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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ble Bridge - Adventist Movement

연구서적

최후의 전쟁..
2015.10.13 16:33

제 4 장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제 4 장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말 그대로 죄인이 예수를 믿어서 의롭게 된다는 복음이다. 이 복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고 죽음의 상태에 있는 죄인이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생명을 다시 회복하는 복음이다. 의는 하나님의 품성이며 말씀을 통하여 받는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기 위하여 자기 자신에게 없는 능력을 하늘 위로부터 받을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인간이 신령한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 인간적인 활동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편에서는 믿음이 요구되었는데 이는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영혼을 순결케 하기 때문이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공로를 굳게 붙잡는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능력이 마비되도록 계획하지 않으셨으며 오히려 하나님과 협력함으로써 인간의 능력이 영원토록 유능한 것이 될 수 있도록 계획하셨다.” (가려 뽑은 기별 1권 375) 


사도 바울이 제시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하나님의 성전인 인간의 몸을 통하여 순종으로 이루어지는 의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다음의 성경절을 살펴보자.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마음)니 곧 그리스도시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엡 3:17-19, 4:15,16) 


사람의 인체 속에는 하늘의 영적 존재자들과 교통할 수 있는 마음의 기관이 있다. 마음의 기관인 뇌신경은 머리에 있으며 머리에서 모든 인체기관의 활동을 주관한다. 머리는 몸의 수도이다. 사람의 행동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람의 마음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그 사람의 모든 활동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게 된다는 복음은 얼마나 과학적인가? 

받음으로 변하는 진리는 모든 만물 속에 세우신 하나님의 법칙이다. 식물은 태양으로부터 오는 빛의 에너지를 받음으로 광합성 작용에 의하여 성장하고 향기를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동물과 사람에게 양식을 공급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의 믿음의 주인이시오, 우리를 완전하게 해 주실 분으로서 인간으로 하여금 인성이 신성과 연합될 때 어떠한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여 주셨으며 믿음으로(받음으로) 사는 대 우주의 질서를 모본으로 보여주신 분이시다. 그 분의 믿음의 고백은 ‘내가 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노라, 내 아버지가 내 안에서 하신다, 나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 왔노라,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행함으로 아버지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고 하셨다. 특히 “나는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고 하신 말씀은 아버지와의 믿음 관계를 통하여 일하시는 그리스도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며,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라고 하신 말씀은 예수님과 우리의 연합(믿음)관계를 설명하시는 비유이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경험하는 진리이며, 이 의는 인간 안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실지로 사람의 생애를 변화시킨다. 이 의는 사람의 마음을 통하여 일어나는 과정으로서 과학중의 과학이다. 


“성경에는 심오한 철학이 있다. 성경 전체의 중심 주제는 구속의 경륜(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이며, 이 구속의 경륜은 사람의 심령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하는 일이다. 이러한 사상을 파악한 사람들의 눈  앞에는 연구의 무한한 분야들이 전개되어 있다. 이 구속의 과학은 과학 중의 과학이다. 이 과학은 천사들과 타락하지 않은 다른 세계의 백성들도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구주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고 무한하신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영세 전부터 감취었던’(롬 16:25,26) 목적을 연구하는 학문이며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한 번 해 볼만한 최고의 학문이다. 이 학문은 다른 어떤 학문보다도 사람의 마음을 소성케 하고 심령을 고상하게 한다.” (교육 113) 


루스벨의 타락은 이 지구가 창조되기 이전부터 일어났다. 

“영세 전부터 감취었”던 하나님의 목적은 인간이 범죄 하여 죽게 될 경우 스스로 죄의 속박에서 풀려 날 수 없는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의 속박에서 풀려 나와 또 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실 것이었다. 이 일은 인간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단의 거짓을 온 우주에 폭로하고 사단의 거짓에 속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죄(불순종) 가운데서 구원하여 영생에 들어가게 하심으로 범죄한 지구뿐 아니라, 온 우주를 영원히 세우실 것이었다. 


사도 바울은 인간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일을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것이라고 한다(롬 16:26). 

바울이 말한 그 비밀의 계시는 골로새서 1장 27절에서 “이 비밀은 너희 속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라고 기록하고 있다.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복음은 오묘이며 영원한 복음이다. 


“이 오묘에 대한 지식은 다른 오묘를 푸는 비결을 제공한다. 그것은 사람에게 우주의 보고 즉, 무한하게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준다. 또한 이 발전은 하나님의 품성 곧 기록된 말씀의 영광과 오묘가 우리에게 항상 나타남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더 이상의 발전도 없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지극히 높은 존재가 되지 못하며 사람의 진보는 그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자. 그분께서는 무한하시고 그분 안에 모든 지혜의 보배가 있는 까닭에 영원토록 끊임없이 탐구하고 계속하여 배울지라도 그분의 지혜, 자비심, 그 능력의 부요함을 결코 다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교육 172) 


“우리는 육신의 양식을 섭취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심령의 양식으로 받는다. 떡은 우리 체력의 필요를 채운다. 우리는 그것이 피와 뼈가 되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이 같은 경험은 성경에도 적용된다. 성경의 원칙이 실지로 품성의 요소가 될 때에 그 결과는 어떠하였는가? 그 생애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가?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많은 사람들은 말씀의 능력으로 죄된 습관의 사슬을 끊어버렸다. 그들은 이기심을 버렸다. 하나님을 모독하던 자가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주정뱅이가 술을 삼가게 되고, 방탕한 자가 순결하여졌다. 사단의 형상을 지녔던 영혼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된바 되었다. 이 변화는 그 자체가 이적 중의 이적이다. 말씀으로 말미암아 오는 변화는 말씀의 가장 깊은 오묘 중의 오묘이다. 우리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성경에 언명된 대로 ‘이 비밀은 너희 속에 계신 그리스도니’ 라고 하신 그대로 믿을 수 있을 뿐이다.” (교육 171)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골 1:13,14)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죄인을 변화시켜 의인 만드는 복음이다. 



믿음이 율법을 지킬 의무를 대신하지 않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는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죄인을 용서해 주시는 사건으로만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황홀경에 만족해하며 율법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인간의 죄 값을 대신 지불하셨다는 사실은 그분 자신이 세우신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십자가는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율법은 순종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율법의 불변성을 나타낸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의무에서 해방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죄인을 죄의 속박에서 해방시켜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할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31,32)고 하셨다. 이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말미암아 죄의 종에서 풀려나는 자유이며 말씀(복음)을 마음에 받아들일 때 그 말씀으로 살게 되는(순종) 자유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 (갈 5:1)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어 사단의 세력을 깨뜨리셨으며 인간이 범죄하므로 잃어버린 자유 의지를 되찾게 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포로에게 자유를 선언하고, 무거운 짐에서부터 쉬게 하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시기 위하여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 주신 것이다. 아담의 범죄로 잃어버린 자유 의지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회복된다는 복음은 죄인에게 자유를 선포하는 복음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간에게 주어진 은혜의 기회는 인간이 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영생에 들어 갈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즉 불순종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 인간이 순종함으로 영생을 회복 받는 것이다. 이 일을 가능하게 해 주시려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인간의 구속 뿐 아니라, 온 우주에 하나님의 율법의 영원 불변성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율법을 더욱 완전케 하신 것이다. 그분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마 5:17)이 라고 말씀하신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완전히 순종하심으로 ‘율법의 마침’이 되셨고 주님이 순종으로 이루신 그 완전한 의를 믿는 우리에게서 그 일이 이루어지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죄가 주관치 못함)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1-4) 


죄인이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복음은 죄 용서뿐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할 능력을 부여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의 완전한 순종을 요구한다. 


“하나님이 에덴에서 아담에게 주셨던 바로 그 시험을 모든 인간 가족들에게 주실 것이다. 아담에게 요구하신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었다. 우리도 그가 서 있었던 위치와 꼭 같은 위치에 서서 제 2의 시험, 곧 우리들이 사단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지를 보시는 제 2의 시험을 받게 되었다.” (리뷰 1890.6.10) 


참된 종교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가 있다. 

이 자유의지는 창조 때부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특권이며 하나님의 사랑의 원칙이다. 이 의지는 다른 모든 기능을 지배하는 인간의 본성 가운데 있는 통제력이다. 이 의지는 취미나 경향이 아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게 하거나 또는 불순종하게 하는 인간들 가운데 역사하는 결정력이다. 우리는 자신의 충동과 감정을 원하는 대로 다스릴 수 없으나 의지는 지배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죄에 승리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것은 감정으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의지를 잘 사용함으로 자신의 생애에 전적인 변화를 가져 올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선택의 결과로 영생에 들어가든지 사망에 처하든지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리기로 결심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만약 우리 자신을 그분께 드리면 그분은 우리의 양심을 예민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실 것이며, 우리의 애정을 성화케 하실 것이며, 우리의 사상을 순결하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힘은 그분을 위하여 일하게 하실 것이다.” (리뷰 1890.11.4)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룬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릴 때 그분이 우리 안에 오셔서 이루어 주신다는 약속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복음의 능력인가? 

우리가 이 복음을 믿을 때 이렇게 될 것이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롬 6:16-18)고 하신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롬 8:13,14)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롬 6:22)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통하여 일하시겠다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받음으로 변하는 인간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재창조의 일을 하실 것이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전심으로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죄인이 하나님의 속죄를 깨닫고 그 속죄의 은혜를 유일한 소망으로 받아들이면 그의 죄는 용서를 받고 의롭다 칭함을 받는다. 이 사람은 매일 매일 자신을 주님께 드리므로 회개의 경험을 계속 유지하는 가운데 자신을 겸비하게 하며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순종의 삶을 살므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의 산 믿음 관계를 지키며 끊임없이 그리스도에게서 공급을 받으면 반드시 자라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열매를 맺으려고 노력하라고 명령하지 않으신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신다. 

말씀을 통하여 그분께서는 그분의 추종자들 속에 거하신다. 이것은 그분의 살을 먹고 그분의 피를 마시는 것으로 나타난바 된 기묘한 연합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다. 말씀을 받아들임으로 그들은 포도나무의 생명을 받는다. 그대들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마 4:4). 그대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처럼 같은 열매를 생산한다. 그리스도 안에 살고 그리스도에게 부착되어 그리스도의 지원을 받으며 그리스도에게서 영양을 흡수한다면 그대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시대의 소망 677) 


“하나님의 율법은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며 완전하신 하나님을 그대로 나타내 주므로 그런 율법에 순종할 때에 이루어지는 품성도 또한 거룩하여 진다. 이 일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의 내재하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서만 성취될 수 있다.”(대쟁투  469) 


“하나님은 그의 진리의 빛으로 우리 속에 임하신다. 우리는 그의 모든 계명에 순종해야 한다.” (리뷰 1887.5.10) 


“은혜를 받는데 필요한 조건은 이행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참람된 억측이다. 왜냐하면 참된 믿음은 성경의 약속과 법도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대쟁투 472)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에 관하여 알기 위하여 사람의 가르침을 따르지 말고 성경을 연구해야 한다. 오늘날 사단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가는 것을 막지 않는다. 왜냐하면, 교회를 통하여 오류를 가르침(진노의 포도주를 먹임)으로 더욱 효과적으로 영혼들을 사망의 길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와 율법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는 “말씀이 육신”(요 1:14)이 되신 분으로서 그분은 율법이셨고 동시에 복음이셨다. 

십자가의 예수를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인데 그 말씀의 속성은 사랑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가 만난 곳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를 보여 주는 곳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그분에게 순종하도록 이끌림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구세주께서 자기를 대신하여 죄의 저주 아래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시는 것을 볼 때에 주님의 용서하시는 사랑을 바라보게 되고 그의 마음에 사랑이 일깨워질 것이다. 죄인은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되는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먼저 그를 사랑하신 까닭이며, 사랑은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다.” (가려 뽑은 기별 1권 374) 


야고보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산 믿음은 순종하는 믿음이라는 진리를 제시하고 있다.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 2:24-26)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대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다고 믿는 것이 실로 중요한 일이기는 하나 많은 사람들이 ‘나는 구원을 받았다’라고 말하면서 취하는 태도 가운데 따르는 위험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믿으라 믿기만 하면 살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믿음과 행함은 병행되어야 하며 믿는 일과 행하는 일은 잘 조화되어야 한다... 아무도 육신적인 안일한 생각으로 믿음이야 어떻든지, 생애가 아무리 불완전하든지 성실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용납하시리라는 즐거운 망상을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완전한 순종을 요구하신다. 율법의 요구에 응하기 위하여 우리들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의를 붙잡아야 하며 그 의를 우리들의 의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의를 받아들임으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사업을 행할 수 있는 자격과 그리스도와 동역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될 것이다.” (가려 뽑은 기별 1권 373) 



믿음과 행함은 하나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선한 행위를 낳는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순종)리라” (롬 1:17)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약 2:22) 

“야고보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라는 제목의 말씀을 제시할 때 몇 가지 위험이 있는 것을 알았다. 따라서 그가 보여주려고 애쓴 것은 순수한 믿음은 신자들 속에 순수한 행함을 낳게 한다는 것이다. 믿음과 순종은 건전하고 가치 있는 경험을 하게 한다. 구원하는 믿음이 아닌 믿음도 있다. 성경 말씀에는 마귀도 믿고 떤다고 한다. 사랑으로 역사하지 않고 영혼을 순결하게 하지도 못하는 믿음은 어떤 사람도 의롭게 하지 못할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아는가? 그의 행함이 그의 믿음의 성질을 증거 하는 것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의무와 희생은 매우 큰 상을 받게 한다. 의무를 행하는 바로 그 행동 속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그의 축복을 내리신다.” (사인즈 1898.5.19) 


믿음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은 순종이다. 

순종은 믿음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믿음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갈망한다. 

믿음과 행함의 관계는 마치 불이 켜지면 밝아지고, 불이 꺼지면 어두워지는 것과 같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마음에 내재시킬 때 그의 모든 행동이 의로워지는 것은 머리(마음)가 몸을 주관하는 인체의 법칙을 따라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가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과 거룩하게 성화되는 것과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는 데는 엄연한 조건들이 있다. 구원 받는데는 아무 조건이 없다고 가르치는 것은 잘못된 가르침이다. 성경에는 조건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받기 원할 때 구해야 한다. 발견하고 싶을 때 찾아야 하고 문이 열리기 원할 때 두드려야 하고 의롭게 되기를 원할 때 그리스도를 마음에 받아들여야 한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네가 온전하여 지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마 19:21) 고 말씀하신다. 


성경에는 믿으라 구하라 두드리라 행하라고 하시는데 그 모든 명령 속에는 약속과 허락이 보장되어 있다. 우리는 성경에서 믿음과 행함의 일치성을 찾아야 하며, 십자가와 율법이 조화를 이룬 복음을 이해해야 한다. 


“나의 형제들이여! 

믿음과 행함의 문제들을 신자들에게 증거 할 때에 매우 조심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에 사람들은 혼란을 일으키게 된다. 신자들은 열심히 선을 행하도록 권고를 받을 필요가 있다. 저들은 믿음으로 성공하는 방법, 순결하게 되는 방법, 저들의 헌물이 하나님께 향기가 되는 방법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모든 방법들은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서만 가능한 것이다. 명확한 성격을 띤 기별을 신자들에게 증거 해야 한다. 인간은 자기가 받은 천부의 재능을 따라 모든 능력을 기울여 하나님과 협력하여야 한다. 태만한 것은 죄를 범하는 것이다. 

승리자가 된다는 뜻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 이상의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그대들이 인간적인 최선을 다한 이후에 그리스도께서 그대를 도울 것이라고 말하지 말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하셨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은 그리스도와 동역자가 되어야 한다. 성령께서 인간의 마음에 역사하지 않는 한 우리는 매 발걸음마다 걸려 넘어질 것이다. 우리들은 노력해야 하며 씨름해야 하고 깨어 기도해야 한다. 인간의 편에서 별로 할 일이 없다거나 전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되며, 오히려 성공적으로 승리하기 위하여 인간이 하나님과 협력해야 함을 가르쳐야 한다. 

아무도 그대들의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을 하지 말라. 심판 때에 무엇을 했는지 혹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에 따라 판결이 내려질 것이다(마 25:31-40). 이는 맺힌 열매로 그 나무의 특성을 나타낼 것이다. 비록 인간의 선행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을 때에 가인의 제사만큼이나 무가치한 것이지만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을 때 인간의 선행은 영생을 유업으로 받기 위하여 행하는 자의 가치에 대하여 증거 할 것이다. 

우리들은 믿음에 대하여 말을 많이 듣고 있는데 실상 우리들은 행함에 대한 말을 더욱 많이 들을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안락하고 태평하며 십자가 없는 신앙 생활을 살면서 저희 자신의 영혼을 속이고 있다.” (가려 뽑은 기별 1권 379-381) 


그리스도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라”고 하신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하라는 말씀이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 5:7-9) 

그리스도의 고난과 순종은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함으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요 8:29)고 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그분을 믿고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순종할 능력을 주실 것이었다. 

순종은 마음에서부터 일어나는 것이며 하나님과의 생명적인 관계가 회복된 증거이다.


“믿음은 실천이라는 시험을 거쳐야 비로소 유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는 그 실천이라는 시험이 믿음의 변화시키는 능력과 그 약속들의 미쁘심을 증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원고 41, 1901) 


“하나님의 능력을 떠나서는 어떤 진정한 개혁도 성취될 수 없다. 선천적 혹은 후천적 성벽을 방지하기 위한 인간적 방호벽은 마치 급류를 막으려는 모래주머니와 같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생기를 주는 능력이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안과 밖에서 우리를 공격하는 유혹을 저항할 수 있다.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으로 사람은 자유롭게 된다. 그리스도의 뜻에 복종하는 것은 완전한 사람으로 회복된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죄의 속박에서 나오고 인간의 정욕과 감정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세상을 멸망으로 쓸어 넣는 악에 대한 유일의 안전책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라.” (치료봉사 130) 


“어떤 인간이든지 자신이 알고 있는 죄를 여전히 행하며 알고 있는 의무들을 등한히 하면서 그리스도의 의의 두루마기로 자신의 영혼을 가리울 수는 없다. 인간이 의롭다 하심을 보유하기 위하여서는 계속적인 순종을 해야 한다.” (가려 뽑은 기별 1권 460)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완전한 순종으로써 신성과 인성이 연합될 때 하나님의 모든 법도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셨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 권세는 사람 자체에 있는 권세가 아니다. 이 권세는 하나님의 권세이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 그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살 수 있는 능력도 받게 된다.” (실물교훈 314) 


“예복에 대한 비유는 가장 중대한 공과를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혼인으로써 인성과 신성의 결합이 표상 되었으며, 예복은 혼인잔치에 참석할 자들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합당한 품성을 표상 한다.” (실물교훈 307) 


“임금이 잔치에서 손님을 심사하는 일은 심판(조사심판)하는 사업을 표상 한다. 복음잔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노라고 하는 자들, 즉 생명책에 저희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다 참된 제자는 아니다. 최후의 상급을 주기 전에 먼저 누가 의인의 유업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결정하여야 한다.” (실물교훈 310) 


지금! 하늘에서는 조사심판이 진행 중이다. 우리는 각자가 심판 받는 자처럼 살아야 한다. 언제 우리의 이름이 불려질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 우리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되는 엄숙한 순간들이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매 순간마다 우리의 연약함을 주님의 능력에 맡겨야 하며, 전적으로 순종하여야 한다. 심판의 기준은 하나님의 율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율법과 일치한 사람이 되려고 애쓸 것이다. 


“그는 당신의 완전한 순종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게 하셨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칠 때에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마음과 연합되고 우리의 뜻은 그의 뜻 안에 합병되고 우리의 정신은 그의 정신과 하나가 되고 우리의 생각은 그에게 사로잡히게 되어 마침내 우리는 그의 생애를 살게 된다. 이것이 곧 그분의 의의 옷을 입는다는 의미이다.” (실물교훈 312) 



순종은 영생의 조건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 2:17) 


인간이 창조된 때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영생의 조건이었으며, 불순종함으로 죽게 된 인간에게 주어진 영원한 복음은 완전한 순종(의)을 요구하신다. 순종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므로 믿음과 순종은 연결되어 있다. 

“믿음과 행함은 병행되어야 하며 믿는 일과 행하는 일은 잘 조화되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타락하기 이전에 요구 하신바 완전한 순종과 결백한 의를 현대의 인간들에게 요구하신다. 복음은 율법의 주장을 약화시키지 않으며 오히려 율법을 높이고 존귀케 한다. 새 언약 아래서 요구되는 것은 옛 언약 아래서 요구된 것에 비하여 조금도 덜한 것이 없다.” (가려 뽑은 기별 1권 373) 


“하나님의 요구에 불순종함으로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다. 그분은 생명나무 둘레에 화염검을 두셔서 사람이 손을 들어 그것을 따먹고 죄를 영존하게 하지 못하도록 하셨다.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 생명과의 열매를 먹는 조건이었다. 불순종으로 인하여 아담은 타락하였고 죄로 인하여 동산 중앙에 있는 생명을 주는 과일을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권리를 잃게 되었다. 그리스도를 통한 순종으로 인간에게 완전한 품성과 그 생명나무에 대한 권리가 주어진다. 생명나무에 다시 참여하는 조건은 요한에게 하신 예수의 증언 속에 분명하게 언급되어 있다.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 22:14)” (원고 72, 1901) 


“‘기록되었으되’ 라고 하신 성경 말씀이 우리가 전파해야 할 복음이다. 이 생명나무 앞에는 화염검이 둘려 있지 않다. 이 생명나무를 먹지 못하도록 금지된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또 어떤 권세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모든 사람이 다 먹고 영원히 살 수가 있다.” (편지 20, 1900)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인간에게 생명과를 먹고 영원히 살도록 허락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라 이는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 (요 6: 53-57, 63)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생명과를 먹는 것이다.” (원고 112, 1898)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께서는 나를 먹으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때 즉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그 말씀의 능력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히 4:12)” 시므로 사람의 마음과 생애에 변화를 주시는 것이다.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파해야 할 복음(계14:6 영원한 복음)은 영생을 얻기 위한 조건이 순종이라는 명확한 진리를 제시하고 있다.” (성경주석 972) 


구속의 경륜에는 사람을 구원하는 일보다 더 넓고 깊은 목적이 있다.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람들을 하늘에 들어 갈 수 있도록 하셨을 뿐 아니라, 온 우주 앞에 사단의 반역을 처리함에 있어서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이 정당하다고 옹호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율법의 영원 불변성을 회복할 것이며 죄의 성질과 그 결과들을 나타낼 것이다. 대쟁투는 최초부터 하나님의 율법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계명에 완전히 순종한 마지막 성도들을 통하여 대쟁투는 이 땅에서 끝날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율법은 불변하는 진리로 영원한 행복과 질서를 위하여 존속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이 연약하므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없다고 하면서 십자가의 복음을 왜곡시키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히 순종함으로 사단과 우주 앞에 하나님의 입장을 회복해 드려야 한다. 그러한 목적에서 인간이 창조된 것이다. 


마지막 성도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이다. 

믿음을 설명하는 것은 순종이며, 순종은 복음의 능력이 실증되는 것이다. 

신앙은 감정이나 기분이나 느낌이 아니다. 온 마음과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받아들임으로써 그 속에 담겨 있는 정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복음이 주는 참된 변화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결국에 가서는 자신의 잘못된 경험과 감정에 맞춰서 복음을 변질시켜 버리게 된다. 

복음이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면 사람이 복음을 변질시켜 버리게 되므로 교회 안에 ‘다른 복음’(갈 1:6-8)이 참 복음을 대신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구속의 계획을 알려 주시기 위하여 주신 성경이 사람들에 의하여 변질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피상적이고 형식적이고 세속적인 이교 사상이 하나님의 창조의 진리를 대신하여 교회를 부패시키고 하나님의 백성을 잠재우는 여러 가지 이론들이 논란되어 지고 있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깨어서 진리를 연구해야 한다. 특히 짐승의 우상이 사회 복리를 위한 건전한 도덕 개혁이라는 가면을 쓰고 변장하여 다가오는 이 위기의 때에 예수의 증거(예언의 신)를 가진 마지막 성도들은 예언을 깊이 연구하여 진리의 갑옷을 입고 마지막 전쟁을 위하여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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