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섭리
(자궁 근종)
“언니, 여기는 천국이야, 언니도 와라. 여기 오면 언니 금방 나을 수 있어.”
6월 어느 날 이른 아침, 하동에 있는 어느 수양원으로 간다는 전화를 남긴 채 자신의 집을 떠난 현자가 며칠 후 전화를 하였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밝았고 들떠 있었으며 매우 행복했습니다. 이렇게 밝은 목소리를 들은 것이 너무 오랜만이었지만 저는 픽 웃으며 “난 매일 천국에 살아.”라고 대답했습니다. “언니, 잘난 척하지 말고 여기 와라, 정말 좋다니까.. 어떤 병도 나을 수 있어.” 저는 이렇게 벧엘수양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7년 전 유방암 수술을 받은 후 뼈로 전이되어 계속 항암치료를 받던 그녀의 몸은 당시 온몸에서 진물이 흘렀고 머리카락뿐 아니라 손톱 발톱이 다 빠져 매우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러던 그녀가 다 나았다며, 그 후에도 몇 번이나 꼭 한 번 오라며 간곡하게 전화를 하였습니다.
마침 3박 4일의 윤독회도 끝났고 매주 한 번 지도 교수님과 하던 스터디도 한주 간 방학을 하였기 때문에 학우들과 하던 스터디에 양해를 구하고 1주일만 다녀오기로 하였습니다. 1주일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으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 동안만이라도 서울의 더위와 오염된 공기를 떠나 있으면 마음이라도 휴식을 얻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저는 벧엘수양원으로 향하였습니다.
8월 3일 오후 4시가 지나서야 하동에 도착하였습니다. 택시를 탔더니 기사분이 백미러로 저를 보며 물었습니다.
“건강해 보이는데 어디가 안 좋나요?”
“한두 군데가 아니라서 말씀드리기가 복잡하네요..”
“그래요, 그래도 그곳에 가면 다 나을 수 있을 거예요. 내가 아는 택시기사 한 사람도 거기서 당뇨병을 고쳤거든요. 그 대신 원장님이 하시는 말씀을 잘 믿어야 합니다. 그곳엔 별스런 병도 다 낫는다고 합디다.”
그분의 말에 피식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저는 알지 못하는 사람 말 잘 안 믿어요, 어떻게 무턱대고 믿나요?”
기사분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벧엘수양원이라는 노란색 팻말이 눈에 들어오고 차는 곧 논 사이로 난 구불구불한 길을 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과연 어떤 곳이기에 현자도 기사분도 이렇게 확신에 차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지난 4월 중순에 유방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누구나 그러하듯 저도 생각지 못한 암 선고를 받고 잠깐이지만 눈앞이 아득하였습니다.
작년 11월 중순 빗길에서 미끄러져 다리골절을 수술한 지 5개월 만에 또 수술이라니... 머릿속이 복잡하였습니다. 당시는 박사과정 마지막 학기였고 다리골절 때문에 3개월 반을 쉰 아르바이트(초•중생들 그룹지도)를 다시 시작한 지 한 달 반 밖에 되지 않았으며 제가 관여하고 있던 출판사에서 6월에 출간될 책의 원고를 정리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의사선생님께 두 달 후에 수술하면 안 되냐고 여쭤보았습니다. 의사선생님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암이 뭔 줄 알아요? 그렇게 기다릴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다행히 초기라 나흘만 입원하면 되니까 빨리 준비하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나흘만 입원하면 된다는 말에 다음 날 입원을 하여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수술 후 나흘은 열흘로 바뀌었습니다. 퇴원 후 잠시도 쉬지 않고 저는 예전과 똑같이 생활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피곤하였습니다. 할 수 없이 반 달 만에 아르바이트를 접었습니다. 당장 생활비가 걱정이었지만 1년 정도는 쉬어도 되지 않겠는가,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며 일을 정리하고나니 집에 일찍 올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아르바이트를 핑계로 참석하지 않았던 콜로키움, 스터디 등이 저를 유혹하였고 계속 제출해야 하는 페이퍼가 있었습니다. 여전히 힘들었고 여전히 피곤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계속 미루어졌던 몸의 한 부분이 또 저를 괴롭혔습니다. 바로 자궁을 꽉 채우고 있는 근종들이었습니다.
저는 99년도에 자궁근종과 내막염 수술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근종이 또 자라서 자궁 속을 채웠습니다. 그래서 작년 여름 방학에 수술을 잡았으나 당시 서울대병원이 장기간 파업을 하는 바람에 수술이 미루어졌습니다. 파업으로 제게 주어진 시간이 자꾸 줄어들자 저는 수술을 포기하고 한방치료를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지도 교수님께서 소개해 주신 그 한의사는 근종을 없앨 수는 없으나 크기를 줄일 수는 있다고 장담하였습니다. 5개월 동안을 다니면서 여섯 재의 한약을 먹고 두 달 간은 매일 침을 맞았고 집에 와서는 뜸을 떴습니다. 1시간 10분이나 걸리는 그곳엘 다니면서 저는 매우 지쳤습니다. 혹이 처음에는 줄어드는 듯했으나 별다른 변화가 없었습니다. 혹이 크고 많아서 내 손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그 고생을 하면서도 줄어들지 않는 혹을 만지며 겨울 방학에는 수술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11월에 다리 골절 수술을 하는 바람에 그것은 올 여름 방학으로 미루어졌고 4월에 유방암 수술을 하는 바람에 또 10월로 미루었습니다. 잠자리에 누워서 배를 만지면 전해지는 혹의 딱딱함.
오늘은 이 자리, 내일은 저 자리.. 여기 저기 자리를 옮기며 내 자궁 속에서 머무는 그 혹은 생리 때가 되면 더욱 커지고 무거워 배가 처지는 것 같았습니다. 계속 수술이 늦춰지면서 혹시 수술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수술 외에 이 혹이 해결 될 길은 없었습니다. 한약도 먹을 만큼 먹었고, 침도 맞을 만큼 맞았으며 뜸도 열심히 떴건만 혹은 여전하였고, 하나님께 기도도 드려봤지만 혹은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다리에 박은 철심 빼는 수술도 해야 하는데 자궁 수술을 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가지 수술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하나님, 당신의 능력으로 저를 치유하여 주십시오, 당신은 치유의 하나님 아니십니까?’
그때 들은 벧엘수양원 소식. 하지만 확신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현대의학도 한의학도 속수무책인데 병원도 아닌 그곳에서 무슨 치료가 될거냐는 생각이었습니다. 잠시 환경 좋은 곳에서 편히 쉬었다 오는 것만으로 만족하자는 생각. 벧엘 동산을 들어오는 길에서 한 저의 얄팍한 생각이었습니다.
벧엘이 위치한 곳은 참으로 풍경이 아름다웠습니다. 어머니 품 같은 지리산 한 자락, 널찍한 정원과 각종 나무, 마주 보이는 나지막하고 시원한 산, 가만히 귀 기울이면 들리는 각종 새소리, 벌레 소리...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확신이었습니다. 특히 제게 오라고 전화했던 현자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환자가 아니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이던 그녀. 그녀가 결혼한 이후 이처럼 행복하고 편안한 얼굴을 대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벧엘엔 암 환자들, 특히 전이된 분들이 많았는데, 그분들은 이곳에서 따뜻한 햇살, 맑은 공기, 깨끗한 물, 충분한 휴식, 적당한 운동, 절제된 생활, 자연식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치유 받게 되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과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래 한번 믿어 보자 이들이 증거하지 않는가?’ 저는 택시 기사분의 말대로 원장님이 강의마다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 보기로 하였습니다.
다음 날부터 과일식에 들어갔습니다. 집에서 엉터리로 과일식을 하면서 체중만 줄었기 때문에 다시 과일식을 한다는 게 두려웠지만 과일식을 통해 피가 맑아지고 몸속의 노폐물이 다 빠져 나가면서 혹의 경우 물렁물렁 해지다가 없어진다는 원장님 말씀을 따라 보기로 했습니다.
원장님께서는 보름 정도 과일식을 하라고 하셨지만 1주일만 계획하고 온 제게는 무리였습니다. 그러자 원장님께서는 “맛만 보고 가겠네, 한 달은 있어야지.”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사흘 정도 고민을 하였습니다. 당장 해야 할 일도 미루고 왔는데, 어쩌나! 그러나 다시 오기도 힘드니 보름만 있어 보자하며 당장 그 다음 주에 해야 할 일과 만나야 할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였습니다.
과일식을 시작하고 나흘 째, 원장님께서 어떤 변화가 없냐고 물어보셨습니다. 그때까지 별 다른 변화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6일 째 되는날 어린 아이 머리통처럼 배 가운데에서 딱딱하게 느껴지던 혹의 양 옆이 물컹물컹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 배를 만지고 또 만져 보았습니다. 혹의 가운데 부분은 여전히 딱딱하였지만 양 옆은 분명히 물렁했습니다. 너무나 기뻐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현자에게 말했습니다. 그녀 또한 너무나 좋아했습니다. “언니에 대한 기도가 1순위였는데 하나님께서 들어 주셨네.” 드디어 1주일간의 과일식이 끝나고 식사에 들어갔습니다.
혹은 갈수록 물컹물컹 해졌습니다. 바로 누우면 아랫배가 불룩하게 튀어나왔던 혹이 이제는 거의 만져지지 않았습니다. 아랫배를 꼭 누르면 겨우 만져질 정도로 작아졌습니다. 갑자기, 순식간에 없어지진 않았지만 서서히 지속적으로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혹의 형체가 조금씩 조금씩 허물어지면서 그동안 소원하였던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때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였지만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입고 교회를 떠난 지 17년. 그동안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상처가 덧날까봐 쉽게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올해 암 수술 후 묵상하듯 기도하며 지냈었는데 그러한 기도도 들어주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부족한 저를 벧엘로 인도하여 주셨고 원장님이 하시는 설교 말씀을 통하여, 성경을 통하여, 엘렌 G. 화잇 여사의 글을 통해 당신을 보여주셨습니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때부터 저를 벧엘수양원으로 인도하실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작년부터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궁근종 수술이 계속 미뤄졌던 것은 당신의 치유의 은사를 통해 저를 당신 앞으로 부르시는 오묘한 계획 이었습니다. 앞으로는 지금까지 살았던 바쁘고 정신없는 생활, 즉 불치의 생활에서 벗어나 그분의 법칙 속에서 바르게 살아 다시는 병들지 않도록 절제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생활을 하기 위해 말씀을 상고하고,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과 은총을 증거하는데 게으르지 않는 생활을 하렵니다. 이것이 저를 벧엘까지 이끌어 주시고 치료하여 주셨으며 앞날까지 예비하여 주실 주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