적

앞에서 우리는 회개와 자복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고찰해 보았다. 죄를 슬퍼하고 죄에서 돌이켜 떠날 뿐만 아니라 그 죄를 하나님께 자복하는 경험이 어떠한 것인지를 연구하였다. 그런데 내가 회개하며 자복한 죄가 하나님 앞에 용서함을 받았다는 증거가 무엇인가? 과연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실까? 때때로 우리 마음속에 의심이 찾아올 때가 있다. 우리가 회개하고 자복한 죄가 하나님 앞에 용서함을 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참으로 이 문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당면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이 문제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근본적으로 속죄의 은혜가 어떠한 것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죄의 용서는 속죄의 은혜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속죄의 은혜가 어떠한 것인지를 이해할 때 죄의 용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를 보다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1. 제공된 속죄와 적용된 속죄


이 주제에서 다루게 될 개요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제공된 속죄와 적용된 속죄가 성소봉사 속에 어떻게 나타나 있는가를 고찰하게 될 것이다.

둘째로, 제공된 속죄와 적용된 속죄가 그리스도의 봉사의 이중적인 구속 사업에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고찰하게 될 것이다.

셋째로, 제공된 속죄와 적용된 속죄가 한 개인의 구원의 경험 속에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고찰하게 될 것이다.


(1) 성소봉사에서 적용된 피와 버려진 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구속의 계획과 구원의 경험을 가장 잘 가르쳐주는 시청각 교재는 바로 성소봉사제도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의 오묘를 인간의 언어로 완벽하게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인간이 어떻게 속죄함을 입으며, 어떻게 구원에 이르게 되는 지를 시청각 교재를 통하여 알기 쉽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 바로 성소봉사제도이다. 구속과 구원의 오묘한 이치와 원리가 성소봉사제도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성소봉사에서 적용된 피와 버려진 피가 나타나 있다.

“기름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서 그 제사장이 손가락에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곧 성소장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제사장은 또 그 피를 여호와 앞 곧 회막 안 향단 뿔에 바르고 그 송아지의 피 전부를 회막문 앞 번제단 밑에 쏟을 것이며”(레 4:6, 7).

“그 제사장이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장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또 그 피로 회막 안 여호와 앞에 있는 단 뿔에 바르고 그 피 전부는 회막문 앞 번제단 밑에 쏟을 것이며”(레 4:17, 18).

“제사장은 그 속죄 희생의 피를 손가락에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는 번제단 밑에 쏟고”(레 4:25).

“제사장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단 밑에 쏟고”(레 4:30).

사람들이 범죄했을 때에 그들은 희생제물의 피를 통하여 속죄함을 받았던 것이다. 범죄했을 때 죄가 어떻게 속죄함을 받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자.

제사장이 범죄했을 경우에는, 제사장의 중보를 통하여 그 피가 성소로 옮겨지고, 제사장은 그 피를 휘장 앞에 뿌리고, 분향단 뿔에 바르고, 나머지 피는 번제단 밑에 쏟아 버렸다.

온 회중이 범죄했을 경우에는, 제사장의 경우와 같이 제사장의 중보를 통하여 그 피가 성소로 옮겨지고, 제사장은 그 피를 휘장 앞에 뿌리고, 분향단 뿔에 바르고, 나머지 피는 번제단 밑에 쏟아버렸다.

족장이 범죄했을 경우에는, 제사장의 중보를 통하여 그 피가 성소로 옮겨지고, 제사장은 그 피를 번제단 뿔에 바르고, 나머지 피는 번제단 밑에 쏟아 버렸다.

한 평민이 범죄했을 경우에는, 족장의 경우와 같이 제사장의 중보를 통하여 그 피는 성소로 옮겨지고, 그 피를 번제단 뿔에 바르고, 나머지 피는 번제단 밑에 쏟아 버렸다.

속죄와 용서함을 받는 속죄제에서 적용된 피와 버려진 피가 있음을 분명하게 구분하여 알 수 있다.

여기서 적용된 피는 어떤 피인가? 성소의 휘장 앞에 뿌려지고, 분향단 뿔에 발라지고, 번제단 뿔에 발린 피를 말한다.

여기서 버려진 피는 어떤 피인가? 번제단 밑에 쏟아 버린 나머지 피다.

그러면 똑 같은 희생제물의 피인데 무엇이 다른가? 성소기구들에 뿌려지고 발라진 피는 적용된 피지만, 나머지 버려진 피는 적용되지 않은 피다.

그러면 구속 사업의 관점에서 볼 때 무슨 차이가 있는가? 적용된 피는 속죄와 용서의 효력이 나타나는 피지만, 적용되지 않고 버려진 피는 아무 효력이 없는 피다. 다시 말해서 갈바리 십자가상에서 흘린 그리스도의 피를 믿음으로 마음의 문설주에 뿌리고 바름으로 적용한 자만이 속죄와 용서의 효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무시하고 거절함으로 그리스도의 피를 심령에 뿌리지 않고 바르지 않는 자는 속죄와 용서의 효력을 얻지 못한다. 다음의 진술을 주의 깊게 음미해 보자.

“속죄의 효력을 얻게 한 것은 땅에 부어 버린 피가 아니라, 바로 “뿌려진 피(the sprinkled blood)”였다. 속죄는 땅에 부어 버린 피에 의해서가 아니라 단의 뿔에 발라진 피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리스도인들이 “흘린 피”는 강조하면서--오직 속죄의 효력을 얻게 하는 “뿌려진 피”를 잊어버리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흘린 피는 사용되지 않은 피요, 속죄가 이루어진 후 번제단 밑에 부어 버렸다.--유월절을 제정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도록 명하셨다(출 12:7, 22, 23). 하나님께서는 어린 양을 잡는 것으로 장자를 구해주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다. 오직 그 피가 적용될 때만 “넘어가실 것이(pass over)”었다. 동일한 원칙이 모든 제물에 잘 적용된다. 희생제물을 끌고 와서 죽이는 것은 충분하지 못하다. 즉 그 피가 뿌려져 적용되어져야만 하는 것이다”(SDA Bible Commentary, vol. 1, p. 731).

“오직 그리스도의 피만이 그대들을 눈보다 더 희게 해줄 수 있으므로 믿음으로써 그대들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피를 바르라”(가려 뽑은 기별, 1권, p. 330).

갈바리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는 만인을 위하여 완전한 속죄의 은혜와 수단으로 제공된 것이지만, 오직 믿음으로 그 피를 마음의 문설주에 뿌리고 바름으로 적용한 자에게만 속죄의 효력이 있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2) 십자가상에서 그리스도의 희생과 하늘 성소에서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다시 지상 성소로 돌아가서 살펴보자. 성막 뜰에서 어린 양이 피 흘리며 죽는 것만으로는 속죄 사업이 다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피가 제사장의 중보를 통하여 성소 안에 뿌려지고 적용되어졌을 때 마침내 속죄와 용서가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속죄의 범위는 갈바리 십자가의 희생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하늘 성소에서 행하시는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에 까지 포함된 것이다.

그리스도는 희생제물이 되시고, 동시에 중보자가 되신다. 십자가상에서 희생제물로서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온 인류를 위하여 “완전한 속죄의 수단을 제공한 것”이요, 하늘 성소에서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의 봉사는 십자가상에서 제공된 속죄의 수단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자들을 위해서 “속죄의 효력을 얻도록 피를 적용시켜 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와 의를 믿음으로 받아들인 자들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중보하심으로 속죄와 용서가 이루어지고 있다. 다음의 진술을 음미해 보자.

“갈바리에서 그의 죽으심은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것이었다.--그러나 하늘 성소에서 피를 계속적으로 적용시켜 주시는 봉사가 없다면, 갈바리의 희생은 무용한 것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크신 대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봉사를 이해하지도 못하며 감사하지도 않는다. 분명히 그들은 “흘려진 피(shed blood)”는 믿는다. 그러나 그 피가 효력이 있도록 하기 위하여 한 봉사, 즉 피의 적용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SDA Bible Commentary, Vol. 1, p. 731).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히 완전한 희생으로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리스도의 속죄 행위와 그 희생을 유효하게 하시는 대제사장으로서 성소에서의 그분의 사역의 차이점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십자가상에서 이루신 것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며(요일 2:2), 그가 성소에서 행하시는 것은 오직 그의 크신 구원을 받아들이는 자들만을 위한 것이다. 두 가지 측면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구속 사업에서 필수적이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국면들이다. 전자는 희생제물을 제공한 것이요, 후자는 회개하는 영혼에게 그 희생을 적용시켜 주는 것이다. 전자는 희생제물로서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것이며, 후자는 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것이다. 둘 다 하나님의 크신 구속의 경륜의 국면들이다”(Questions on Doctrine, pp. 353, 354).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요지는 무엇인가? 갈바리 십자가에서 “완전한 속죄의 수단과 은혜”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제공되었지만, 그 속죄의 수단과 은혜, 즉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에게는 그를 위한 중보도 없으며, 따라서 속죄와 용서도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 하늘 지성소에서 탄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은 불신자들을 위한 중보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믿음으로 받아들인 자들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속죄의 은혜가 없어서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제공된 하나님의 속죄의 은혜를 거절하기 때문에 멸망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희생과 중보하심을 통하여 회개한 죄인은 속죄와 용서와 칭의를 선물로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희생제물이 되어 주신 분도 그리스도요, 우리를 위해 대언 중보해 주시는 분도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가 되시고,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이 되시며, 그리스도는 우리의 희망이 되신다! 그리스도는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으로서 희생제물이 되셨을 뿐만 아니라, 대제사장으로서 희생제물의 피를 적용시켜 주심으로 속죄와 용서의 효력을 얻게 하시는 이중적인 구속 사업을 이루고 계신다.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시고 죽임을 당하신 그리스도,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그리스도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자.


(3) 그리스도를 믿는 자와 불신하는 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햇빛과 단비를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제공해 주신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구속의 은혜와 수단을 모든 사람들에게 동등하게 제공해 주신다. 십자가상에서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과 죽으심은 모든 사람에게 제공된 완전한 속죄의 은혜와 수단이며, 구원의 길이다. 십자가에서 제공된 속죄의 은혜와 수단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는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을 통하여 속죄와 용서와 구원을 선물로 받게 된다. 그러나 속죄의 수단과 은혜를 거절하고 불신하는 자들은 결국 속죄와 용서도 없고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가 구원의 길을 거절한 것이다. 그들은 구원의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멸망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오늘 우리는 어느 길을 선택해야 하겠는가?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중요한 점은, 갈바리 십자가에서 만인을 위하여 공평하게 속죄의 은혜와 수단을 제공해 주셨지만, 오직 이 속죄의 은혜와 수단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자들을 위해서만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서 대언하시고 중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늘 지성소에서 중보 사업이 마쳐지면 더 이상 속죄와 용서의 은혜는 주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가? 그러므로 하늘 성소에서 중보 사업이 마치기 전에, 갈바리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함을 입도록 믿음으로 은혜의 보좌 앞으로 열심히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지금까지 우리는 제공된 속죄와 적용된 속죄가 어떠한 것인지를 고찰해 왔다. 갈바리 십자가상에서 이루신 희생제물로서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은,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하여 제공된 속죄의 은혜와 수단으로서, “제공되는 속죄(the Sacrificial Atonement Provided)”이다. 그러나 하늘 성소(Heavenly Sanctuary)에서 대제사장의 직분을 가지시고 중보자로서 봉사하시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은,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고,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의지하여 죄를 회개하며 자복하는 자들을 위하여 속죄의 효력을 얻도록 피를 적용시켜 주는 것으로서, “적용되는 속죄(the Sacrificial Atonement Applied)”이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제공된 속죄”는 만인을 위하여 제공된 선물이다. 그러나 오직 제공된 선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을 위해서만 하늘 성소에서 그리스도께서 “적용된 속죄”를 이루시고 계신다. 그러므로 지금 하늘 성소에서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은 불신자를 위한 봉사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들을 위한 봉사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고 있는가? 그리스도께서 중보자로서 속죄와 용서를 이루시는 바로 지금이 그리스도의 피로 온전히 정결함을 입어야 할 은혜의 시기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머지않아 중보자로서의 구속 사업은 끝날 것이며, 더 이상 속죄와 용서를 받을 수 없는 때가 올 것이다. 바로 그 때가 “중보자 없이 서야 할 때”이다.

“하늘 성소에서 그리스도의 중보하시는 일이 그치게 될 때에 세상에 살아있는 사람들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중보자 없이 서게 될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p. 425).

머지않아 은혜의 시기는 끝나고, 더 이상 속죄와 용서함이 없는 때가 올 것이다. 중보자 없이 홀로 서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 때가 이르면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 되게 하라”(계 22:11)는 선언이 내려질 것이다.

우리 앞에 놓여진 은혜의 시간이 얼마나 계속될지 아무도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날이 심히 가깝다는 것이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오늘 우리는 중보자 없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을 만큼 그리스도의 피로 철저한 속죄와 용서와 칭의와 성화의 과정을 이루고 있는가? 우리는 오늘의 은혜의 기회를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 우리에게 주어진 절호의 은혜의 시간동안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 조용히 눈을 감고 자신을 깊이 성찰하면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자. 말씀을 통하여 들려주시는 성령의 음성을 따라 철저히 회개하고 자복하자. 그리고 용서의 확신 속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자.



2.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믿음의 중요성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한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경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믿음이다. 하나님 편에서 제공하시는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인간 편에서는 그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선물이며, 그 은혜의 선물을 받는 수단은 믿음이다. 구원의 경험에서 하나님의 역할은 구속의 은혜를 제공하시는 것이요, 인간의 역할은 제공된 그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할과 인간의 역할이 서로 협력할 때 한 개인의 생애 속에 구원의 경험이 이루어진다.


(1) 하나님 편에서 제공하시는 은혜는 어떤 것인가?


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의를 제공해 주신 것이다

그리스도가 아니면 인간은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다. 범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아무런 공로나 의가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와 의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은혜를 입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공로와 의는 어떤 것인가? 우리가 범한 죄의 결과로 선고된 영원한 사망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당해 주심으로 죄의 값을 지불해 주신 은혜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우리의 죽음으로 간주해 주시고 가납하신 것이다. 죄의 값으로 요구된 형벌을 우리를 대신하여 당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공로와 의를 의지해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이름을 의지해서 하나님께 무엇이든 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베푸신 놀라운 은혜이다.


② 죄를 회개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앞에서 이미 연구한 것처럼, 참된 회개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은 피상적인 회개는 할 수 있을지 모르나 하나님이 가납하실 수 있는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요 은혜인 것이다. 물론 회개해야 할 장본인은 인간편이지만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는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심으로 우리를 참된 회개로 이끄시는 은혜를 베푸신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③ 속죄와 용서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죄를 속하시고 용서해 주신다. 피로 속죄함을 얻는 원리는 하나님이 제정하신 방법이다. 피는 생명을 의미한다. 성경은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 17:11).

죄를 범한 인간의 죄를 속할 수 있는 방법은 죽음을 통하여 피를 흘리는 길밖에 없었다. 그런데 피 흘리는 형벌을 우리가 당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대신 우리를 대리하여 당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귀히 여기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의지하여 죄를 회개하고 자복할 때 속죄와 용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리스도의 공로와 의를 통하여 우리를 의롭게 여겨 주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된다. 그때 우리는 더 이상 죄인의 신분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로 여겨 주신다.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우리를 감격하게 하는 놀라운 은혜가 아닌가? 그리스도 덕분에 죄인이 의인으로 취급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놀라운 복음인 것이다. 사도 바울이 그토록 감격에 못 이겨 외쳤던 기별이 바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이었다. 인간의 귀에 들려오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기별이다. 우리를 의롭게 여겨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자.


그리스도의 은혜와 능력을 통하여 우리를 거룩하게 변화시켜 주시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수도 없으며 거룩하게 될 수도 없다. 우리를 거듭나게 해 주시며 지속적으로 거룩하게 성화시켜 주시는 것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되는 것이다. 우리의 의지를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굴복시킬 때에 죄로 기울어지는 타락한 본성은 성령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다. 그 후부터 우리 속에서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우리의 의지를 강화시켜주시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행하도록 우리를 도와주신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성령은 우리를 거룩하게 변화시켜 주신다. 그래서 성화의 과정을 통하여 완전함의 목표를 향해 계속 성장해 가는 것이다.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를 거룩하게 성화시켜 주시는 것도 하나님의 능력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은혜와 능력을 통하여 우리의 생애에 거룩한 성품의 열매가 맺혀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가?


⑥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과 영생의 선물을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속하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가장 귀한 독생자를 죽음에 내어 주셨다.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의 선물을 주시기 위하여 그 귀한 생명을 바치셨다. 얼마나 황송하고 감사한 일인가? 또한 우리의 구원과 영생을 위하여 온 하늘이 총동원되었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다음의 영감의 말씀을 음미해보자.

“하나님의 마음은 죽음보다도 강한 사랑으로 이 세상의 당신의 자녀들을 극진히 사모하신다. 그는 당신의 아들을 주심으로 온 하늘을 선물로 우리에게 주셨다. 구세주의 생애와 사망과 중보, 천사들의 봉사, 성령의 탄원, 만사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늘 아버지, 하늘 거민들의 끊임없는 관심, 이 모든 것이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총동원되었다”(정로의 계단, p. 21).

하늘 아버지, 구세주 그리스도, 우리를 위해 탄원하시는 성령님, 우리 곁에서 도와주시는 천사, 끊임없는 관심을 가지고 있는 온 우주의 거민들, 온 하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나의 구원을 위해 총동원되다니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넘쳐흐른다! 이 주체할 수 없는 은혜, 제한 없는 은혜를 인간의 언어로 어떻게 다 묘사할 수 있겠는가? 마음속에 밀려오는 하나님의 은혜의 물결을 어찌 거스릴 수가 있단 말인가! 이 엄청난 은혜를 묘사할만한 적합한 언어를 찾을 수가 없어, 그저 감격과 감동과 감사와 눈물로 언어를 대신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의 구원을 위해 온 하늘이 총동원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맙고 감격스러운 일인가!


(2) 인간 편에서 믿음은 왜 필요한가?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놀라운 은혜를 받아들이는 유일한 손은 믿음의 손이다. 은혜는 하나님 편에서 제공하는 선물이며, 믿음은 인간 편에서 그 은혜를 붙드는 손이다. 인간에게 제공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곧 믿음이다. 그래서 믿음이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제공되었지만, 그 구원의 은혜를 자기의 것으로 받는 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곧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무리 귀한 은혜를 제공해주셨을지라도 인간 편에서 믿음의 손으로 그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개인에게 구원은 이루어질 수가 없다. 곧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 구원의 선물을 거절해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제공해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믿음이 필요하다.


(3)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11:1).

믿음이란 현재 눈에 보이지 않는 실재를 눈에 보이는 실재로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기대하고, 신뢰하는 것이다. 믿음의 선조들은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갔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히 11:13).

그들은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은 하늘의 실재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하늘 본향을 사모하는 믿음을 가졌던 것이다. 영원한 실재를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A. T. 존스는 믿음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고 그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하여 그 말씀만을 의존하는 것이다”(A. T. 존스, 믿음의 의에 관한 연구, p. 20).

참으로 훌륭한 정의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믿음이 바로 이러한 믿음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할 참된 믿음이다.


(4)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한다. 성경에는 믿음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 많이 있다. 여러 가지 경우가 있지만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믿음은 바로 백부장의 믿음이었다. 그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가?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 하나이다 가라사대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마 8:6-8, 10, 13).

바로 여기에 참되고 큰 믿음이 있다. 여기에 예수님께서 믿음이라고 선언하신 참 믿음이 있다. 그것이 백부장의 믿음이었다. 그러면 백부장의 믿음의 기초는 무엇이었는가?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여기서 백부장은 무엇이 그 하인을 낫게 할 수 있다고 확신했는가? “다만 말씀만으로도”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에만” 의존하였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결과 믿음대로 그 하인이 나았다.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말씀하신 바를 스스로 이룰 것을 기대하고, 오직 그 말씀만을 신뢰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구원의 은혜를 받는 방법도 이와 꼭 같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고 그 약속의 말씀만을 신뢰하는 믿음으로만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회개하고 자복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확신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이 믿음의 원리를 적용할 때, 회개하고 자복한 죄에 대한 용서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다음의 항목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연구해 보도록 하자.


3. 용서에 대한 믿음의 기초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질문하는 문제는 “내가 회개하고 자복한 죄가 하나님 앞에 용서함을 받았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라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확신의 결핍 때문에 신앙생활이 기쁘고 즐거운 것이 되지 못하고 고역스럽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해결해야 할 질문은 무엇인가? 그 질문은 다음과 같다.


(1) 죄의 용서함을 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가?


①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용서의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관점이다. 의심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믿음의 기초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확신을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의심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믿음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위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느끼는 감정에 기초하고 있다. 성서적인 믿음은 감정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기초한 것이다. 의심하는 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용서함을 받았다는 강렬한 느낌을 기다린다. 어떤 초자연적인 느낌이 있어야 용서를 받은 것으로 착각한다. 이것은 참으로 위험한 신앙이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점에서 실패하고 있다.

다음의 사례는 이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잘 보여준다. 한번은 여신도 한 분이 미국에 있는 재림교회의 쿤(Glenn A. Coon) 목사에게 상담을 요청해 왔다. 그 여신도는 자신이 범한 과오에 대하여 30여 년 동안이나 아침마다 울면서 하나님께 회개와 자복의 기도를 드렸는데도 용서의 확신을 얻지 못하고 늘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그 때 쿤 목사는 이렇게 대화를 이끌어 갔다. “부인, 만일에 부인의 어린 딸이 실수로 인해서 조상으로부터 유산으로 물려받은 값비싼 도자기를 깨뜨렸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그 딸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엄마, 정말 잘못했어요. 제가 너무 덤벙거리다가 실수해서 그 귀한 것을 깨뜨렸어요. 정말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라고 울면서 용서를 구한다면 부인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 부인은 대답한다. ?물론 용서해주지요.? “그런데 30여 년 동안 매일 아침마다 울면서 엄마, 내 실수와 과오를 용서해달라고 구한다면 엄마의 마음이 기쁘시겠어요? 아니면 슬프시겠어요?” ?물론, 슬프지요.? “왜요?” ?엄마를 신뢰하지 못하니까요.? 그때 쿤 목사는, “그래요, 하나님께서도 이와 꼭 같습니다. 부인께서는 30여 년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고 불신해 온 것입니다. 부인께서는 용서에 대한 믿음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당신의 느끼는 감정에 기초해 온 것입니다.” 그리고서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들려주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이 말씀을 읽은 후, 쿤 목사는 부인에게 이렇게 질문을 한다. “부인이여, 당신의 느낌에 기초하지 말고, 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기초해서 대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기초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까?” 그제야 그 부인은 용서의 확신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믿음은 감정이 아니다.--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며 순종의 열매를 맺는다.--진정한 믿음은 성경의 약속과 대책에 기초한다”(복음사역자, p. 260).

성서적인 참 믿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나는 느끼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될 것을 나는 믿는다.” 바로 이것이 성서적인 참 믿음이다. 참된 믿음은 느낌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기초한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여 주장하는 것, 이것이 참된 믿음이다.

그러면 다시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서, 죄의 용서함을 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해서 진심으로 죄를 회개하고 자복했다면, 하나님의 약속에 기초하여 내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확신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죄를 회개하고 자복하는 자에게 주시는 용서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어떤 것인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 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사 1:18).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시 103:12).

이 얼마나 귀한 하나님의 약속인가? 우리가 진심으로 죄를 회개하고 자복했다면 하나님의 약속대로 하나님께서 내 죄를 용서하셨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대들이 죄를 자복하고 충심으로 그것을 버린다고 하자. 또 그대들은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기를 결심하였다고 하자. 그렇다고 하면 하나님께 나아가서 그가 그대의 죄를 씻어버리시고 그대에게 새 마음을 주시기를 구하라. 그리고 그가 약속하셨으니 그렇게 할 것을 믿으라. 이것은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가르치신 교훈인데, 즉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선물은 우리가 받은 줄로 믿어야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이다”(정로의 계단, pp. 49, 50).

“그대들은 그 약속을 믿고 죄를 자복하고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고 그를 섬기기로 결심하라. 그대들이 이렇게 행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확실히 당신의 말씀을 이행하실 것이다. 그대들이 약속을 믿을 것 같으면, 즉 그대들이 용서함을 받고 깨끗이 씻음을 받은 줄로 믿을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이루사 그대들도 마치 반신불수가 고침을 받은 줄로 믿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걸을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처럼, 고침을 받는 것이다. 그대들이 믿으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대들이 고침을 받은 것을 느낄 때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나는 그것을 믿는다. 그렇게 되는 것은 내가 느끼기 때문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것이다.--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축복들을 구할 수 있으며, 또한 우리가 그것들을 받은 줄로 믿고, 받았으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다”(상게서, p. 51).

나의 회개와 자복이 충심으로 한 것이요 진실되게 한 것이라면,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의 용서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고, 구원의 확신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죄의 용서에 대한 확신, 구원에 대한 확신, 이 모두가 하나님의 약속을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는 것을 기억하자. 우리의 신앙은 느낌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기초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은 결코 거짓말하실 수 없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의 약속은 약속하신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또 우리는 무엇에 기초해서 회개하고 자복한 죄가 하나님 앞에 용서함을 받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가?


②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을 신뢰함으로 용서의 확신을 가질 수 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은 어떤 것인가?

“하나님은 죄는 미워하시나 죄인은 사랑하신다. 그래서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구원을 얻어 영광의 나라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주시었다.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하여 그가 택한 다음의 말씀보다 더 강하고 간곡한 언사가 또 어디 있으랴?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 49:15)고 하셨다”(정로의 계단, p. 54).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을 신뢰할 때, 우리는 회개하고 자복한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는 확신을 넉넉히 가질 수가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품을 떠난 탕자가 다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이끌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해 보자.

“탕자는 비록 가련한 처지에 있었으나 자기 아버지의 사랑을 확신함으로 소망을 찾게 되었다. 그를 집으로 이끌게 한 것은 곧 그 사랑이다. 이와 같이 죄인을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권면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사랑이 주는 보증이다”(실물교훈, p. 202).

하나님은 사랑으로 죄인을 이끄시며, 사랑으로 죄인을 회개로 이끄시는 분이시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을 믿음으로 신뢰할 때 왜 우리가 죄의 용서에 대하여 의심하며 염려해야 하겠는가? 회개하고 자복한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는 확신의 기초는 우리의 느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우리의 회개와 자복이 진실된 것이었다면, 하나님은 약속하신 그대로 용서해주시고 우리를 따뜻이 영접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더 이상 의심하지 말라. 의심과 불신은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슬프시게 하는 것이다.

또 우리는 무엇에 기초해서 회개하고 자복한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는 확신을 가질 수가 있는가?


③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에 기초할 때 용서의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 9:12-14).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8, 19).

우리가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자복할 때 반드시 가져야 할 믿음의 기초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이다. 우리의 죄를 속하고 정결케 하는 것은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에 있는 것이다.

갈바리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만이 우리 죄를 속할 수 있으며 정결케 하는 능력이다. 우리 마음속에 의심이 찾아올 때마다 십자가를 쳐다보아야 한다. 저 십자가가 무엇 때문에 세워졌는지를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은 참으로 크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피가 씻지 못할 죄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인간이 범하는 어떤 죄든지 갈바리에서 만족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열렬한 호소로서 계속적으로 죄인에게 철저한 속죄를 제공하고 있다”(가려 뽑은 기별, 1권, p. 343).

갈바리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는 그 어떤 죄라도 속(贖)하시며 씻어주시는 능력이 있다는 믿음을 가질 때, 용서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피가 어떤 죄는 속할 수 있고, 또 어떤 죄는 속할 수 없는 제한적인 효력을 가진 피가 아니다. 갈바리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는 진실되게 회개하며 자복하는 자에게 철저한 속죄를 제공해 주시는 넉넉한 능력이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믿을 때 용서의 확신이 생기는 것이다.

지금도 하늘 지성소에서 우리를 위하여 대언하시며 중보하시는 그리스도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라. 어떻게 중보하고 계시는가? “아버지시여, 이 죄인은 나의 피를 의지하여 죄를 회개하며 자복하고 있사오니 이 죄인의 허물을 보지마시고 나의 피의 공로를 보셔서 이 죄인을 용서해주시기를 탄원하나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무엇에 기초하여, 회개하며 자복하는 죄인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성부 하나님께 탄원하시는가? “나의 피를 보시고” 용서해 달라고 탄원하시는 것이다. 대제사장의 직분으로 중보하시며 탄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의 기초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피다. 그리스도의 피만이 우리의 죄를 속할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이요 치료제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며 그분께서 제공하시는 구원을 받아들이는 모든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용서의 축복과 죄의 사유하심과 의의 선물을 주시고자 기다리고 계신다.--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죄인들을 위하여 호소하는 웅변적인 탄원이다. 이 보혈이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주신다”(목사와 복음교역자에게 보내는 증언, p. 517).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여 진정으로 죄를 회개하며 자복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시고 용서해주신다. 죄를 회개하며 자복할 때마다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에 기초하라. 그리하면 용서의 확신을 갖게 될 것이다. 갈바리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를 정죄하고 심판하기 위하여 흘리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고 용서해 주시기 위하여 흘리셨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2) 사람들이 용서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용서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하고 의심하기 때문에 용서의  확신을 갖지 못한다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한 인간의 불신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신과 의심은 하나님을 슬프시게 할 뿐 아니라 죄가 된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사단이 하와를 어떻게 유혹했는가? “하나님이 정말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 하더냐? 네가 그것을 따먹는 날에는 하나님과 같이 되는 거야. 너는 결코 죽지 아니할 거야.” 그 순간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사단의 말을 더 신뢰하였다. 그 결과 하와는 범죄하고 말았다. 의심과 불신이 범죄의 원인이었다.

하나님께서 슬퍼하시고 싫어하시는 것은 불신이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다(히 11:6).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불신과 의심을 버려야 한다.

“많은 사람은 여기에서 실패한다. 즉 그들은 예수께서 그들을 직접 또는 개인적으로 용서하신다는 것을 믿지 아니한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믿지 아니한다. 조건대로 응하는 모든 자들은 그들의 모든 죄가 관대히 용서함을 받는다는 것을 아는 것은 그들의 특권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대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의심을 버리라. 그 약속은 모든 회개하는 범죄자를 위한 것이다”(정로의 계단, pp. 52, 53).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음으로 붙들라. 이것이 그대의 죄가 용서함을 받는 조건 중의 하나이다.

사람들이 용서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갖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을 불신하고 의심하기 때문에 용서의 확신을 갖지 못한다

하나님을 가장 슬프시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고 불신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는 것은 없다.

하루는 사랑스러운 아들이 엄마에게 이렇게 질문을 하는 것이다. “엄마, 엄마가 정말로 나를 낳아 주셨어? 아니면 나를 길가에서 주어다가 키워주셨어?” 이러한 말을 듣는 엄마의 마음이 기쁘겠는가? 아니면 슬프겠는가? 엄마는 그 아들을 품에 꼭 껴안고 하는 말, “아들아, 너는 내가 낳은 매우 소중한 아들이야.” 그런데 일주일쯤 지나서 또 다시 아들은 이렇게 질문을 하는 것이다. “엄마, 엄마가 정말 나를 낳아주신 거야?” 이렇게 매주 마다 아들이 묻는다면 그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쓰리고 아플까? 정말로 슬프고 슬퍼서 가슴에 멍이 들고 말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슬퍼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에 대한 불신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불신할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슬퍼하실까를 생각해 보라. 사랑하는 아들에게 사랑의 의심을 받을 때 그 엄마가 가슴에 멍이 드는 것처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도 몹시 슬퍼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의심하고 떠는 그대들이여 쳐다보라. 예수께서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그대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읽을 때에 그것들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과 긍휼을 표현한 것임을 기억하라. 무한하신 사랑의 하나님의 마음은 죄인을 무궁한 자애로써 생각하신다”(상게서, pp. 54, 55).

“그대들이 자복하고 회개함으로 그에게로 가까이 나아갈 때에 그는 자비와 용서로써 그대들을 가까이 하실 것이다”(상게서, p. 55).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이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을 의심하고 불신해야 하겠는가?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의심이 찾아올 때, 탕자를 따뜻이 맞아주신 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하자. 바로 그 아버지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라는 것을 기억할 때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에 대한 불신과 의심은 사라질 것이다.

사람들이 용서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갖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진실과 성심으로 회개하고 자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용서의 확신을 갖지 못한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요인 중의 하나는 성심을 다하여 진실 되게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피상적인 회개와 자복은 본인 스스로가 용서의 확신을 가질 수 없다. 형식적인 회개와 자복은 용서의 확신을 결코 주지 못한다. 진실함과 성심이 없는 회개와 자복은 용서의 확신을 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자복할 때 마음을 깊이 살펴야 한다. 하나님의 면전에서 회개하고 자복하고 있다는 것을 얼마나 실감하고 있는가? 진실 되게 회개하고 진심으로 자복하라. 우리의 회개와 자복이 참으로 진실되고 성심으로 한 것이라면, 용서의 확신은 자연스러운 결과로 갖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셨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라”는 주제를 연구해 보았다. 하나님은 은혜의 제공자요, 인간은 그 은혜의 수령자이다. 하나님 편에서는 은혜를 선물로 제공하신다. 인간 편에서는 그 은혜를 믿음의 손으로 받아들인다.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은혜는 오직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는 선물이다.

구원의 경험에서 하나님의 역할은 인간에게 용서의 은혜를 제공하시는 것이요, 인간의 역할은 믿음으로 용서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회개하고 자복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셨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자.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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