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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ble Bridge - Adventist Movement

연구서적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자복함으로 용서의 확신을 가진 사람의 생애에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는 일이다.

로마서 12장 1, 2절의 말씀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권면하고 있다. 몸과 마음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전인적 존재(total being)이다. 그런데 마음은 전인적 존재를 이끌어 가는 중심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몸은 마음의 방향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매우 중요한 것은 마음의 변화에 따라 몸의 행실도 변화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는 일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께 온전히 몸과 마음을 바치는 것을 “헌신”이라고 부른다. 지금부터 헌신에 관하여 함께 연구해 보도록 하자.




1. 헌신의 요구와 목적


(1) 선악간의 대쟁투의 싸움터는 어느 곳인가?


루스벨의 반역으로 선악간의 대쟁투가 하늘에서 시작되었다. 자신이 피조물이라는 위치를 망각하고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은 욕망과 교만으로 인하여 그는 타락하게 되었다.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사랑어린 호소에도 불구하고 끝내 그는 반역자가 되어 하늘 정부를 찬탈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는 실패하고 이 지상으로 추방되었다.

이 지구성으로 쫓겨난 사단은 또다시 똑같은 전술로 하와를 범죄케 하고 타락시키는 일에 성공한 것이다. 하와에게 사단은 어떤 말로 유혹했는가? “네가 그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와 역시 자신이 피조물이라는 위치를 잊어버리고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은 욕망 때문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범죄하고 타락하게 된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와 타락으로 이 지구성은 선악간의 치열한 대쟁투의 싸움터가 되고 말았다.

이제 이 치열한 선악간의 대쟁투는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서 계속되고 있다. 바로 우리의 마음이 선악간의 대쟁투의 싸움터가 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타락한 본성을 가진 자아(自我)와 사단과 더불어 싸움을 하면서 살아간다.

“자아(自我)와 싸우는 싸움은 일찍이 싸운 싸움 중에서 가장 큰 싸움이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키며, 자아를 바치는 일은 투쟁이 요구된다. 그러나 심령이 새로워져서 정결케 되려면 그 심령을 하나님께 복종시켜야 한다”(정로의 계단, p. 43).

그리스도인의 삶은 투쟁하는 삶이다. 죄로 기울어지는 성향을 가진 타락한 자아의 본성과 더불어 싸워야 하고, 사단의 유혹과 싸워야 하며, 세상과 더불어 싸워야 한다. 한 마디로, 죄와의 싸움을 계속하면서 살아간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선과 악의 대쟁투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선악간의 대쟁투의 싸움터는 바로 우리의 마음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2) 누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기를 요구하시는가?


우리를 죄의 권세와 영원한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그분께 온전히 바치기를 요구하신다. 사랑 어린 음성으로 “너의 마음을 나에게 바치어라”고 호소하고 계신다. 그러나 헌신을 억지로 강요하지는 않으신다.

“하나님의 정부는 사단이 주장하는 것처럼 맹목적 굴종이나 무리한 제재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정부는 이지(理智)와 양심에 호소한다”(상게서, p. 43).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성과 양심에 무엇이라고 호소하고 계시는가? 죄를 회개하고 자복한 우리의 마음을 그분께 전적으로 바치기를 호소하신다. 어떻게 호소하시는가?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잠 23:26).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되 네 맘을 나에게 바치어라

너 어디 있든지 날 섬기며 기쁘게 날 항상 의지하라

바치어라 네 마음을 주께서 나에게 속삭이네

캄캄한 죄에서 불러내어 주께서 늘 인도하시리라”

(찬미가, 340장)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범죄하고 타락한 인류를 구속하시고 화목케 하셔서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켜 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음을 바치기를 원하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요구는 강제성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자발성에 의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고 깨닫게 해 주심으로 사랑에 이끌리어 마음을 자발적으로 바치게 하신다.


(3)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도록 호소하시는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시켜 주기 위하여 마음을 바치라고 호소하신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 3:10).

“온 마음을 반드시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시키는 그 변화가 우리에게서 결코 일어날 수가 없다.--심령이 새로워져서 성결케 되려면 그 심령을 하나님께 복종시켜야 한다”(정로의 계단, p. 4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음을 바치도록 호소하시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깊이 숙고해 보아야 한다. 인간이 창조주의 손에서 창조되었을 당시에는 매우 거룩하고 고상하며 행복스럽게 창조되었다. 그러나 범죄로 말미암아 인간의 본성은 타락하고 비뚤어져 버렸다. 생각하는 것이 악으로 기울어지고, 취미와 정서도 왜곡되었으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보다는 자기 고집대로 행하기를 더 원하는 타락한 본성을 가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인간의 의지는 너무나 연약해져서 자신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무지 의를 이룰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러한 우리의 상태를 성경은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엡 2:1) 자요,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사 1:5, 6)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또한 사단의 올무에 걸려 그에게 사로잡힌 자가 되고 말았다.

이러한 상태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고쳐주시고 해방시켜 주시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신다. 죄의 세력에서 자유함을 누리기 위하여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그것이 마음의 변화이다. 마음의 전적인 변화를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그분께 바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온전히 새롭게 변화되어 회복시키시려고 마음을 바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마음을 

바치라고 호소하신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2).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우리 안에서 이루시기 위하여 우리 자신을 당신께 바치기를 청하신다”(상게서, p. 44).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당신의 기쁘신 뜻을 이루시려면 인간 편에서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의지를 결코 강제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칠 때에 성령 하나님은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도록 우리를 도와주신다. 우리 스스로는 결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온전히 이룰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 안에서 (in us, for us)” 역사하셔야만 한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의지를 강화시켜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 속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우리의 소원으로 두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 일을 행하도록 역사하시고 도와 주신다. 이것이 우리 속에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 이것이 인간이 하나님과 협력할 때 이루어지는 경험이다. 우리 안에서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도록 준비하는 길이 무엇인가? 그것은 곧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기를 하나님께서 요구하고 계신다.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켜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도록 하기 위하여 헌신을 요구하신다. 그대의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고 싶지 않은가?


2. 헌신의 의미


(1) 왜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그분께 바치도록 강제하지 

않으시는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피조물들의 의사를 강제하시지 않으신다. 그는 자원하는 마음과 이성적으로 바치지 않는 경배는 받으실 수가 없다. 다만 억지로 굴종하는 것은 마음과 품성의 진정한 계발을 방해하게 되고, 사람으로 하여금 한갓 자동인형이 되게 할 것이다. 이것은 창조주의 뜻이 아니다”(정로의 계단, pp. 43, 44).

남녀 간의 사랑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야구 방망이를 들고 가서 자기를 사랑하도록 위협하며 강요하는 남성이 있다면, 사랑을 강요받은 여인의 마음에서 진정한 사랑이 우러나오겠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진정한 사랑은 강요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얼마 전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 뉴스에 보도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어린 십대 소녀가 난폭한 남성에게 납치되어 성인이 되기까지 작은 사재 감방에 감금되어 아이를 낳기까지 사랑을 강제로 강요받아 왔다. 그러던 중 요행히도 그곳에서 탈출하게 되어 온 세상 앞에 자신의 억울함을 폭로하고 호소하는 사건이었다. 사랑은 결코 강제로 강요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

사랑의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의 선택권을 주셨으며, 그것을 매우 존중하신다. 그러므로 인간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마음을 바치고, 사랑하며, 경배하기를 원하시는 창조주이시다. 사랑의 하나님은 사랑 어린 음성으로 호소하는 분이시지, 강제하는 분이 아니시다.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출해 내시고,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심으로, 우리를 회개와 자복으로 이끄시며, 용서해 주심으로, 우리의 마음을 그분께 자원하여 자발적으로 바치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2)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는 일에서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


① 죄로 더러워진 마음은 버려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모든 것을 바친다고 할 때에 우리가 버리는 것은 무엇인가? 곧 죄로 더러워진 마음이다. 이것을 예수의 피로 깨끗이 씻어 순결케 하여 그분의 비할 데 없는 사랑으로 구원받는 바 되기 위하여 그분에게 바치는 것이다”(상게서, p. 46).

죄로 더러워진 마음은 버려야 한다. 새로운 마음을 받기 위해 죄로 얼룩진 마음은 버려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버리는가?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께로 나아가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을 받고 정결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거듭난 새 마음을 하나님께로부터 얻기 위하여 죄로 더러워진 낡은 마음은 회개와 자복을 통하여 씻음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더러운 흙탕물로 가득찬 그릇은 깨끗한 새물로 채워지기 전에 깨끗하게 씻겨져야 한다. 우리의 심령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죄로 더러워진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해 주시기를 원하시는데 왜 우리가 그 일을 지체시켜야 하겠는가? 죄로 얼룩진 심령을 주님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도록 하자. 새로운 아침이 찾아올 때마다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자.


“하나님이시여, 이 아침이 새로운 것처럼

나의 마음도 새롭게 되기를 열망하오니

죄와 허물로 얼룩진 나의 심령을

주님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주님의 의의 두루마기를 입혀 주심으로

은혜의 보좌 앞에 열납되는 심령이

되게 하옵소서”


②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하는 것은 버려야 한다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버려야 한다. 재물의 신(神)은 많은 사람의 우상이다. 돈을 사랑하고 재물을 탐하는 것은 그들을 사단에게로 붙들어 매는 금 사슬이다. 명망과 세속적 명예는 또 다른 사람들에 의해 숭배되고 있다. 이기적 안락의 생애와 책임을 면하려고 하는 것은 또 다른 사람들의 우상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노예적인 속박은 끊어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정로의 계단, p. 44)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유익한 것을 버리라고 결코 요구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 마음을 전적으로 바치는 일에 있어서 장애물이 되는 것을 버리라고 하신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면서 아직도 마음속에 품고 있는 우상들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우상이 내 마음속에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힘입어 버려야 한다. 아직도 회개하고 자복하지 않은 죄를 마음속에 품고 있지는 않은지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한다.


(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전적인 헌신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가 절반은 주의 것이 되고 절반은 세상 것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상게서, p. 44).

하나님은 나누어진 마음을 결코 원하지 않으신다. 전적으로 온전히 바쳐진 마음을 받으신다. 전적으로 바쳐지지 않은 마음은 하나님이 가납하지 않으신다. 한 손은 세상을 붙들고 또 다른 한 손으로는 하늘을 붙들 수가 없다. 마음속에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을 마음의 주인으로 선택하지 않는 자는 결국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 전적인 헌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잘 알 수 있다. 모든 물건은 그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쓰여지도록 전적으로 바쳐져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의 호주머니에 펜이 들어 있다. 그 펜은 글을 쓰는 사람에게 전적으로 바쳐져야 한다. 만일 내가 그 펜을 가지고 정확하게 글을 쓰기 원한다면 그 펜은 나의 손에 전적으로 바쳐져야 하는 것이다. 만일 다른 사람이 부분적으로 그 펜을 붙잡고 있다면 나는 정확하게 글을 쓸 수가 없다. 옷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옷을 가지고 동시에 두 사람이 입을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바치지 않고서도 매일 매시간 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실 수 있다고 기대하는가? 하나님의 성령이 내재하셔서 능력 있게 역사하실 수 있는 한 가지 조건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마음을 바치는 것이다. 전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바치지 않는 한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실 수가 없다. 결코 나뉘지 않은, 온전한 마음의 헌신이 요구된다.


(4)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야 할 것은 무엇인가?


“아람 왕 벤하닷이 그 군대를 다 모으니 왕 삼십 이인이 저와 함께 있고 또 말과 병거들이 있더라 이에 올라가서 사마리아를 애워싸고 치며 사자들을 성중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벤하닷은 이르노니 네 은 금은 내 것이요 네 처들과 네 자녀들의 아름다운 자도 내 것이니라 하매 이스라엘 왕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내 주 왕이여 왕의 말씀 같이 나와 내가 가진 모든 것은 왕의 것이니이다”(왕상 20:1-4, 킹제임스역).

아합이 벤하닷에게 요구받은 것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전적으로 바치라”는 것이다. 아합은, “나와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왕의 것이니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아합은 첫째로, 자기 자신이 왕의 것이라고 말했으며, 둘째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왕의 것이라고 말했다. 바로 이것이 전적으로 온전히 바친다는 의미이다.

“내 자신과,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니이다”라고 기꺼이 말할 수 있는 것이 전적인 헌신이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 전적으로 바쳐야 할 것은 무엇인가?


① 우리의 마음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첫째로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우리의 마음에는 세 가지 영역이 있는데, 그것은 지적 영역, 정적 영역, 의지적 영역이다. 다시 말해서,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송두리째 하나님께 바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거룩한 진리를 깨닫게 되며, 우리의 정서가 거룩한 것을 좋아하게 되고, 우리의 의지가 기쁨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하나님은 바라고 계신다.

한 사람의 인격체에서 마음이란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이다. 그 사람의 마음의 상태가 그 사람의 인격을 좌우하고, 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한다. 한번 상상해 보라. 사람이라는 인격체에서 “마음”이라는 요소를 빼앗아 버리거나 제거시켜 버릴 수가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사람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아무런 감각이 없는 살아있는 고기 덩어리에 불과할 것이다. “마음이 곧 그 사람이다”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타락한 상태 가운데 버려진 마음은 타락한 인간으로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다. 범죄와 타락으로 얼룩지고 병든 마음을 새롭게 치유하셔서 창조주의 형상으로 회복시키시는 것이 하나님의 구속 사업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이 우리를 위하여 우리 안에서 이루시기 위하여 우리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호소하신다. 그대의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고 싶지 않은가? 지금 그대의 마음을 누구에게 바치고 있는가? 그대의 마음의 주인은 누구인가? 무엇이 그대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자.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께 전적으로 바침으로 성령께서 나의 의지를 온전히 주관하시도록 허락하자. 내 마음대로 행하고자 하는 권리를 하나님께 바침으로 성령께서 나의 마음을 온전히 지배하시고 이끄시도록 허락하자.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주시도록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자. 전적으로 하나님께 자아를 굴복시킴으로 하나님께서 내 마음의 주인이 되도록 허락하자. 이것이 마음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바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 온전히 마음을 바친 자는 자신의 마음뿐만이 아니라 또 무엇을 하나님께 바치게 되는가?


② 우리의 재능이다

아합이 산발랏에게 절대적인 굴복을 하면서 대답한 말을 다시 상기해 보자. “내 주 왕이여, 내 자신과,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왕의 것이니이다.” 우리가 가진 것들이 무엇일까? 진정으로 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친 사람은 마음뿐만이 아니라 자기가 가진 재능도 하나님께 기꺼이 바치게 된다. 우리의 재능은 어디서 생겨난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선물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선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바쳐져야 한다.

“냥쭝은 아무리 적을지라도 사용하여야 한다. 우리에게 가장 크게 관계되는 문제는 내가 얼마나 받았는가 하는 것이 아니요, 내가 받은 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의 온갖 능력을 발달시키는 일이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 동포들에게 대한 첫째 의무이다. 재능과 유용성이 날마다 자라나지 않는 자는 인생의 목적을 이루지 않는 자이다”(실물교훈, p. 329).

“냥쭝은 사용 할수록 증가된다.--그는 우리의 부족한 재간을 기적적으로 채워주시지 않으신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에게 있는 것을 활용할 때에 그는 우리의 온갖 능력을 더하고 강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와 협력하실 것이다. 주를 위한 봉사에 온갖 정성과 진실된 희생을 기울임으로 우리의 능력은 증가될 것이다”(상게서, pp. 353, 354).

“우리의 천부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재능보다 그 이상으로 요구하지도 않으시고 그 이하로 요구하지도 않으신다.--사용하지 아니한 재능에 대하여서도 향상시키지 아니한 것과 같이 주께서는 책임을 추궁하신다.--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우리의 능력을 사용하지 아니함으로 우리가 마땅히 했어야 할 것을 성취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상게서, pp. 362, 363).

“물질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영계(靈界)에서도 그러하다. 사용하지아니한 능력은 약하여지고 쇠하여진다. 활동은 생명의 법칙이다. 게으름은 사망이다.--사람이 받은 선물은 남을 복되게 하기 위하여 사용되어질 때에 그것은 증가된다”(상게서, p. 364).

우리 각자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살피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재능이 무엇인지를 찾아보자. 어떤 자에게는 가르치는 은사를, 어떤 자에게는 봉사하는 은사를, 또 다른 이들에게는 구제하는 은사를, 또 긍휼을 베푸는 은사를, 또 다스리는 은사 등등을 성령께서 선물로 주신다(롬 12:6-8; 고전 12:4-11). 각자가 받은 은사와 재능을 찾아내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바쳐지고 쓰여져야 한다. 하나님께 온전히 마음을 바친 자는 자신의 마음과 재능뿐만이 아니라 또 무엇을 바치게 되는가?


③ 우리의 재물이다

진정으로 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친 사람은 마음과 재능뿐만이 아니라 자기의 재물도 기꺼이 하나님께 바치기를 원한다. 우리가 가진 재물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재물도 즐겁게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이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절절히 체험한 사람은 마음과 재능과 재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꺼이 바치고 싶은 충동과 열망을 갖게 된다. 이러한 동기부여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체험할 때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가장 귀한 독생자를 죽음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게 될 때에 내가 가진 전부를 하나님께 바치고 싶은 충동과 열망이 생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재물을 맡겨 주신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재산을 얻을 능력을 주신다. 그분은 땅에 하늘의 이슬과 또한 소성하게 하는 비의 소나기로 물을 주신다. 그분은 땅을 따스하게 하는 햇빛을 주심으로 만물에게 생기를 주고 초목을 무성하게 하여 열매를 맺게 하신다. 그리고 그분은 당신의 것을 당신께로 돌리기를 요구하신다”(실물교훈, p. 35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의 재물을 바치는 일에 주저하거나 인색하다면 아직도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나를 구원하셔서 영원한 생명, 하나님과 같은 생명을 얻게 하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어떠한 희생을 바치셨는가를 깨닫고 체험한 사람의 마음속에는 저절로 모두를 바치고 싶은 충동과 열망이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물을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

“주께서 우리에게 금전을 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높이고 영화롭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신실한 청지기로서 이 금전을 하나님을 존경하고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사용하여야 한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재물 가운데 일부분만이 주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종교적 목적과 구제 사업을 위하여 얼마큼 제한 다음에 그 나머지는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마음대로 사용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이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다 주의 것이므로 우리는 그것을 사용한 용처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한다. 우리가 쓰는 모든 돈은 우리가 하나님을 최상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지의 여부를 보여줄 것이다”(상게서, p. 351).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꺼이 재물을 바치는 자에게 또 다시 축복으로 갚아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자.

“우리가 우리의 재물을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할 것 같으면 그는 우리에게 더 많이 주실 것이다.--우리는 작은 일에 충성함으로써 더하기 법을 따라 행할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는 곱하기 법에 따라 우리를 위하여 도우실 것이다”(상게서, pp. 354, 360).

하나님께 온전히 마음을 바친 자는 자신의 마음과 재능과 재물뿐만이 아니라 또 무엇을 바치게 되는가?


④ 우리의 생명이다

아합이 산발랏에게 절대적으로 굴복했을 때에 대답한 말을 다시 상기해 보자. “내 주 왕이여, 내 자신과,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왕의 것이니이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 “절대적인 굴복(absolute surrender)”을 통하여, 자기 자신과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진정한 헌신의 의미인 것이다.

진정으로 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친 사람은 자신의 마음과, 재능과, 재물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까지 송두리째 기꺼이 하나님께 바치기를 원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거듭난 사람은 자신의 생명이 더 이상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주장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창조를 통하여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요,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하여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의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명은 이제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진 것이 된다.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내 안에 거하시고, 내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을 아는 자들은 더 이상 자신의 생명을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주장하지 않는다.

영원한 사망의 선고를 받고 마땅히 죽어야 할 운명을 가진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영원히 살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나의 생명은 나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생명까지도 기꺼이 번제단 위에 바쳐지기를 주저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바쳐진 전적인 헌신이 어떠한 것임을 믿음의 선조들은 그들의 생애로 잘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한결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꺼이 순교를 당했으며,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격한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찬송을 부르며 기꺼이 순교하게 된 것이다. 어찌 그들뿐이랴? 초대교회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사랑하는 이유 때문에 로마의 원형극장에서 굶주린 맹수들의 밥이 되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들의 입에서는 한 마디의 원망이나 저주도 없이 기꺼이 순교장으로 나아가지 않았던가? 초기교회 시대가 지나고 종교 암흑시대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이유 때문에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박해와 핍박 속에 그들의 생명을 바쳤던가? 알프스 산기슭에서 수많은 왈덴스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이유 때문에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던가? 저 알프스가 증언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은 달빛에 비쳐 은빛으로 눈부신 백설의 계곡, 그 아름다운 색조 위에 죄 없는 어린 아기들의 검붉은 피가 얼마나 많이 뿌려졌던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피가 알프스의 계곡을 붉게 물들이지 않았던가? 그들은 자신들의 생명까지 송두리째 번제단 위에 기꺼이 바쳤던 것이다.

그들은 부활의 아침을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생명을 제물로 기꺼이 바친 것이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바쳐진 생명은 부활의 아침에 다시는 썩지 아니할 영원한 생명, 하나님과 같은 생명으로 되돌려 받게 될 것이다. 바로 희생의 법칙은 곧 생명의 법칙임을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7:25).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체험한 자는 자신의 생명까지 온전히 하나님께 기꺼이 바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바쳐진 생명은 결코 희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되돌려 받게 되는 축복임을 기억하자.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후 15:51, 52). 이 얼마나 복스럽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약속인가? 이러한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에게 어찌 죽음이 두려운 것이 되겠는가? 하나님께 온전히 마음을 바친 사람은 자신의 마음과 재능과 재물과 생명과 함께 또 무엇을 바치게 되는가?


⑤ 우리의 삶 전체이다

진정으로 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친 사람에게는 자신의 마음과, 재능과, 재물과, 생명과 함께 삶 전체를 송두리째 하나님께 바치게 된다. 그는 이렇게 고백하게 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이제 그는 하나님의 손에 자신의 삶 전체를 전폭적으로 바쳐 버린다. 이제는 자기가 삶을 주관하지 않고 전적인 굴복을 통하여 성령께서 지배하시며 삶을 주관하시도록 맡겨 버린다.

그의 인생의 의미와 목적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이제는 자신만을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나를 구원하시고 사랑하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로 굳게 결심하게 된다. 이제부터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고전 10:31) 살기로 결심하며 헌신하게 된다.

이러한 헌신은 영웅 심리에서 우러나온 것도 아니요 신앙적 성취를 과시하기 위해서도 아니라, 그가 발견하고, 만나고, 깨닫고, 체험한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결과일 뿐이다. 나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체험할 때 그 은혜에 감격하여 눈물로 번제단 위에 자신의 삶 전체를 제물로 바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고후 5:15) 살기로 헌신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다윗의 헌신적인 고백을 들어보자.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

우리의 마음, 우리의 재능, 우리의 재물, 우리의 생명,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다. 오늘 이 순간 살아 있는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은 창조와 구속으로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려드려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 온전히 마음을 바친 자의 생애에서 나타나는 열매이다. 다윗처럼 우리도,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을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라고 헌신의 고백을 하고 싶지 않은가?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하나님께 남김없이 자신을 헌신하는, 오직 이 하나만을 뜻하는 것이다”(Jurgen Moltmann, The Crucified God, p. 39; 조지 R. 나이트, 손윤호 역, 21세기 재림신도의 성화와 완전, p. 87).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신 분께 우리 자신을 드리는 것을 너무 심하다고 할 수 있을까?”(성화된 생애, p. 94).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가장 귀하고 소중한 독생자 그리스도를 죽음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를 깊이 깨닫고 체험하게 될 때, 우리도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그분께 기꺼이 드리고 싶은 거룩한 충동이 솟구치게 되는 것이다.


(5)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께 마음을 온전히 바칠 수 있는가?


“많은 사람은 내가 어떻게 내 자신을 하나님께 바칠 것인가라고 묻는다.--그대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곧 의지의 진정한 힘이다. 이것은 사람에게 있는 지배력이요, 결정력이요, 선택력이다. 만사는 의지를 옳게 사용하는 여부에 달렸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선택권을 주셨다. 그대들은 이것을 사용할 것이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마음을 고칠 수 없고 그대 자신으로는 애정을 하나님께 바칠 수 없다. 그러나 그대들은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할 수는 있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의지를 하나님께 바칠 수가 있다. 그리하면 그분은 그대들 안에서 그대들의 원하고 행하는 것을 당신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하게 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들의 온 본성은 그리스도의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되고, 그대들의 애정은 그분에게 중심을 두게 되고, 그대들의 사상은 그분과 조화될 것이다.--의지를 옳게 사용함으로써 그대들의 생애에는 전적 변화가 생기게 될 것이다. 그대들의 의지를 그리스도께 바침으로써 그대들은 정사와 권세를 초월한 능력으로 더불어 연결되는 것이다. 그대들은 그대들을 굳게 서게 할 힘을 위로부터 얻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하나님께 끊임없이 바침으로 말미암아 새 생애 곧 믿음의 생애를 살 수 있게 될 것이다”(정로의 계단, pp. 47, 48).

구체적으로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칠 수가 있는가? 우리의 의지를 활용하여 하나님께 바칠 수 있다. 첫째는,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해야 한다. 둘째는,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 셋째는, 우리의 마음을 성령께서 지배하시고 주관하시도록 허락하여야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칠 때에, 우리는 정사와 권세를 초월한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과 연합하게 되는 것이다.


3. 헌신의 복된 결과


(1)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칠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가?


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다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할 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 안에서” 놀라운 역사를 시작하신다. 우리의 의지를 전적으로 하나님께 굴복시킬 때 죄로 기울어지는 타락한 본성은 성령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다. 성령께서 우리의 의지를 강화시켜 주셔서 성령을 좇아 행하도록 도와주신다. 이처럼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고 도와주신다. 그러므로 성령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역사하시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의 마음을 전적으로 바치는 일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끊임없이 계속하여 우리 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칠 때에 우리는 초자연적인 능력의 근원과 밀접하게 연합하는 것이다. 이것이 승리의 비결이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우리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게 된다

우리의 타락한 본성은 너무나 연약하여 우리의 의지로는 도무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심령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의 의지가 강화된다. 성령께서 우리의 의지를 강화시켜 주시고 능력으로 우리를 도와주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행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역할과 인간의 역할을 볼 수 있다. 인간은 하나님과 협력함으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이룰 수 있다. 인간 편에서 최선을 다한 후에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인간은 하나님과 협력해야 하는 것이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는 주님의 말씀을 깊이 명심해야 한다.


③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를 변화시켜 주신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이 거듭나게 하는 능력은 사람의 마음 안에 새 생명을 낳게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새 사람을 만들어 낸다”(상게서, p. 57).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온전히 마음을 바치라고 요구하시며 호소하시는가? 그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하시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바칠 때에 우리의 생애 속에서 헌신의 목적과 일치하는 동일한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복된 결과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 3:9, 10).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거듭나고 성화될 때 지식에까지 새로운 변화가 일어난다. 신령한 지식을 깨닫는 자가 된다. 구속의 오묘한 진리를 깨달아 아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 이것이 죄를 회개하고 자복함으로 용서를 받은 개인이 하나님께 온전히 마음을 바칠 때에 그 결과로 나타나는 열매이다.


(2) 누가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게 되는가?


선과 악의 세력 아래서 우리 마음의 주인은 누구인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싸움을 우리는 날마다 하고 있다. 사단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범죄하도록 유혹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그분께 바치기를 사랑으로 호소하고 계신다. 과연 나의 마음의 주인은 누구인가? 그 선택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선악간의 대쟁투가 종국에 이르면, 이 땅의 거민들은 선악간의 세력 아래 강력한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결국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지게 될 것이다. 한 부류는 성령의 충만한 무리, 또 한 부류는 악령의 충만한 무리가 될 것이다. 전자는 하나님을 마음의 주인으로 선택한 자들이요, 후자는 사단을 마음의 주인으로 선택한 자들이다.

우리가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칠 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주관하시고 지배하신다. 죄로 기울어지는 성향을 가진 타락한 본성은 성령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의 주인이 되시는 것이다.

“누가 마음을 지배하는가? 우리의 생각이 누구에게 있는가? 우리가 누구에 대하여 말하기를 좋아하는가? 우리의 가장 열정적인 애정과 우리의 최대의 정력을 누가 지배하고 있는가?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면 우리의 생각은 그에게 있을 것이요 그분을 생각하는 일은 우리의 가장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소유와 우리의 몸을 다 그에게 바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형상을 입고, 그분의 정신을 나타내며, 그분의 뜻을 행하여 범사에 그분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할 것이다”(정로의 계단, p. 58).

본장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온전히 마음을 바쳐라”는 주제를 연구해 왔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굴복함으로 온전히 마음을 바치는 것은 희생이 아니라 축복의 결과로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기억하자.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조건은 그분의 손에 전적으로 바치는 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하자! 만일 우리의 심령이 그렇게 하기를 기꺼이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어떤 일을 행하실지, 또 하나님께서 베푸실 축복이 어떠한 것인지는 끝이 없는 것이다”(Andrew Murray, Absolute Surrender, pp. 7, 8)라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풍성하게 흐르는 은혜를 받고 그분과 협력해서 일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우리처럼 가련하고, 연약하고, 허약한 사람들과 함께 무엇을 하기 원하실까? 하나님께서 우리와 더불어 무엇을 하실 수 있을까? 우리가 모든 것을 기꺼이 바칠 것 같으면,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다”(우리의 높은 부르심, p. 19).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자.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아가 하나님께 우리의 의지를 전적으로 굴복함으로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온전히 주관하시도록 허락하자. 그래서 우리의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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