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계와 성경은 둘 다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생명과 지혜와 기쁨의 근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매우 거룩하고 행복스럽게 창조하셨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땅이 조물주이 손으로 창조되었을 당초에는
쇠퇴의 증상이나 저주의 음영이 도무지 없었다.
그렇던 것이 비애와 사망이 이 세상에 이르게 된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 ㅡ 사랑의 율법 ㅡ을 범한 까닭이다.
이 세상이 비록 타락하기는 하였으나 모두가 슬픔과 비애 뿐은 아니다.
천연 그 자체 가운데서 희망과 위안의 기별을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문구는 방싯방싯 피는 꽃봉오리마다
뾰족뾰적 돋아나는 풀싹마다 기록되었다.
공중을 즐거운 노래로 충만케 하는 아름다운 새들, 향기를 풍기는 연연하고 고운 꽃들,
잎이 청청하게 무성한 수풀의 교목들,
이 모든 것은 우리 하나님의 인정 있고 자부적인 권고와
그 자녀를 행복하게 하시려는 갈망을 증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품성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과 긍휼을 반포하셨다. (출33:18,19 출 34:6,7 욘4:2 미7:18)
사단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은 그 주요 특성이 엄혹하게 처단하시는 자
ㅡ 엄격한 법관이나 각박하고 인색한 고리 대금업자ㅡ와 같이 생각하게 한다.
또한 사단은 조물주는 사람들의 허물과 잘못을 찾아내 저들에게 벌을 주려고
질투하는 눈으로 항상 주목하는 분인 것처럼 보여준다.
예수께서 인류 가운데 사시려고 오신 것은
그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세상에 나타내심으로 이렇게 몽매한 오해를 없애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하늘에서 강림하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나타내시기 위함이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서 행하실 당신의 사명을 말씀하시기를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케 하려 하심이라(눅 4:18)고 하였나니
이것이 그의 사업이었다.
예수께서는 진리의 말씀을 하나라도 숨기지 아니하시고
항상 사랑으로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의 생애 가운데 나타난 그의 품성은 이러하였나니
이것이 곧 하나님의 품성이다.
육신으로 나타난 하나님(딤전 3:16).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그 무한하신 사랑을
타락한 세상에 부어주시는 일에 매개자가 되셨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요일3:1)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세상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은
우리의 심령을 부드럽게 하며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아
하나님의 뜻에 순종케 한다.
--------------------------정로의 계단 제1장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중에서
---- 11년 전, 벌주려고 감시하는심판의 하나님으로 오해하고 있던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아름다운 천연계로 이끄셨다.
너무나 아름다운 꽃들과 나무들, 강과 언덕과 동물들을 보게 해 주셨다.
나는 궁금해서 맘속으로 물었다.
'왜 하나님은 아름답게 창조하시고는 심판하시지? 어차피 멸망시키실거잖아'
그런데 아름다운 천연계에서 나는 위안과 쉼, 그리고 기쁨을 얻었고
하나님께서는 내 마음에 말씀하셨다.
"니가 행복하라고 만들었다"고 ...
그후....
하나님은 나의 행복에 너무나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는 걸 깨닫고 나서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여 오늘까지 살아가고 있다.
아직은 부족하고 서툴고 흠집투성이지만 매일 조금씩 더 쌓여간다...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들과 말씀들이....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고 있을때도
나를 위해 중보하신 예수님의 사랑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오, 하나님 내 아버지....
오늘도 사랑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아버지의 뜻대로 인도하여 주시는 것이
제게 진정한 행복임을 이제는 아오니
저를 당신의 뜻대로 인도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