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 말씀으로 거듭남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벧전 1:23-25)
그리스도는 말씀이셨고 복음이셨음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 14).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그 씨앗 속에 있는 생명력의 전개로 말미암아 자라나는 것이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듯이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말씀이 믿는 자의 마음에 들어오면 그 말씀 속에 있는 신성의 능력이 인간의 마음을 거듭나게 하고 성화되게 한다.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동일한 능력이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는 일에 사용되는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과 같은 완전한 품성과 고상한 능력을 갖춘 인간으로 창조하셨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것처럼 생각하였으며 그분의 말씀을 따랐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사단의 말을 따랐을 때 하나님과의 사랑관계가 끊어지고 사단의 정신과 연합하게 되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던 그들은 자아를 사랑하게 되었고 이웃에 대한 사랑이 이기심으로 바뀌었다. 그리하여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하나님과 점점 멀어졌고 스스로의 힘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기 위하여 자기 자신에게는 없는 능력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영원한 말씀이 육신으로 오시지 않으면 인간의 구원은 희망이 없었다. 그리스도는 말씀이 복음으로 오신 인류의 유일한 구원자이시다.
믿음으로 받음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요 5:8, 9)
마치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워 있던 38년 된 중풍병자처럼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생명과 단절된 인간은 희망이 없었다. 그리스도께서는 환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신다. 환자의 믿음은 그 말씀을 붙잡았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손이다. 환자가 그 말씀을 붙잡고 일어나려 할 때 마비되었던 신경과 근육이 살아나고 걷게 되었다. 그 환자는 의심하지 않고 그 말씀을 믿었던 것이다. 이 환자의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된 것은 오늘날 우리를 위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일을 통하여 죄인이 구원 받는 방법을 가르치고자 하셨다. 우리도 이와 같은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받는다. 사랑이 많으신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시고 너희는 살아라고 하시며 생명의 말씀을 주셨다. 성경은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쓰신 복음이다.예수님의 피로 맺은 구원의 약속을 붙잡는 것이 믿음이다. 구원은 은혜의 선물이므로 믿음으로 받으면 된다.
거듭남은 체험하는 것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나의 의가 되신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면 하나님께서는 죄된 나를 보시지 않고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보시고 나를 의롭게 여겨 주신다.
내가 지은 죄로 인하여 십자가에서 죄값을 지불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진실로 바라본다면 우리는 주님의 비할 데 없는 고귀한 사랑에 죄 된 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 주님의 용서하시는 사랑을 보게 될 때 그 마음에 불순종으로 단절된 하나님의 사랑이 일깨워질 것이며 죄인은 영원한 생명의 본체이신 그분과 하나 되는 관계를 맺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죄인이 거듭나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것인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의 사랑으로 일깨워진 영혼이 전심으로 회개할 때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영께서는 믿는 자의 영혼 속에서 역사하시며 주어진 빛에 따라 한 가지의 순종에서 또 다른 순종에 나아가도록 힘을 주시며 인도하실 것이다. 죄인이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말미암아 품성의 모든 결함은 보충되고 모든 더러움은 깨끗해지고 모든 결점은 교정되며 모든 미점은 발달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영혼들에 대하여 “내가 저희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요 17:23)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인의 삶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5:15).
십자가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들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게 된다. 인간을 회복시키는 구속의 경륜은 십자가 희생의 토대 위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희생은 너무도 넓고 깊고 높기 때문에 아무도 측량할 수 없다. 이미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셨으므로 그분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자들은 그분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을 기꺼이 버리게 된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주님을 영화롭게 하기를 소원할 것이며 인류의 구원을 위한 그분의 열망을 그들도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값으로 산 것이로되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다 무한한 값으로 산 자들이다. (고전 6:20, 벧전 1:18, 고후5:15 참조)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모든 보물을 이 세상에 부어 주심으로써 각 사람의 의지와 애정과 지능과 심령을 다 사셨다.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은 다 주님의 소유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겟세마네와 갈바리의 분위기에 싸여 일해야 한다.
범죄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당신 자신을 기꺼이 바치신 주님께서는 어떤 것을 가장 고상한 봉사로 평가하실까? 무한하신 사랑을 소유하신 그분께 어떤 사업이 가장 가치있는 사업이 될 것인가? 하늘 아버지와 독생자에게 가장 큰 만족과 기쁨을 가져다 줄 사업이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멸망하여 가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다. 이러한 사업에 우리의 시간, 우리의 애정, 우리의 재능, 우리의 재물을 사용할 때 영원한 집에서 살 품성이 준비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중한 은혜의 기회는 영생을 위한 준비를 위해 주어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일생은 준비의 기회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계 20:6).
이 세상에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그의 생전에 사단의 대리자들과 연합하므로 형성된 품성을 그대로 가지고 무덤으로 내려간다. 사람이 무덤에서는 선악간의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시146:4)한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살아 있는 동안에 영생을 준비하든지 사망을 준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이 죽은 자를 깨우실 때에 사람들은 자기가 살아 있을 때에 가졌던 것과 같은 식욕과 정욕, 좋아하고 싫어하는 습성을 그대로 가지고 무덤에서 나오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생명의 부활에, 어떤 사람들은 사망의 부활에 일어날 것이다. 모든 기회와 편의를 제공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재창조함을 받지 못한 자들을 재창조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적을 행하지 않으신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살아온 자들은 그의 품성이 하나님과 조화되지 못했으므로 그는 하늘 집에서 살 준비가 되지 않았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교양 있고 예절바르고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폭식가도 아니요 술주정꾼도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도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저들 자신을 위하여 살고 하나님을 위하여 살기를 원치 않는다. 무한한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관심이 없다. 그러므로 그들의 생각 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아니하므로 그들은 불신자로 간주된다. 예수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분의 은혜 곧 그분의 품성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이 지상에 살 동안 그리스도를 멀리 떠난 생애를 살았다면 하늘에 가서도 그분과 교제하며 사는 것이 즐겁지 않을 것이므로 우리를 그곳에 데리고 가지 않으실 것이다.
“너희 하나님을 보라”하라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사 60:1, 2)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열 처녀 비유에 보면 신랑이 올 때는 가장 캄캄한 때 즉, 밤중이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재림도 이 지상역사의 가장 캄캄한 때에 있을 것을 말해주고 있다. 노아의 시대와 롯의 시대 역시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되어질 세상의 형편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이 시대를 예언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마지막 때 일어날 사단의 활동에 대하여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이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들에게 임’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살후2:9, 10 참조)
사단의 활동은 마지막 때가 가까워 올수록 급속도로 증가하여 온 세상을 영적 어두움과 오류와 이단과 미혹으로 속일 것이다. 사단은 세상 뿐 아니라 오늘날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자칭하는 교회들을 암암리에 부패시켜 왔다. 큰 배도는 점점 격화되어 진리의 광선이 통과할 수 없는 상태로 총담같이 어두워지고 있다. 이 세상을 덮고 있는 어두움은 하나님께 대한 오해의 어두움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지식을 잃어버리고 있다. 하나님의 품성은 잘못 이해되고 그릇 해석되고 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기별은 이 어두운 세상에 하나님의 품성이 널리 알려지게 하는 것이다. 그분의 인자와 긍휼과 진리의 빛을 비추어야 한다. 이 사업은 아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다음의 말씀에 간단하게 요약되어 있다.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팔로 다스릴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사 40:9, 10)
신랑의 오심을 기다리는 자들은 백성들에게 ‘너희 하나님을 보라’ 고 외쳐야 한다. 어두운 세상에 비칠 마지막 자비의 빛은 하나님의 사랑의 품성이 성도들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생활의 외침이다.
그들은 저희의 생애와 품성을 통하여 저희를 위하여 행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냄으로써 ‘너희 하나님을 보라’고 외치게 된다. 의의 태양 광선이 선행 곧, 진실한 말과 거룩한 행실을 통하여 비쳐지도록 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나사렛 회당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보게 하심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 19)
이것은 예수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맡기신 사업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거룩한 동정심으로 충만하게 되어 지금까지 막혀있던 그리스도와 같은 진지한 사랑의 샘물이 터져 나오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의 귀한 은혜와 그분의 측량할 수 없는 부유함이 세상에 나누어질 수 있는 산 통로가 될 특권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서 당신의 영과 품성을 대표할 자들을 가장 크게 원하신다.
사람을 통하여 구주의 사랑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보다 더 절실한 요구는 없다. 온 하늘은 사람의 마음에 즐거움과 축복이 될 거룩한 기름을 부어 줄 수 있는 통로의 역할을 할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은 죄를 사하는 이상의 의미가 있는데, 우리의 죄를 제거한 다음에 그 빈자리를 성령의 은혜로 채우신다는 의미이다.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2:20)고 하였다. 죄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면 마음은 순결하게 되고 죄에서 해방되고 불순종의 자녀가 순종의 자녀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의 생애 속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품성은 하나님께서 진실로 당신의 아들을 이 세상의 구주로서 보내셨다는 것을 증거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자들은 온 세상이 흑암 가운데 있을 때에 그들에게는 빛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영광의 빛을 누구보다도 먼저 보게 될 것이다. 악한 자들이 그리스도를 피하여 도망하는 반면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기뻐하게 될 것이다. 욥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를 바라보면서 “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보기를 외인처럼 보지 않을 것이라”(욥19:27)고 말하였다.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긴밀한 접촉을 가지고 항상 하나님과 교통하는 생애를 살아온 사람들은 이미 하늘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하늘과 어울릴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은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사 25:9)고 외칠 것이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