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다가오는 일요일 휴업령
자기 예기치 않게 올 것임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두라 평지에 금 신상(우상)이 세워지는 것을 보고 위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 우상은 하루아침에 세워진 것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현재 미국에서 세워지고 있는 ‘짐승의 우상’인, 배도한 개신교 단체 연합 운동을 보면서 이제 곧 그 우상에게 경배하라는 명령과 함께 일요일 휴업령이 갑자기 발표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거의 완성되어진 짐승의 우상을 바로 우리 눈앞에서 바라보고 있다.
빛의 자녀들이 예언을 연구하지 아니하고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동안 진리의 원수는 엄청난 일들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는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깨어 있어야 한다.
거듭나지 아니한 왕 느부갓네살이 꿈은 꾸었으나 해석을 할 수 없었던 것은 빛이 없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빛이 없는 세상 사람들은 현재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즉, 종교 연합 운동, 미국과 교황권의 연합, 새 세계 질서, 세계 평화 운동, 현재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독교와 정부가 연합하여 일으키고 있는 미국을 되찾기 위한 도덕 개혁 운동. 특히 한 인간의 죽음 앞에(바오로 2세의 장례식) 온 세상 왕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다 모여 애도하는 그 기이한 일 등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빛의 자녀이므로 성경을 통하여 예언의 성취를 보고 시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곳곳에서 일어나는 천재지변들, 짐승과 사람에게 한 가지로 임하는 질병들, 사회의 타락상태, 교회 내의 세속화, 정치의 부조리 등은 인간이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므로 오는 결과들이다. 이러한 일들을 볼 때 하나님의 신이 이 땅으로부터 점점 떠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각 시대의 왕들을 세우시고 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때와 기한을 정하시고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는 하나님께서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가 알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예언의 성취를 역사를 통하여 살펴보고 거대한 개혁 운동들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의 작용을 연구하고 또한 대 쟁투에서의 마지막 싸움을 위하여 만국을 소집하는데 관련된 사건들의 진행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교회증언 8권 307)
“어느 누구의 예언 해석도 이 거대한 사건이 아주 가까이 왔음을 보여주는 사건들을 앎으로써 얻게 된 확신을 그대에게서 빼앗지 못하게 하라....
영혼들의 운명이 영원히 결정될 그 날이 가까웠다. 이 주제를 사람들 앞에 제시하는 데는 많은 수고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 엄숙한 사실, 즉 주의 날이 갑자기 예기치 않게 올 것이라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 앞에 뿐 아니라, 우리 교회들 앞에도 역시 제시해야 한다.” (그리스도인 교육의 기초 335)
“만약 우리들이 예언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지 않았다면 우리들은 예언을 믿고 그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에 하나님과 협력하도록 부르심을 입은 것이다.” (가려 뽑은 기별 2권 115)
크고 두려운 날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가장 엄숙하고 감동적인 말로써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들의 영적 혼수상태에서 깨어 회개와 겸손으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라고 호소하신다.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성산에서 호각을 불어 이 땅 거민으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고하고 백성을 모아 그 회를 거룩케 하고 장로를 모으며 소아와 젖 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로 그 골방에서 나오게 하고 여호와께 수종 드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며...”,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 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도다 (욜2:1,15-18,12,13)
지금! 우리는 요엘 선지자를 통하여 보내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자비의 초청에 응함으로 하나님의 날에 설 수 있는 사람으로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 날은 갑자기 예기치 않게 올 것이다.
준비하라! 준비하라! 너무 늦기 전에 준비하라!
마지막 드라마
오늘날 로마 카톨릭은 세계적으로 천문학적인 수의 신도를 확보하고 있으며 교황은 하나님보다 높임을 받고 있다. 하나님의 율법을 변경시킴으로써 자신을 하나님보다 높이며 온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자신이 변경한 안식일, 즉 일요일을 성수하도록 법적 강요를 하게 될 것인데 이로 인해 죄악의 잔이 차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직접 일어나실 것이다. 선지자는 지구 역사의 최후에 벌어질 사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입법부가 주일 중 첫날을 높이는 법률을 제정하고 그것으로 안식일을 대체시킬 때 사단의 책략은 완성되는 것이다.” (리뷰 1890.4.15)
“참 것을 거짓 것으로 대체시키는 행위는 그 드라마의 마지막 행동이다. 이런 일이 세계적 현상이 될 때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나타내실 것이다... 지상의 권력자들이 사람들을 강제하여 주일 중 첫날을 지키게 하려 할 때 그대는 알라! 하나님이 일 하실 때가 되었다는 것을!
그 분이 위엄 있게 일어나셔서 땅을 무섭게 흔드실 것이다.” (리뷰 1901.4.23)
“하나님의 율법을 저버리고 로마 카톨릭의 제도를 강요할 법령으로서 이 나라(미국)는 정의와 완전히 인연을 끊을 것이다. 개신교가 깊은 구렁텅이를 건너 로마교회의 세력과 손을 잡으려고 손을 내밀고, 또 큰 구렁텅이를 넘어서 강신술과 손을 잡고 그래서 이 세 연합 세력 아래 이 나라가 개신교와 공화 정부로서의 모든 헌법의 원칙을 거부하고 로마 교황의 거짓과 기만을 선전할 준비를 갖추게 될 때 우리는 사단이 맹렬히 활동할 시기가 이르렀고 종말이 가까웠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교회증언 5권 451)
“세상 거민들의 죄악은 그들의 범죄의 잔을 거의 채웠다. 이 지구는 하나님께서 파멸자에게 그의 뜻을 행하도록 허락할 지경에 거의 이르렀다. 하나님의 율법을 인간의 율법으로 대치시키는 것, 순전히 인간의 권위에 의해 성경의 안식일 대신에 일요일을 높이는 것은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이다. 이 대치가 세계적인 것이 될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나타내실 것이다. 그 분은 지구를 무섭게 흔들기 위하여 위엄 중에 일어나실 것이다.” (교회증언 7권 141)
이 세상에서 마쳐질 최후의 전쟁은 하늘에서부터 시작된 율법전쟁이며,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믿음을 지키는 남은 무리들에게 늦은비를 부으시므로 마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이 인간의 법률에 의하여 폐지되는 일이 세계적인 현상이 될 때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늦은비의 권능이 부어 지는 때이다. 선지자는 “저희가 주의 법을 폐하였사오니 지금은 여호와의 일 하실 때니이다”(시119:126)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지금 늦은비를 받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거듭나는 경험이 없이는 아무도 늦은비를 받을 수 없다. 늦은비는 영혼의 추수를 위하여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역이다.
사단의 정체
성경은 하늘에서부터 시작된 대 쟁투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하늘에서부터 하나님의 율법을 놓고 전쟁을 일으킨(계12:7-9 참조) 사단은 이기지 못하여 땅(지구)으로 내어 쫓겼다. 이 사실을 아시는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친히 인성을 입고 오셨다. 그리고 인간이 싸우고 이겨야 할 그 싸움을 싸우기 위해 우리와 같은 입장을 취하시고 죄를 이기고 승리하셨다. 또한 인류가 죄를 이기고 승리할 수 있도록 자신을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친히 지셨다. 사단의 꾀임에 빠져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영원한 복음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할 능력을 받게 하셨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단은 예수께서 탄생하신 즉시부터 죽이려고 헤롯의 마음을 충동하였다. 그리고 예수의 부활과 승천 후 사단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혔다. 이 땅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 즉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없애려고 도전한 사단의 주된 대리자는 로마 제국이었으며, 이교가 그 나라에서 압도적인 세력을 가진 종교였다. 그러므로 사단은 이교 로마를 통하여 일해 왔다.
또한 사단은 요한계시록 13장 1-10절에 또 다른 짐승 표범과 비슷한 짐승에게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주었는데 이것이 고대 로마제국이 잡고 있던 그 능력과 위와 권세를 계승한 법왕권이다. AD 538년에 로마 황제 저스티니안이 로마 도시에 있는 교회 감독을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의 머리로 인정 한다는 칙령에 의하여 교황권이 시작되었다. 이 법왕권에 의해 하나님의 율법이 변경되었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핍박이 가해졌다.
다니엘 7장 25절에 한 때, 두 때, 반 때 - 3년 반, 1260일(년) - 는 법왕권이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한 기간이다. 즉, 법왕권이 최상권을 잡은 538년부터 1798년까지의 기간이다.
정치와 종교가 연합될 때, 즉 종교적 세력이 국가의 권력을 사용할 때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죽임을 당하고 핍박을 당했던가? 이 핍박에 견디지 못한 청교도들이 피난처를 찾아 종교 자유의 나라를 세운 것이 요한계시록 13장 11절부터 나타난 새끼 양같이 두 뿔을 가지고 올라온 미합중국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로마 법왕권의 핍박을 피하여 나온 미국이 또 다시 법왕권과 손을 잡고 법왕권이 행한 그 일을 행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 현재 미국에서 배교한 개신교 단체가 구교인 로마 카톨릭과 연합하여 일으키는 도덕 개혁운동들은 정.교 분리의 원칙을 깨고 기독교의 힘으로 정치를 기독교적인 방향으로 돌리려는 운동이다. 구교와 신교가 연합할 수 있는 공통점은 일요일이다. 그렇다면 선지자가 말씀하신대로 “교회와 국가의 지도자들은 모든 계층의 사람들로 하여금 일요일을 존숭하게 하고자 매수하고 설득하고 강요하기 위하여 연합할 것이다.”라는 예언이 현재 우리 눈 앞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짐승의 우상
우리는 오래 전부터 요한 계시록 13장 15-18절의 예언이 성취되면 세상 역사의 마지막 예언이 성취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 예언은 미국이 모든 사람들에게 짐승의 표(일요일 법령)를 강요할 것이라는 예언이다.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이름의 수를 세어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666이니라” (계13:15-18)
“합중국이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려면 반드시 종교적 세력이 정부를 지배하고 교회가 그 자체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국가의 권력을 사용하게 되어야 한다. 교회가 세속적 권세를 잡을 때에는 언제나 그 권세를 자기 교리를 반대하는 자를 박멸하는데 사용하였다.” (대쟁투 444)
선지자 요한은 “저가(미국) 먼저 나온 짐승(법왕권)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에 거하는 모든 자들에게 이르기를...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계 13:12-14)고 한다.
“여기에 입법권이 국민에게 있는 정부의 형태가 분명히 묘사되어 있으며 그것은 북미합중국이 예언에 나타난 바로 그 나라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된다.
그러면 짐승의 우상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만들어질 것인가? 그것은 두 뿔 가진 짐승(미국)이 만들게 되며 처음 짐승(법왕권)에 대한 우상이 된다. 그것은 또한 짐승의 우상이라고 불린다. 그런데 이 우상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그 짐승 자체, 곧 법왕권의 특징에 대하여 연구하여야 한다.
초대교회가 복음의 단순함에서 떠나 이교의 의식과 풍습을 받아들임으로 부패하여지자 그 교회는 성령과 하나님의 능력을 잃어버렸다. 그렇게 되자 그 교회는 사람의 양심을 지배하기 위하여 세속적 권력의 도움을 구하였다. 그 결과로 국권을 지배함과 동시에 그 권력을 자기의 목적, 곧 이른바 이단 박멸을 위하여 사용한 법왕권이 설립되었다. 미합중국이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려면 반드시 종교적 세력이 정부를 지배하고 교회가 그 자체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국가의 권력을 사용하게 되어야 한다.” (대쟁투 443)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일이 지금 우리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선지자가 말한 이 ‘짐승의 우상’은 현재 미국에서 일어나는 기독교 연합 단체들이 배도한 교회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타락한 정치권을 뒤에 업고 일으키는 운동들을 볼 때 이미 세워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3장의 예언이 성취되려면 미국이 정.교 분리의 원칙을 깨고 정치와 종교가 다시 손잡는 일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미국은 개신교 정부가 되었다. 그렇다면 곧 짐승과 그의 우상을 경배하라는 표가 주어질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때가 오면 그 표를 받지 말라는 기별을 전하라고 하신다.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계 14:9-11)
“셋째 천사의 기별이 전해졌는데 이 기별은 사람들에게 짐승과 그 우상의 표를 이마에나 손에 받지 말라고 경고하는 기별이다.” (리뷰1897.7.13)
“셋째 천사의 기별은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계14:9-11) 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 기별에서 말한 짐승, 곧 두 뿔 가진 짐승이 경배하라고 강요하는 그 짐승은 요한계시록 13장의 첫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짐승인 법왕권이다. 그러므로 짐승의 우상은 자기의 교리를 강요하기 위하여 국권의 도움을 구함으로 생겨나게 될 배교한 개신교도들의 단체를 나타낸다. 짐승의 표는 해명되어야 할 여지가 있다.” (대쟁투 445)
그러면 배교한 개신교 국가인 미국에 의해 강요될 짐승의 표는 무엇인가? 선지자는 “짐승의 표는 법왕권이 재정한 안식일(일요일)이다.” (복음전도 231)라고 한다.
배교한 개신교 단체가 현재 미국에서 정치의 힘을 업고 일으키는 개혁운동은 “모든 자”(계 13:15-18) 즉,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법왕권이 변경시킨 안식일(일요일)을 지키도록 강요하기 위한 운동이다. 이 일을 미국의 법을 통하여 행할 것이며 거절하는 자들에게는 매매를 못하게 할 뿐 아니라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고 한다.
“시험이 올 때 짐승의 표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려질 것인데 그것은 일요일을 지키는 것이다.” (성경주석 7권 980)
“우리가 어떤 값으로도 팔 수 없는 때가 다가오고 있다. 짐승의 표를 가진 자 외에는 어떤 사람에게도 사거나 파는 일을 금지하는 법령이 미구에 내리게 될 것이다... 지금은 우리가 일 할 기회이다.” (교회증언 5권 152)
“저장된 부는 조만간에 무가치하게 될 것이다. 짐승의 표를 가진 자 외에는 아무도 사거나 팔지 못한다는 법령이 공포될 때 많은 재물은 아무 소용이 없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경고를 발하기 위하여 우리의 힘닿는 대로 지금 모든 일을 하도록 요청하신다.” (리뷰 1878. 3.21)
“교회와 국가의 지도자들은 모든 계층의 사람들로 하여금 일요일을 존숭하게 하고자 매수하고 설득하고 강요하기 위하여 연합할 것이다... 심지어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까지도 그 위정자와 입법자들은 일반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일요일 준수를 강요하는 법령에 대한 민중의 요구에 굴복할 것이다. 그처럼 큰 희생을 치르고 얻은 양심의 자유가 더 이상 존중되지 않을 것이다. 절박한 싸움에서 우리는 선지자의 말씀에 나타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12:17)” (대쟁투 592)
현재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남은 무리들을 대항하여 일어나는 배교한 개신교회들이 세상 정부와 법왕권으로 더불어 연합하여 일어나는 것을 볼 때 최후의 전쟁은 이미 시작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현재 진행 중인 기독교 연합 단체의 활동들
선지자는 짐승의 우상을 “자기의 교리를 강요하기 위하여 국권의 도움을 구함으로 생겨나게 될 개신교회의 연합 단체” 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활동들 - 개신교 단체들의 강력한 정치활동과 그들의 연합 세력들 - 을 보아서 미국에 벌써 짐승의 우상이 세워졌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는가?
기독교와 천주교의 연합 운동을 통해 미국의 정치적인 방향을 기독교적으로 바꾸어 놓기 위해 현재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인 단체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첫 번째는 기독교 교회 연합 운동(CCT - Christian Churches Together) 이다.
2001년 여름에 4명의 기독교 지도자들이(천주교 신부 2명, 개신교 목사 2명) 미국에 있는 각 기독교 교단들을 접촉하여 연합 운동에 가담하기를 촉구하기 시작함으로 발족한 단체로서 이 운동은 NCC의 역할을 대신하거나 증대시키는 주요한 기구가 되었다. 드디어 이 기구는 2003년 1월에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풀러 신학대학에서 성공적인 집회로 시작되었는데 40개의 큰 교파들의 대표들과 각종 중소 기독교 교파들 내지는 협의회들의 대표들이 모여서 기독교회가 추구하는 목표들, 특히 미국의 정치적인 방향을 원래 기독교회적인 방향으로 바꾸어 놓기 위한 협의안을 도입함으로써 그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그러고 나자 2004년 11월에 천주교회가 공식적으로 이 기구에 회원으로 가담하게 되었다. 이것은 천주교회가 교회 연합 운동에 공식적으로 참여하게 된 첫 번째의 사례가 된다고 할 수 있겠다.
◼ 두 번째는 신앙과 가치관 연합 운동(TFVC - The Faith and Values Coalition)이다.
이 기구는 26년 전에 모럴 머조리티(기독교 도덕 다수당) 운동을 일으켰다가 크리스천 코올리션 운동이 시작되자 문을 닫았던 제리 폴웰 목사에 의하여 발족된 새로운 기독교 연합 운동으로서 미국의 정치 활동에 적극적인 참여를 위하여 시작된 단체이다. 도덕 다수당 운동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 단체도 미국에 있는 천주교회의 목표들을 연합된 개신교회의 힘으로 이루겠다는 의도에서 출발한 연합 운동이다. 물론 로마 교회가 원하고 있는 목표란 미국의 정치의 방향을 자기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어 놓겠다는 것이다. 지난 11월에 부시 대통력이 재선되자 그것을 축하하는 크리스천 코올리션 총회 앞에서 폴웰목사는 다음과 같이 연설하였다.
“부시 대통령의 재선과 미국 전역에 걸친 보수파 정치인들이 대거 당선되는 쾌거를 이룬 이 마당에 우리는 그 후속 조치로서 새로운 조직인 ‘신앙과 가치관 연합운동’ 기구를 출범 시켰습니다. 사실상 이 기구는 21세기의 기독교 도덕 다수당의 부활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목적들 중 하나는 부시 대통령의 재임 기간이 미국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간이 되도록 돕기 위한 것입니다.”
이 단체는 미국 50개 주에 그 지부들을 두고 미국의 수백만의 보수파를 결집하고 훈련하여 미국의 정치적인 방향을 기독교적으로 바꾸어 놓겠다는 운동이다.
◼ 세 번째는 미국의 가치관 개혁 운동(American Values)이다.
이 운동은 미국의 어떤 특정한 법안들을 반대하거나 찬성하도록 압력을 넣기 위하여 수백만의 회원들로 하여금 국회의원들에게 전화하도록 촉구하므로 입법자들에게 놀라운 압력을 행사하고 있는 기구이다.
◼ 네 번째는 미국을 되돌리기 운동(Take Back America)이다.
이 종교 연합 운동은 플로리다주에서 대형 교회를 가지고 있는 제임스 케네디 박사에 의하여 시작된 것으로서 많은 기독교인들의 회원수를 확보하고 있다.
◼ 다섯 번째는 천주교 협의회(Catholic League)이다.
이들은 천주교인들과 개신교 지도자들을 선발하여 미국의 법들과 법률과 법률조항들을 그들의 신조에 맞도록 변경시키기 위하여 일하는 단체이다. 이 단체는 부시 대통령의 재선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 여섯 번째는 기독교 연합 운동(Christian Coalition)이다.
이 기구는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적인 단체로 인정받고 있는 기독교 단체로서 모든 정치인들은 그들의 요구와 언급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선거에서 당선되기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 연합 운동은 천주교인들과 개신교인들의 공동 연합전선을 펼치고 있다는데 그 특징을 두고 있다.
◼ 이상과 같은 움직임에 대하여 선지자는 이미 예언하고 있다.
“합중국의 주요한 교회들이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교리(일요일 준수)에 의하여 서로 연합하여 그 국가로 하여금 자기들의 교령을 강제로 실시하게 하고 그들의 제도를 강압적으로 유지하려는 때가 이르면 그때에 개신교 미국은 로마교적 교권정치의 우상을 만들게 되고 그 필연적인 결과로서 이에 반대하는 자들에게 법률적 형벌을 가하게 될 것이다.” (대쟁투 445)
지금 우리는 짐승의 우상이 서고 있는 사건들이 진행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일요일 휴업령이 강제령으로 발표될 날이 심히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예언을 가지고 있는 재림 성도들은 깊은 혼수상태에서 다 깨어나야 하며 현대 기별에 의한 참된 회개와 부흥을 일으켜, 남은 교회의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 안에 종교적인 권리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는 것과 그들과 손을 잡지 않으면 정치 활동에 힘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게다가 부시 대통령은 자기 자신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러한 운동, 즉 개신교회와 천주교회의 연합 운동인 종교 권리 운동들의 목표들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크리스천 코올리션 지도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대통령이 우리들의 일들을 대신 수행해 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예전처럼 지나치게 앞장서서 싸우지 않고 있는 것이다”라고...
지난 대통령 선거 때에 370만 명의 적극적인 크리스천 코올리션 운동원들이 친구들과 친척들에게 전화하여 부시와 공화당 의원들에게 투표하라고 권유한 것이 적중하여 부시의 재선은 물론 공화당 의원들이 대거 당선되는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당시부터 쌓아 올라 가던 기독교인들의 정치활동이 드디어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예언의 성취인가! 이제 우리는 드디어 그 길목에 와 서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부시 대통령이 재선된 후 첫 크리스천 코올리션 대표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한 사실이다. “당신들은 종교적 권리 운동을 대표하는 사람들이요, 당신들의 도움으로 내가 다시 백악관에 계속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소. 이제 내가 당신들을 위하여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시오? 한 가지 내가 당신들을 위하여 해 줄 수 있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내 특별 자문 위원인 칼 로버씨를 당신들의 전략 참모로 빌려 줄 수 있다는 것이오.” (칼 로버는 부시를 텍사스 주지사가 되게 했으며 대통령으로 당선시켰음은 물론 그를 재선시킨 혁혁한 공을 세운 정치 전략가이다.)
선지자는 말씀하시기를 미국의 위정자들과 입법자들은 일반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민중의 요구에 굴복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사실들이 오늘날 우리의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들은 부시 대통령의 임기 뿐 아니라, 그 후임이라 할지라도 역시 같은 활동이 진행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봐야 한다.
이미 성경은 미국이 개신교 정부로 일어날 것과 종교와 정치가 연합될 때 일요일 법령을 공포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제리 폴웰 목사의 강연 중 몇 구절을 들어보자.
“우리는 해결책이 민주당이나 공화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화당은 우리 기독교의 종교 권리 운동 회원들의 투표가 아니면 아무도 당선시킬 수 없는 입장에 놓여있기 때문에 우리는 공화당과 함께 일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공화당이 다른 쪽보다 더 하나님과 우리의 아이디어에 가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미국의 앞날에 대하여 긍정적입니다... 미국은 지난 30년 동안 하향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조용하고도 확실한 종교적인 각성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제 곧 우리는 과거에 없었던 놀라운 영적인 각성과 부흥을 보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8,000만 명 이상의 복음주의 파 기독교인들이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일요일 휴업 운동은 도덕 개혁 운동과 혼합되어 있음
초대교회가 세상 정부의 도움을 구한 것은 배교였으며, 그것이 짐승 곧 법왕권이 발전되는 길을 마련하였다. 성경은 1세기에 나타났던 것과 꼭 같은 교회의 타락 상태가 나타날 것을 말한다.
노아의 때와 같이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므로 하나님의 신이 떠나버린 인간의 상태를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 3:1-5)
이와 같이 불경건한 상태에 이르게 되면 도덕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는 데는 아무도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사단은 인간을 하나님의 율법에서 돌아서게 함으로 인간을 타락시킨 후, 도덕 개혁의 구실 아래 하나님의 십계명을 지킬 것을 강요하면서 넷째 계명인 안식일(토요일)을 일요일로 바꾸어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 미국에서 기독교 연합단체가 일으키고 있는 운동들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일요일 운동은 오늘날 암암리에 그 길을 마련하고 있다. 지도자들은 문제의 진상을 숨기고 있으며 그 운동에 연합하는 많은 사람들은 저류가 어디로 향해 흐르고 있는지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그 공언은 부드럽고 그리스도인답게 보이지만 그것을 말할 때는 용의 정신이 나타날 것이다.” (교회증언 5권 452)
“그러나 바로 그 부류(도덕 개혁 운동자)에 속한 사람들은 급속히 퍼져가는 타락적 풍조가 소위 그리스도인 안식일(일요일을 가리킴)을 모독하는데서 기인된다는 것과 일요일 준수를 강요함으로 사회의 도덕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참된 안식일의 교리가 가장 널리 전파된 미국에서 특별히 강조된다. 미국에서는 도덕적 개혁 운동에서 가장 두드러지고 중요한 운동 중 하나인 금주 운동(현재 미국의 여러 주에서 일요일에 술 판매 금지가 시행되고 있음)이 흔히 일요일 휴업 운동과 병행해서 이루어지며 또한 일요일 휴업 운동자들은 그들 사회의 가장 큰 복리를 촉진시키기 위하여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스스로 자처한다.” (대쟁투 587)
현재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독교 단체가 일으키는 운동은 미국이 도덕적으로 타락했으니까 청교도적인 정신으로 다시 회복하자는 것인데 이것을 미국의 법안을 통해 감행하자는 운동이다. 이 얼마나 그럴싸한 개혁 운동인가. 그러나 선지자의 말씀에는 그 운동은 일요일 휴업령과 연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마치 양의 탈을 쓴 이리같이...
“오류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어떤 운동이 본질적으로 선량한 어떤 다른 운동과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오류를 좋은 것으로 만들어 준다는 이론은 성립될 수 없다. 우리가 독소를 건전한 음식물에 혼합시킴으로 그 독성 자체를 가장할 수는 없다. 거짓 것과 혼합시켜 그것을 참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사단의 계획이다. 일요일 휴업 운동의 지도자들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개혁 사업과 일치되는 원칙들을 강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거기에 하나님의 율법과 반대되는 요구가 포함되어 있을 것 같으면 하나님의 종들은 그들과 연합할 수 없다. 사람의 계몽을 위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제외하는 일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대쟁투 588)
미국 50개 주에 지부들을 두고 수백만의 보수파 기독교인들을 훈련시키어 미국의 정치적인 방향을 바꾸어 놓으려고 하는 이 단체는 미국의 악을 청소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다시 회복시키자는 것이다. 그 일을 위하여 그들은 먼저 낙태금지 법안 확정, 동성연애 결혼 금지 법안 확정, 가정을 파괴하는 사회악들에 대한 추방 운동 등 미국을 기독교 국가로 환원시키기 위한 시도들을 그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현재 미국은 엄청난 보수주의 혁명이 진행 중이다. 보수파는 기독교인들끼리 연합해서 미국의 정치 풍토를 돌려서 옛날 보수적인 기독교 성향으로 돌리자고 하는 기독교인들이 모여서 정치 운동하는 사람들이다. 선지자는 미국에서 개신교 보수파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1844년부터 전파되기 시작한 셋째 천사의 기별을 거절한 타락한 개신교회는 그들의 참 상태를 알지 못하고 있다. 십자가의 은혜로 율법을 지킬 의무에서 해방되었다는 잘못된 교리가 십계명 중 넷째 계명인 안식일을 부활의 기념일이라는 구실 아래 일요일로 바꾸어 지키고 있다. 사실상 이것은 로마 카톨릭이 변경시켜 놓은 것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개신교도들은 일요일을 주장하고 있으면서 십계명을 지킬 것을 강요하고 있는데 미국의 각 관공서, 공공건물, 학교 등에 십계명비를 세우고 있다. 미국 곳곳을 지나다 보면 십계명이 기록되어 있는 팻말을 종종 보게 된다.
그들이 십계명을 걸어 놓고 올바른 도덕 개혁 운동을 하려면 그들의 신앙이 먼저 성경대로 돌아가야 할 것이 아닌가?
죄인이 오직 십자가 은혜로만 구원 얻는다는 막연한 신앙은 율법과 복음을 분리시킨 오류이다. 율법이 무시되면 죄가 무시되고 죄가 무시되면 죄인을 위한 십자가를 무시하게 되므로 결국은 성경 전체의 복음이 무시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율법을 범하는 것이 죄와 죽음이라면 십자가의 구원은 율법에 순종하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잘못된 교리는 사람들의 도덕관념을 약화시키고 교회와 세상에 죄악의 물결이 들어 올 수문을 열어 놓은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이 무시되면 죄가 사악하게 보이지 않고 의가 무의미해지므로 사람들은 자신을 지배할 기준을 잃게 된다. 또한 하나님의 율법으로 가해진 제재가 무시되면 누가 범죄 하기를 두려워 할 것인가?
현재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독교 연합 단체가 일으키는 운동은 사회의 부도덕과 악습을 몰아내고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다. 이 얼마나 그럴싸한 일인가. 그러나 그들이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다음과 같은 운동을 일으켜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계14:7)고 외쳐야 할 것이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경배하는 성경상 예배일은 주일 중 일곱째 날인 오늘날 토요일이다. 그러나 이 단체들이 하는 일은 결국 일요일에 예배할 것을 강요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에 온전히 순종하며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고 죽이려 할 것이다. 이 운동을 일으키는 주범은 하늘에서부터 하나님의 율법을 전복시키려고 시도했던 사단이다. 사단이 인간 매체를 통하여 이 일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2004년 말에 워싱턴 D.C.에서 있었던 크리스천 코올리션 집회의 총 주제는 ‘미국을 다시 찾자’였다.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미국을 낙태 찬성론자들과, 동성연애 활동가들과, 포르노 업자들과, 동성 결혼자들과, 쓰레기 같은 아동 문학 잡지들과, 좋지 않은 비디오 산업들과, 마약 장사들과, 콘돔을 권유하는 자들로부터 다시 되돌리도록 합시다”라고...
우리는 이러한 운동들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일요일 휴업령을 예언을 통하여 보게 될 때 얼마나 그 날이 가까이 왔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이 운동의 내막을 알고 있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그 운동에 가담하지 않음으로 오해받고, 핍박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성경상 안식일을 존중하는 사람들은 법률과 질서를 문란케 하고 사회의 도덕적 제지를 깨뜨리고 무정부상태와 타락을 초래하고, 지상에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들이는 자들로 지탄을 받게 될 것이다.” (대쟁투 592)
일요일 법령은 확실하게 다가오고 있다.
이제 성경상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이 온 세상의 증오를 받게 될 때가 멀지 않았다. 예언의 말씀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지금은 예언의 말씀을 미래의 사건으로 볼 때가 아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성취를 보면서 순간마다 깨어서 살피며 우리의 준비를 굳게 할 때이다.
이제 우리는 어느 때 보다도 회개와 헌신을 새롭게 하며 빛이 없는 세상에 현대 기별을 전파해야 한다.
우리는 과연 준비하고 있는가?
“확실한 것은 은혜의 시기가 끝나기 전에 짐승의 우상이 형성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큰 시험이 될 것이며, 이로 말미암아 그들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인침을 받기 전에 치루어야 할 시험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고 거짓 안식일을 거절함으로써 하나님께 충성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 사람들은 모두 다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설 것이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을 것이다.” (편지 11, 1890)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 중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날에 쓰라린 실망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마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뜨뜻미지근하고 반만 마음을 바쳤기 때문에 공공연한 불신자보다 훨씬 더 하나님께 욕을 돌린다.” (성경주석 7권 970)
평안하고 자유한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따라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품성이 준비되지 않으면 최후의 위기의 때에 그가 살아온 그대로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며, 짐승의 표를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의 운명은 오늘 이 순간의 결정으로 판가름 날 것이다.
짐승의 표와 하나님의 인
◼ 짐승의 표는 무엇인가?
“예언은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경고한 후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14:12)고 말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와 짐승과 그 우상을 경배하고 그 표를 받는 자를 대조적으로 기록한 것을 보면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와 짐승을 경배하는 자의 구별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과 범하는 데 있는 것이 분명하다... 다니엘은 작은 뿔, 곧 법왕권에 대하여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단7: 25)라고 말한다. 바울은 그 동일한 세력을 하나님보다 자기를 높이고자 한 ‘불법의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 두 예언은 서로 보완해 준다. 법왕권은 오직 하나님의 율법을 변경시킴으로서 자신을 하나님보다 높일 수 있었다. 그리고 누구든지 변경된 율법인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준수하는 자는 그 율법을 변경시킨 자에게 영광을 돌리는 셈이다. 이와 같이 법왕권의 율법을 순종하는 행위는 하나님 대신에 법왕에게 순종하는 표가 되는 것이다.” (대쟁투 445)
그러므로 일요일을 지키는 것이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표인 넷째 계명 안식일 대신, 안식일을 변경시킨 사람의 표인 일요일을 지키는 것은 표범과 같은 짐승(계13:2)으로 상징된 법왕권, 곧 사람을 경배하는 표가 되는 것이다.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 (계13:17)
“아직 아무도 짐승의 표를 받은 자는 없다. 시험하는 때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 모든 교회에 참된 그리스도인이 있는데 로마 카톨릭 교회에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저들이 빛을 받아들이고 넷째 계명에 대한 의무를 깨닫기 까지는 아무도 정죄를 받지 않는다. 그러나 거짓 안식일을 강요하는 법령이 반포되고 셋째 천사의 크게 외치는 소리가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것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경고하게 될 때 거짓 것과 참 것을 분명히 구별하는 선이 그어질 것이다. 그 때까지도 계속해서 넷째 계명을 범하는 자들은 짐승의 표를 받게 될 것이다.” (복음전도 234)
넷째 계명 안식일 대신 로마교의 안식일인 일요일을 지키라는 법령이 반포될 때 많은 사람들이 짐승의 표를 받게 될 것이다. 자유로운 때에 하나님의 계명의 원칙을 생활의 원리로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주어진 빛에 신실히 살아온 자들 외에는 환란의 때에 자신의 신앙을 버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느 편에 속하였는가?
지금! 곧 지금이 우리의 구원을 준비할 때이다!
“네가 보행자와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는 어찌하겠느냐”(렘12:5)
◼ 하나님의 인은 무엇인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은 하나님과 같은 품성을 가진 자에게 쳐진다.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출 31:13)
넷째 계명 안식일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신앙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에 순종함으로 얻는 품성은 율법을 주신 분의 품성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는 의의 열매를 맺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편지 76, 1900)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의 표로 세상에 주어진 안식일은 그분이 거룩하게 하시는 자임을 알리는 표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창조하신 능력은 그분의 형상을 따라 영혼을 재창조 하시는 능력이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자들에게 있어서 안식일은 성결의 표이다. 참된 성결은 하나님과 조화되는 것이며, 그분의 품성과 하나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분의 품성의 사본인 원칙(율법)들을 순종함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안식일은 순종의 표이다. 진정으로 넷째 계명을 지키는 자는 율법 전체를 지킬 것이다. 그는 순종을 통하여 거룩하게 된다.” (성경주석 7권 968)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은 주님의 안식일을 양심적으로 지키는 자들에게 쳐진다.” (성경주석 7권 990)
“안식일은 충성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안식일은 특별히 투쟁의 초점이 되는 진리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마지막 시련이 닥쳐올 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과 섬기지 아니하는 자들을 구별하는 선이 그어질 것이다.” (대쟁투 605)
이 구별은 성경상의 안식일을 고수함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높이는 참 백성과 인간이 변경한 일요일을 성수하는 사람들과의 구별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마에 쳐지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들의 눈으로 볼 수 없고 천사들이 볼 수 있는 표이다. 그 까닭은 파괴하는 천사가 이 구원의 표를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천사들은 주님의 택한 자녀들에게 있는 갈바리의 십자가의 표시를 보아왔다.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죄는 사라진다. 그들은 혼인예복을 입고 있으며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순종하고 충성한다.” (성경주석 7권 968)
“하나님의 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볼 수 있는 어떤 표가 아니다. 지적으로, 영적으로 진리 안에 안착함으로 그들이 요동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인을 맞고 흔들림을 위한 준비를 갖추자마자 흔들림이 올 것이다. 사실 그것은 이미 시작되었다.” (성경주석 4권 1161)
“환란의 때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에 우리는 모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을 것이다. 그 다음에 네 천사가 바람을 놓을 것을 나는 보았다. 그리고 나는 흉년과 온역과 검을 보았으며,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것을 보았으며, 온 세상은 혼란 가운데 있었다.” (리뷰 1887.6.7)
“오직 두 계층만이 있게 될 것이다. 각 계층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으로 인 쳐지든지 짐승의 표나 그 우상으로 인 쳐지게 된다.” (리뷰 1900.1.30)
“믿음과 불신과의 큰 싸움에는 모든 그리스도교계가 다 포함될 것이다. 모두는 어느 한 편에 가담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어느 편의 싸움에도 가담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다. 그들은 진리를 대적하는 편에 가담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재산을 잃어버리거나 비난을 받을 것을 두려워하므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담대하게 나서지 않을 것이다. 그런 모든 자들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로 간주된다.” (리뷰 1893.2.7)
“우리가 종말에 접근해 갈수록 빛의 자녀들과 어둠의 자녀들 사이의 구분이 더욱 더 확실해 질 것이다. 그들은 점점 더 상이해질 것이다. 이 차이는 ‘거듭나라’고 한 그리스도의 말씀에 나타나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창조되고 세상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사는 것을 말한다. 이것들은 하늘의 것과 세상의 것을 구분하고, 세상에 속한 자들과, 세상에서 택함을 받아 나온 자들과의 분리의 벽이다....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해 온 자들은 빛 가운데서 성도들의 무리와 연합 할 것이다. 그들은 문들을 통하여 성으로 들어가며 생명나무에 나아갈 권세를 얻을 것이다.” (마지막 날 사건들 206)
최초의 전쟁 : 율법 전쟁
법왕권이 한낱 인간으로서 하나님과의 동등권을 행사하고 하나님의 권위보다 자신의 권위를 높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변경시킴으로 가능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변경시키는 일은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율법이 무시되고, 인간의 지식과 과학을 따르고 있는 것은 하나님보다 인간의 권위에 굴복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최고로 높이지 않는 것은 인간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현재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우리 안에 짐승의 우상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실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늘에서 대쟁투가 시작된 시초부터 하나님의 율법을 전복하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 되어 왔다. 사단은 이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창조주를 반역하였다. 그는 하늘에서 쫓겨났지만 이 세상에서 여전히 동일한 싸움을 계속 해 오고 있다. 인류를 기만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게 하는 것이 그가 꾸준히 추구해 오는 목적이다. 그 목적이 하나님의 율법을 모두 버리게 하거나 그 일부를 버리게 하든지 간에 목적의 성취에 있어서 그 결과는 궁극적으로 똑같다. 율법의 한 조목을 범하는 자는 온 율법에 대한 경멸을 나타낸다. 그의 감화와 행동은 범죄의 편에 있으며 그는 결국 율법을 ‘모두 범한 자’(약2:10)가 된다... 진리를 거절함으로 사람들은 진리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거절하게 된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지만 진정으로 그것을 생애의 원리로 받아들이는 자는 극히 적다.” (대쟁투 582)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예수님)과 그의 사자들이 용(사단)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계12:7-9)
이 전쟁은 율법 전쟁이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싸움이 과연 성립될 수 있었을까? 이것은 마치 5-6세의 어린아이가 20-30대의 건장한 청년과 겨루어 보겠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사단은 하나님의 정부의 기초가 되는 율법에 문제가 있다고 트집을 잡으면서 율법을 세우신 하나님과 비기려 하였던 것이다. 오늘날 이 땅에서 이 일을 자행하고 있는 사단의 대리자는 앞서 살펴 본대로 로마 교황권이다.
사단이 전쟁을 일으킨 목적과 정신을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 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 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사14:12-14)
우리는 이 말씀을 읽을 때에 ‘어떻게 감히 한낱 피조물이 창조주의 일에 반기를 들고 대항할 수 있었을까?’하고 의아해 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사단이 가지고 있는 동일한 정신으로 살고 있지 않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인 신뢰와 순종이 있어야 하는 것은 그 분이 창조주(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피조물들이 창조주에 대한 신뢰를 갖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인간의 말을 믿고 따르며 하나님의 권위보다 인간의 권위를 높이며 하나님과 싸우고 있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반역이 아닐 수 없다.
“인간(아담)이 타락한 후에 사단은 인류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고 선언하고 이를 온 우주에 전달하려고 노력하였다. 사단의 주장은 사실인 것처럼 들렸으며, 그리스도께서는 이 기만자의 정체를 폭로하기 위하여 오셨다. 인간과 동일한 조건을 가지시고 인간이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사단의 시험들을 이기셨다...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심으로 시험을 받게 될 모든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게 되셨다(히 4:15-16참조). 그리스도께서는 타락한 상태에 놓여 있는 인성을 쓰셨다. 이것은 유한한 인간으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굴욕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쓰시고 인간의 대표자의 입장을 취하시고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피조물들인 인간이 하늘 아버지와 아들과 연합될 때에 사단과의 투쟁 속에서도 모든 거룩한 요구에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을 증거 하기 위함이었다.” (가려 뽑은 기별 1권 253)
“그리스도는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해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고 하신다. 여기에 우리가 끝까지 붙잡아야 할 확신의 근본이 있다. 그리스도께서 사단의 유혹을 물리치셨다면 우리에게도 유혹을 이길 힘을 주실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인간의 노력과 결합시키기 위하여 오셨다.” (원고 141,1901)
“그리스도의 승리와 순종은 인간으로서의 승리와 순종이었다. 우리 구주의 인성에 대한 우리들의 그릇된 견해 때문에 우리들의 결론에는 잘못이 많다. 인간이 사단과 싸울 때 입을 수 없는 능력을 그분의 인성에다 적용시킬 때 우리는 그분이 완전한 인간이었다는 진리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믿음으로 그를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그의 입혀주시는 은혜와 능력을 더하신다. 아버지께 대한 그리스도의 순종과 꼭 같은 순종을 우리 사람들에게 요구하신다. 인간은 하나님의 능력과 연합하지 않고는 사단의 시험을 결단코 이길 수 없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셔서 우리들에게 보여준 순종은 어떤 한 낮은 하나님이 그보다 더 높은 하나님께 드린 순종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에 순종한 것이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는 우리의 모본이시다... 인간은 믿음으로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될 수 있고, 그를 호위하고 있는 모든 시험을 이길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모든 아들 딸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성 가운데서(각각 자기 분량대로) 그분을 섬기라는 것이다.” (원고 1, 1892)
“사단이 하늘 궁정에서 일으킨 대쟁투는 신속하게 매우 신속하게 영원히 종결될 것이다. 머지않아 세상의 모든 거민들은 하늘 정부의 편에 서거나 아니면 그 반대편에 서거나 할 것이다... 이전 어느 때보다도 지금 사단은 방심하고 있는 영혼들을 그릇 인도하고 멸망시키기 위하여 미혹시키는 능력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 앞에 놓여 있는 큰 쟁점에 대하여 사람들을 일깨워 준비시키라는 부름을 받고 있다.” (교회증언 7권 141)
안식일과 일요일은 인간이 누구를 경배하며 따르느냐 하는 쟁점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이 변경 됨
그러면 과연 로마 카톨릭은 하나님의 율법을 변경시켰는가?
다음의 비교표를 보자.
“안식일의 변경에 관하여 성경상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것은 개신교도들이 일반적으로 시인하는 사실이다. 미국 전도문서 협회와 미국 주일학교 연맹에서 발행한 출판물들에는 그 사실이 분명히 밝혀져 있다.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시기까지는 그 날(제 칠일 안식일을 가리킴)에 관하여 아무런 변경도 없었다. 또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사도들이 제 칠일 안식일을 폐지하고 그 대신에 주일 중 첫날을 지키라고 명령한 아무 확실한 말도 한 일이 없다.’(A.E.Waffle, The Lord's Day, pp.186-188)
로마 교회는 그들의 교회가 안식일을 변경시켰다는 사실을 시인하며 개신교가 일요일을 지키는 것은 그들의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천주교 교리문답은 넷째 계명에 따라 지켜야 할 날에 관한 질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구약시대에는 토요일이 성별된 날이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교훈을 받고 성령의 지도를 따른 교회는 일요일로 토요일을 대신하게 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제 칠일이 아닌 제 일일을 성별한다. 지금은 일요일이 주의 날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안식일의 변경이야말로 로마 교회의 권위의 표, 곧 짐승의 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대쟁투 448)
다음의 기록에서 개신교회에 대한 카톨릭의 주장을 들어보자.
“만약 당신이 성경만을 따른다면 당신은 토요일(안식일)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그날이야말로 거룩히 지켜지도록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특별히 지시하셨기 때문이다. 비 카톨릭 신자들은 일요일을 지킴으로써 성경의 제도가 아닌 카톨릭 교회의 전통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신자들처럼 토요일(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은 이 점에서 그들의 덜미를 잡고 있는 것이다. 성경만을 신앙의 유일한 지침으로 주장하고 있는 개신 교회는 일요일 준수에 대한 아무 보증이 없다.”(F.G. Lentz, The Question Box (NY :Christian Press Assn.,1900, pp.98,99) : “The Question Box”, The catholic Universe Bulletin, 69 (Aug. 14, 1942))
몬시그노 세굴은, “카톨릭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로 이 안식일을 우리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일요일로 옮겼다. 개신교회는 일요일을 준수함으로써 그들 자신도 모르게 교회(카톨릭)의 권위에 경의를 표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Monsignor Segur, Planin Talk About the Protestantism of Today. p. 225).
로마 카톨릭 교회의 사제인 엔라이트(Father Enright)신부는 뉴욕의 아메리칸 센티널(American Sentinel)지에 이렇게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성경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말한다. 카톨릭 교회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우리의 거룩한 권위로 우리는 안식일을 폐하였고, 주일의 첫째 날을 거룩히 지키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지금 전 문명 세계가 거룩한 카톨릭 교회의 명령에 존경하는 마음으로 순종하고 있다. ”
“로마 교회는 아직까지 자신의 최상권에 대한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과 개신교회들은 성경상 안식일(토요일)을 부인하는 한편, 로마교가 제정한 안식일(일요일)을 받아들이므로 사실상 이 주장을 시인하고 있다. 그들은 이와 같은 변경을 전통의 힘이나, 교구들의 능력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함으로서 그들은 결국 로마교와 그들을 분리시키는 바로 그 원칙, 곧 ‘성경, 오직 성경만이 개신교의 신앙’이라는 원칙을 무시하게 된다. 법왕교도들은 개신교도들이 이 사실에 대하여 고의적으로 눈을 감고 스스로 속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일요일을 강요하는 운동이 세력을 얻게 되면, 개신교 전체가 로마교의 깃발 아래 서게 될 것을 확신함으로 법왕교도는 매우 기뻐한다. 로마 교도들은 ‘개신교도들의 일요일 준수는 그들이 어떠한 말을 하든지 간에 교회(천주교)의 권위에 존경을 표하는 일이다.’ 라고 주장한다.... 세속적 권력을 가지고 종교적 의무를 강요하는 바로 그 행위로 말미암아 교회들은 스스로 짐승의 우상을 만들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북미합중국이 일요일 준수를 강요하는 것은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도록 강요하는 일이 된다.” (대쟁투 448)
일요일 준수냐, 안식일 준수냐, 하는 문제의 핵심은 날의 문제라기보다는 누가 나의 주인이냐 하는 문제이다. 다시 말하면 안식일을 제정하신 하나님을 따르느냐 아니면 안식일을 변경시켜 일요일을 제정한 사람을 따르느냐 하는 경배의 대상의 문제인 것이다.
성경에는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 6:16)고 한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 하는 도다 …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 도다.”(막 7:7-9)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베드로와 사도들처럼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 하니라”(행 5:29) 고 용감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일요일 예배는 사람의 계명이다.
성경에는 일요일을 신성시하는 어떤 말도 없으며, 일요일 예배가 교회 안에 들어온 역사적 배경에는 카톨릭이 있었으며, 영지주의 신학자들의 영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예수는 ‘의의 태양’이므로 로마인들이 섬기는 태양신과 같은 신이라고 주장하며 일요일 예배를 합리화 시켰다. 뿐만 아니라 이들을 통하여 일요일 신성론 (일요일은 태양의 날임), 영혼 불멸설, 크리스마스 축제, 마리아 숭배와 같은 이교의 오류들이 교회 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주일예배를 드리는 것은 전혀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님이 성경적으로 역사적으로 입증되는 것이다.
우리는 신앙에 관한한, 어떤 인간이나 집단의 가르침에 맹종하지 말아야 하며 성경을 연구하여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므로 올바른 신앙의 길을 찾는 것이 참 신앙인의 자세일 것이다.
요한계시록 13장의 ‘새끼 양같이 두 뿔 가진 짐승(미국)이 먼저 나온 짐승(교황권)의 권세를 받아 용처럼 말 하더라’ 는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사단의 최후의 활동 무대는 미국이다. 온 세상이 미국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현재 미국은 로마 카톨릭의 힘을 받고 있으며 종교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온 세상을 장악하려 한다. 뿐만 아니라,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 까지 다 장악하여 짐승의 표(매매표-계13:17)를 받게 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미래에 일어날 예언을 공부하는 시기가 아니고, 그 예언이 이미 성취되고 있는 것을 보고 준비해야 할 때이다.
만물의 마지막이 참으로 가까이 왔다.
하나님의 율법은 변경될 수 없음
하나님의 율법은 변경될 수도 없고 변경해서도 안 된다. 특히 십계명 중 넷째 계명은 율법 전체를 연결하고 있으므로 넷째 계명을 범하는 것은 율법 전체를 범하는 것과 같다. 그 계명만이 인간이 누구를 섬겨야 하는지, 인간의 필요가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있는 창조주를 소개하고 있다.
“창조의 기념일로서의 안식일(창2:1-3)의 중요성은 그 날이 하나님께서는 창조주가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피조물이 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경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을 항상 가르쳐 주는 데 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바로 기초가 된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 위대한 진리를 가장 감명적으로 가르쳐 주고, 그 밖의 다른 제도는 이와 같이 가르쳐 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제 칠일 안식일 예배 뿐 아니라, 모든 예배의 진정한 기초는 창조주와 피조물을 구별하는 데서 나타나게 된다. 이 큰 진리는 결코 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잊어버려서도 안 된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안식일을 제정하신 것은 이 진리를 항상 사람들의 마음에 간직하게 하시고자 함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창조주이시므로 우리가 그분을 경배해야 한다는 진리가 존속하는 한 안식일도 또한 그 증거와 기념으로 존속되어야 한다. 만일 인류가 오늘날까지 안식일을 지켜왔다면 그들의 생각과 애정이 창조주께 집중되어 주님께서는 존경과 예배의 대상이 되셨을 것이며, 우상 숭배와 무신론자와 회의론자가 결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안식일 준수는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계14:7) 참 하나님께 대한 충성의 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라고 명령하는 기별은 인류에게 특별히 넷째 계명을 지키라는 요구가 될 것이다.” (대쟁투 438)
사람들이 넷째 계명을 올바로 이해하고 창조주에 대한 신뢰가 일어나면 율법 전체를 지키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 계명 속에는 모든 계명이 다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계14:12)들은 율법 전체에 순종하는 자들이다. 이것은 오직 예수님과 같은 믿음을 소유함으로만이 가능한 것이다.
안식일은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할 것임
안식일은 창조주께서 쉬시고 축복하심으로 거룩하게 구별되었다(창2:1-3). 또한 거룩하게 구별된 안식일은 죄 없는 에덴에서 아담이 지켰고 아담이 타락한 이후에도 구속의 약속과 함께 안식일은 계속되어 아담이 회개한 후에도 지켰고, 아벨로부터 노아, 아브라함, 야곱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조상들이 그 날을 지켰다. 하나님의 택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노예가 되었을 때 그들은 그 주위에 편만한 우상숭배의 풍조에 휩쓸려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지식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족속들을 구원하여 또다시 율법을 주셨다(시내산). 그 이후 다시 안식일은 회복되어 계속 지켜져 왔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도 안식일을 지켰으며(눅4:16), 부활 후 그리스도인들이 지켰고(행13:42-44), 사도바울이 지켰고(행18:4),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킬 것이며(히 4:9-12, 계14:12, 12:17), 이 백성들에 의해서 로마 교회가 변경한 안식일이 다시 회복될 것이며(사58:12-14), 예수님 재림 전에 회복된 이 안식일은 구원받은 백성들의 표징이 될 것이며(계14:12), 이 백성들이 하늘에 가서도 영원히 안식일을 지킬 것이다(사66:23).
안식일은 피조물과 창조주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존속될 것이다.
이 모든 사실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온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7,18)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 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사8:20)리라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미리 말씀 하셨다.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 두 가지 측면, 즉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를 함께 보아야 할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죄는 죽음을 가져온다는 하나님의 공의를 예수님의 죽음을 통하여 보여주시는 한편, 그의 죽으심을 통하여 범죄한 인간에게 용서와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가 흘러나오는 사건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인가!
그러므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가 만난 곳이며, 이것이 하나님의 정부의 기초가 되는 사랑의 율법이다.
“하나님의 율법은 사람이 지음을 받기 전부터 있었다. 그것은 거룩한 존재자들의 상태에 알맞은 것이었고 천사들일지라도 율법의 지배를 받았다. 타락한 후에도 의의 원칙은 변함이 없었다. 율법에서 삭제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 거룩한 계명 중 단 하나도 변개시킬 수 없었다. 그것은 처음 생겼을 때와 똑같이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목사와 복음 교역자들에게 보내는 권면 497)
십자가로 폐지된 의문의 율법
오늘날 개신교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후, 신약시대에 와서는 구약의 율법(안식일)이 폐지되었으므로 율법을 지킬 의무에서 벗어나고 오직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며 마음 편하게 죄를 범하면서 오히려 십자가의 은혜를 소멸시키고 있다.
율법을 무시하면 율법을 범한 죄인을 위하여 치르신 십자가도 무시되며, 십자가가 무시되면 성경 자체의 복음이 무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고 친히 말씀하셨다. 그러면 성경에서 폐지되었다고 하는 율법은 무엇인가.
다니엘서 9장 24절부터 시작되는 예언 가운데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서 지상의 성소제도가 폐지될 것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단9:27)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지상 성소의 휘장에 뿌려졌던 동물의 피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므로 성소의 휘장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 찢어졌다. 이 사건은 표상적이었던 예식이 실체가 오셔서 다 이루심으로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었음을 뜻한다.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 하나이다 하고 이 말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눅23:45,46)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모세가 제사 의식에 대해서 기록한 증서인 의문의 율법은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되었다.
율법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반포하신 돌 위에 새긴 십계명인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지성소 안에 있는 법궤 속에 보관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모세가 절기들과 성소 의식에 관하여 두루마리에 기록한 의식법이다.
골로새서 2장 14-17절의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것은 증서인 의문의 율법에 포함된 내용들이다. 이런 율법들은 다 ‘장래 일의 그림자’ (17절)로, 실체되신 예수님이 오심으로 지상 성소와 함께 제사 제도에 관한 모든 법칙들은 당연히 없어질 것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절기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은 장래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골2:14-17)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유대인들이 구약시대에 지켜왔던 성소와 관련된 행사인 절기나, 월삭이나, 절기 안식일이 폐지되었다. 유대인들이 지키던 절기들은 모두 오실 자의 표상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돌 위에 새긴 하나님의 보좌의 대 원칙이 되는 십계명은 폐지되지 않았으며, 천지가 없어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설 것이다.
요한계시록 13장 예언과 미국
요한계시록 13장의 예언은 중세 교황권의 활동과 몰락, 그리고 다시 부활한 교황권과 개신교 국가 미국, 미국과 교황권과의 결탁 등 정치적, 종교적 예언을 다루고 있으며, 특히 미국의 정치적 힘을 업고 온 세상이 그(교황권)가 변경한 안식일(일요일)을 지키도록 법적으로 강요할 것이 예언되어 있다. 즉, 온 세상이 짐승의 표를 받게 할 것이라는 예언이다. 이 예언은 미국에 대한 예언이다.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는 짐승으로 표상된 미국이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짐승(교황권)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고 강요할 것이다. 선지자는 말씀하시기를 “로마교가 정권(미국)과 손을 잡으면 암흑시대가 시작된다는 표적이다.” (살아남는 이들 374)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보니 또 다른 짐승(미국)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 하더라 저가 먼저 나온 짐승(교황권)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교황권)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계13:11-13)
이 예언은 1798년에 신대륙에서 일어난 미합중국에 관한 예언이다.
과연 그럴까?
“세계를 지배하던 강국들은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단7:12)때에 올라오는 맹수들로 선지자 다니엘에게 나타났다. 요한계시록 17장에서 한 천사는 ‘물은 백성과 무리와 방언들이니라’(계17:15)고 설명하였다. 바람은 전쟁을 표상 한다. 그리고 네 바람이 바다에서 크게 몰려 부는 것은 모든 나라에서 세력을 잡기 위하여 일어나는 정복과 혁명의 무서운 장면을 표상 한다. 그러나 새끼 양같이 두 뿔을 가진 짐승은 ‘땅에서 올라’왔다. 이 같은 모양으로 표상 된 나라는 자기 스스로를 확립하기 위하여 다른 세력을 넘어뜨리는 대신 일찍이 아무에게도 점령된 일이 없는 지역에서 일어나서 점진적으로 또한 평화롭게 자라난 나라이어야 한다...
이 예언과 모든 점에 있어서 부합되는 한 나라, 오직 한 나라가 있는데 그것은 북미합중국이다.
역사가와 평론가들은 이 나라의 기원과 성장을 묘사할 때, 무의식중에 이 성경 기자의 사상을 거의 그대로 되풀이해서 사용하였다.
이 짐승은 ‘땅에서 올라 온다’고 되어 있는데, 해석자들이 여기에서 사용한 말을 풀이한데 의하면 이 ‘올라 온다’는 말은 글자 그대로 ‘식물이 자라나거나 움터 올라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바와 같이 이 나라는 일찍이 어떤 다른 나라로 말미암아 점령된 일이 없는 지역에서 일어나야 한다. 어떤 유명한 저술가는 북미합중국의 기원을 기술하면서 ‘빈터에서 일어난 이 나라의 신비’라고 말하고, 또한 ‘우리는 소리 없는 종자와 같이 자라나서 큰 나라가 되었다’고 말한다. 1850년에 유럽의 한 잡지는 합중국을 위대한 제국이라고 말하고, 그것은 ‘땅의 침묵 속에서 나와서 날마다 세력과 힘을 첨가시키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 두 뿔 가진 새끼 양 같은 짐승은 어리고 순진하고 온순한 것을 나타내고 있으며 선지자가 ‘올라’오리라고 말한 그대로 1798년에 나타난 미합중국의 성격을 적절히 묘사하고 있다. 아메리카로 피하여 와서 거기서 왕의 압박과 신부들의 박해에서 피난처를 얻은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정치와 종교의 자유를 큰 기초로 삼는 정부를 세우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의 견해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생명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남에게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 받았다’ 는 큰 진리를 밝혀 주는 독립선언서에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헌법은 자치의 권리를 국민에게 보증하고 일반 투표에 의하여 선출 된 대표자들이 법률을 제정하고 집행 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신앙의 자유가 인정되어 각 사람은 자기 양심의 명령을 따라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허용되었다. 공화정체와 개신교의 원칙이 국가의 기본 원칙이 되었다. 그 원칙들이 능력과 번영의 비결이 된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교 국에서 압박과 억압을 당하던 사람들이 동경과 희망을 가지고 이 나라로 이주하여 왔다. 수백만 명이 이 나라에 상륙하여 합중국은 세상의 가장 강력한 나라로 나타나게 되었다.” (대쟁투 439-441)
“요한계시록 13장의 예언은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는 짐승으로 묘사된 세력(미국)이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표범과 비슷한 짐승으로 묘사된 세력인 법왕권을 경배하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 두 뿔 가진 짐승(미국)은 또한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할 것이며, 더욱이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계13:11-16) 하라고 명령할 것이다.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는 짐승으로 표상된 세력은 북미합중국임이 이미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예언은 로마교가 그의 최상권에 대한 특별한 인정의 표로 주장하는 일요일 준수를 미국이 강요하게 될 때 성취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만이 법왕권에게 이러한 경의를 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 때 로마교의 지배권을 인정한 모든 나라에 있었던 그의 영향력은 아직도 없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예언은 그 세력이 다시 회복될 것을 알려 준다.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계13:3)리라고 한다.
교황권이 치명적 상처를 받은 타격은 1798년에 발생한 법왕권의 몰락을 가리킨다. 그 일이 있은 후, 선지자는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더라고 말한다. 바울은 그 ‘불법한 자’(살후2:8)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존재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바로 세상 종말까지 기만하는 사업을 계속 할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기자는 법왕권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계 13:8)고 한다.” (대쟁투 578-579)
AD 538년은 로마 황제 저스티니안이 로마 도시에 있는 교회 감독을 세상 모든 교회의 머리로 인정한다는 칙령에 의하여 교황권이 시작된 해이다. 538년에서 1798년에 이르기까지 -한 때 두 때 반 때(계12:14), 마흔 두 달 (계 13:5), 1260일(년) (계 11:3,12:6)- 의 기간은 로마 교황권에 의하여 성도가 핍박 받은 기간을 말한다. 1798년에 나폴레옹 장군의 부하 버티어 장군이 로마에 가서 그 당시 교황 피우스 6세를 잡아다가 불란서로 데리고 가서 옥에 가두었다가 3개월 만에 죽게 하므로 “그 머리(교황권)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계 13:3상단)라는 예언이 성취된 것이다. 그러나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계 13:3하단)라고 예언된 말씀 그대로 오늘날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교황권의 권세는 누구도 대항할 수 없는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의 로마 카톨릭은 정치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교황청의 이 엄청난 위력은 카톨릭이라는 종교의 힘, 즉 카톨릭의 신앙적이고 교세적인 요소에서 나오는 힘이다. 지금까지 교황청은 일관된 신조를 유지해 왔으며, 오늘날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카톨릭 신도의 수는 천문학적인 수를 확보하고 있다. 교황권의 독재는 어떤 권력의 통제도 받지 않을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해 진 것이다. 교황권은 서방세계의 회의나 상.하원 같은 민주적인 제도가 없으므로 실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독재자인 것이다. 이제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므로 온 세상이 그를 따를 것이나 곧 하나님의 심판이 뒤따를 것인데 요한계시록 17장의 예언이 우리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세상 앞에 드러나 있는 교황의 활동을 볼 때에 곧 마지막 드라마를 연출시킬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세상의 종말이 심히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한다.
요한계시록 17장 예언과 다시 살아난 교황권의 활동
요한계시록 17장에는 마지막 시대에 다시 부활한 짐승으로 표상된 교황권이 어떻게 부활하여 일어날 것이며, 어떠한 심판을 당할 것인가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붉은빛 짐승을 타고 있는 여자(큰 음녀)는 인류 종말의 역사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을 것이다. 그 여자의 활동은 그가 타고 있는 짐승의 활동 기간만큼 잠시 활동할 것이나, 그 짐승과 함께 멸망으로 들어갈 것이므로 지구 역사의 마지막 단계의 활동을 하게 될 것이다.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 갈”(계 17:8) 그 짐승은 요한계시록 13장 3절에서 죽게 되었던 짐승이 잠깐 회복되어 활동하겠으나 곧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에 들어갈 것이라는 예언이다.
현재 죽게 되었던 짐승(교황권)이 잠깐 회복됨으로 온 땅이 그를 따르고 있는 모습을 지금 우리는 현실감 있게 보고 있지 않은가? 온 세상이 그의 명령에 굴복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로마 카톨릭은 하나님의 계명을 변경시킨 권위를 가지고 온 세상이 그를 따르도록 할 것인데, 짐승의 표(일요일을 성수하게 하는 표, 매매표)를 내어 놓을 것이다. 사람의 권위를 최상으로 높이는 일을 법적으로 강요함으로 죄의 잔이 차게 될 것이다.
2005년 4월 8일 금요일 오전 9시 30분, 온 세계가 한 자리에 모였다. 각 나라의 왕들과 대통령들과 수상들과 정치가들과 그리고 특히 각 종교단체의 지도자들, 기독교회는 물론 이슬람 종교와 힌두교, 심지어는 불교의 지도자들까지 한 자리에 모여 한 인간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수백 년 동안 분리되어 있던 동방정교의 사제들이 와서 장례식의 한 부분을 차지하였다. 약 400만 명의 순례자들이 요한바오로 2세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로마로 몰려 왔고 베드로 바실리카 앞 바티칸 광장에는 약 20만 명의 군중이 모여들었다. 두 시간 반에 걸친 장례식은 천주교 미사 예식이었다.
CNN방송국은 이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온 세계에 생방송으로 중계하였으며 모든 장례예식의 절차를 세밀하게 다 설명해 주었다.
어쩌면 이런 일이 다 일어날 수 있을까?
인류 역사상 가장 성대한 장례식을 우리는 온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함께 보았다. 한 인간의 죽음에 온 세계가 모여 이렇게 애도와 경의의 뜻을 표해야 하는가? 왜 온 나라의 왕들과 종교 지도자들과 모든 민족의 백성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기이하게 여기며 그를 따라야 하는가? 그 해답은 성경 예언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재림이 얼마나 임박하였는가를 우리에게 알려 주는 확실한 경고이다.
이번 교황의 장례식이 보여준 바티칸의 모습은 그 자체가 이 예언을 그대로 요약하여 묘사해 주는 상징들의 실체였다.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그 여자는 자줏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 하더라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계 17:2,4,5)
바티칸 광장에서 장례식을 집전한 라칭거(Ratzinger)추기경(현재 교황 베네딕트 16세)이 높이 든 금잔 앞에 온 세상의 왕들과 백성들 모두가 다 마치 포도주에 취한 자들처럼 서 있었다. 그리고 주교들은 말씀 그대로 자주색과 붉은 빛 옷들을 입고 있었으며 18절의 말씀 그대로 바티칸이 세상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도시)이라는 사실을 만 천하에 드러내었다. “또 네가 본 바 여자(음녀)는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 (계 17:18) 바티칸은 국가이면서 교회이다. 교황권은 국가로서의 권력과 종교 지도자로서의 권세를 둘 다 가지고 있다. TV화면에 비춰진 바오로 2세의 장례식에서 그 색깔과 미사예식과 취하게 하는 포도주를 담은 금잔과 그리고 모든 왕들과 온 세상 백성들을 매료시킨 그 의식은 정말로 계시록 17장 내용 바로 그것이었다.
로마 교회는 잘못된 복음과 오류로 온 세상을 취하게 만들었다. 오류의 가르침은 이교의 가르침, 즉 바벨론의 우상 숭배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그들은 제 칠일 안식일 예배를 일요일 예배로 변경시킴으로 하나님께 돌려야 할 경배를 인간이 받게 하였다. 또한, 어거스틴의 원죄설로 성경의 복음을 어둡게 하였고, 교회의 예식들과 성지 순례 등 교회가 제정한 제도들을 따라 행함으로 구원의 공로를 쌓아 나갈 수 있다는 오류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였다. 영혼 불멸설과 지옥설, 연옥설, 미사와 고해성사, 마리아 숭배, 신부들의 금욕주의 등등은 음녀가 창안하여 낸 취하게 하는 포도주들이다. 온 세상에 있는 11억의 천주교인들은 물론, 많은 개신교회들도 그를 따르며 영적으로 혼미한 상태에 있다. 그의 포도주에 다 취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예언은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계 17:5)라고 표현하고 있다. 음녀라는 표현은 이교와 음행을 행하는 타락한 교회를 말하고 있는 상징적인 언어이다. 음녀가 붉은 빛 짐승을 타고 있는데 이 붉은 빛 짐승은 바벨론 세력이 국가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 당시 이교 로마를 붉은 용으로 표상 했다. 물론 용은 마귀를 상징하는 말이지만 사단이 그 당시에는 이교 로마를 통하여 역사해 왔기 때문에 실제로 교황권을 받들어서 보좌에 앉혀 준 실제 세력은 로마 제국이었다. 요한계시록 13장에 열 뿔이 있고, 일곱 머리가 있는 짐승인 용이 교황권에게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주었다고 말씀하셨다(계 13:1,2참조). 또한 이 예언은 미국이 로마 카톨릭의 강력한 독재의 권세를 받아 행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저가(미국) 먼저 나온 짐승(교황권)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계13:12)라고 한다.
그러나 그 같은 예언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그 변경된 율법을 따르도록 강요하는 권세에 굴복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계14:12)는 참된 백성을 가지고 계시는데, 이들은 오직 하나님의 율법을 높이며 안식일을 선포할 것이다. 이 무리들이 세상 끝 날에 살아서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할 마지막 성도인 것이다. 이 성도들은 짐승의 우상이 서기 이전부터 그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그분의 말씀의 권위에 복종하는 산 믿음을 행사하므로 순종의 삶을 살았으므로 하나님의 품성을 회복한 백성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이 이 때를 위하여 준비하고 있지 않는 듯 하다.
“나는 지상에 있는 남은 무리에게 집중하도록 명함을 받았다.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이 일곱 재앙을 피하게 될까? 만일 그렇다면 살기 위하여 죽어야 한다. 준비하라! 준비하라! 그대들이 지금 하고 있는 것보다 더 큰 준비를 해야 한다’ 고 하였다.” (마라나다 98)
일요일 휴업령과 우리의 위기
로마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기 시작했을 때 여러 가지 징조들이 나타났으며 그리스도인들은 예언적 안목으로 이것이 예루살렘에서 도망쳐 나오라(마24:15-16)는 긴박한 예언의 성취인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의 멸망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한사람도 멸망당하지 않고 다 도망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한 모든 사람들에게는 기근과 대살육과 지루하고도 무력한 항쟁과 죽음이 뒤따랐다. 선지자는 말씀하시기를 “역사는 반복”할 것이라고 하셨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하나님의 은혜를 소홀히 여기고 하나님의 호소를 거절하고 있는 세상 종말의 상태를 보여주는 두렵고 떨리는 경고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13장의 용의 세력으로 묘사 되었던 이교 로마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던 것처럼 일요일 법령이 용(미국)의 세력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면 우리는 긴박한 예언의 성취를 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이것은 긴박한 뉴스이다.
새끼 양 같은 두 뿔 가진 미국이 용처럼 말할 때 (계13:11)일요일 휴업령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진 우리가 바다 모래위에선 용에게 이미 포위당하는 일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이 때 우리는 일어나 싸울 준비를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막연하게 앉아서 ‘일요일 휴업령이 온다고 했으니 오겠지’하면서 ‘그 때가 오면 짐승의 표를 거절해야지’하고 그냥 기다리고만 있을 것인가?
아니다. 일어나 준비하라는 경고가 주어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앉아서 기다리고 있다면 다 덫에 걸려들 것이다.
미국은 이미 용처럼 말하기를 시작했다.
다시 말해 남은 무리를 포위하는 일은 이미 시작되었다.
요한계시록 13장11절에 의하면 새끼 양 같은 두 뿔 가진 미국이 그의 원칙(정. 교 분리)을 포기하는 그 때에 용처럼 말하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현재 미국에 있는 개신교 단체들이 일요일 휴업령을 위해 연합하고 있으며 이 연합 단체가 국가의 도움을 입기 위하여 이미 정치와 손잡고 있음을 우리는 살펴보았다.
“그들(개신교 단체)이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열중하고 있는 동안 로마교는 그의 세력을 다시 구축하고 그의 잃어버린 최상권을 회복하기 위한 목적을 관철시키고 있다. 일단 이 원칙이 미국에서 확립되어 교회가 국가의 권력을 사용하거나 지배하게 되고 국법이 종교행위를 세속적 법률로 강요하게 되면, 다시 말해서 교회와 국가의 권세가 양심을 지배하게 되면 이 나라에서의 로마교의 승리는 확실해진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박한 위험을 경고해 왔다. 만일 여기에 유의하지 아니할 것 같으면 개신교계는 마침내 로마교의 진상을 알게 될지라도 그때에는 이미 너무 늦어서 그 올무를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이다. ”(대쟁투 581)
“일요일 운동(법령제정)은 현재 암암리에 진행되고 있다. 지도자들은 진정한 의도를 숨기고 있으므로 그 운동에 연합하는 많은 사람들은 수면하의 흐름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맹목적으로 일하고 있다. 그들은 ‘개신교 정부’가 그들로 자유로운 독립국가가 되게 하는 원칙들을 희생시키고 입법을 통하여 교황의 거짓과 기만을 퍼뜨리게 될 원칙들을 헌법에 집어넣을 것 같으면 암흑시대에 겪었던 로마교회의 공포에 빠지게 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마지막 날 사건들 125)
위의 증언의 말씀 가운데 의미심장한 말은 ‘개신교 정부’라는 말이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를 통해서 조지 부시는 ‘도덕성’과 ‘도덕 개혁’을 공화당의 이슈로 해서 재선되었다. 이들은 미국의 복음주의 기독교 세력과 사회적 보수 세력의 주장을 공화당의 이슈로 삼아 재선에 성공한 것이다. 우리는 이제 미국의 건국 이래 처음으로 탄생한 “개신교 정부”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예언의 성취인가?
한국의 언론을 대변하는 동아일보조차 “주님 뜻대로 부활한 청교도 정치”(2005. 3. 8)라는 제목아래 조지 부시의 재선 과정에서 어떻게 기독교 세력과 연대했는지를 특별기사로 다루고 있다.
[정치와 손잡은 교회 : 미국은 수정 헌법 2조에서 정치와 교회의 분리를 규정한 나라다. 그러나 정치와 교회의 이종교배는 이처럼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계기로 기독교적 생활 방식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또 공립학교에서 생명의 진화론과 함께 지적 설계론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지적 설계론은 생명체의 복잡한 진화현상은 초자연적인 절대자의 설계 없이는 힘들 것이라는 이론.
절대로 성경에서 인용하지 않고 순수 과학이론으로 ‘포장’해 자기주장을 내놓고 있기는 하나 복음주의자들의 목표가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이 같은 복음주의 기독교의 자신감은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동아일보 2005. 3. 8)
이러한 사실들을 볼 때 예언의 빛을 가지고 있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는 이러한 일들이 왜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야 하며, 곧이어 일요일 법령이 반포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미국 정부는 이제 정. 교 분리의 원칙을 깨고 개신교 정부가 된 것이다. 그러면 이‘개신교 정부’가 할 일이 무엇인가?
일요일 강제법령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 일례로 조지 부시는 미 연방 대법원에 공공장소에 십계명 비를 세우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이후 이미 공공장소에 십계명이 기록된 팻말들이 서 있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조지 부시가 거침없이 일요일 휴업령을 도모하는 행보를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또한 선지자는 공립학교에서 종교 교육을 하는 일이 있을 것에 대하여 그 분의 증언 속에서 말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이 많이 있다. 사업이 시작되고 경고를 받아야 할 많은 도시들이 있다. 전도자들은 일요일 법령문제와 공립학교에서의 종교 교육 문제로 사람들의 마음이 동요되는 모든 지역으로 들어갈 길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업의 발전이 방해를 받는 이유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이 이런 섭리의 기회들을 이용하기를 등한시하기 때문이다. ”(교회증언 9권 51)
[조선일보 26,400호에서 “초월적 존재에 의한 창조론 美서 교육 허용” 이라는 제목 아래 미국 캔자스 주 교육 위원회가 8일 진화론 대신 지적 설계론을 받아 들이는 공립학교에 과학 교육 과정을 승인했다고 CNN 방송이 8일 보도했다. (2005. 11. 8)
현재 캔자스 주 교실에서는 다윈의 진화론을 가르치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번 결정이 정.교 분리의 원칙을 어기고 공립학교에 신(神)과 창조론을 주입시키려는 시도라고 비난하고 있다.] 고 보도되었다.
공립학교에서의 종교 교육 문제는 일요일 법령 운동과 연결되어 있다.
이제 미국정부는 종교 자유를 주장하는 일부 정치인들과 국민들의 반대에도 아랑곳없이 성경이 예언한대로 곧이어 일요일 휴업령을 내릴 것이다.
일요일 휴업령은 미국에서 먼저 내려지고 온 세상이 미국의 모본을 따르도록 강요할 것이다. 그리하여 거짓 선지자 노릇을 하는 미국은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교황권)에게 경배하게”(계13:12) 하리라는 예언을 성취시킬 것이다.
이 때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제일 먼저 자신의 참 상태를 살펴야 하고 다시 회개 할 필요가 없는 회개의 경험에 들어가야 하며 하나님의 품성을 소유하는 참된 변화가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세상에 셋째 천사의 기별을 전파해야 할 때가 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계시록 13장에는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는 다 짐승에게 경배할”것이라고 말한다. 이제는 성도의 인내(계 14:12)가 아니면 통과할 수 없는 최후의 사건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나 자신이 먼저 세상의 부패케 하는 영향력에서 분리되는 경험을 하고 바벨론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서 이 사실을 폭로하고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계18:4)고 외쳐야 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은 하나님의 율법이 유린당할 때에 “울며 탄식하는 자”의 이마에만 쳐 질 것이다.
“그분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제자들에게 경고하시고 그 멸망이 가까워 오는데 대한 징조를 알려주시므로 그들이 도망할 수 있도록 하신 것처럼 그분께서는 세상의 마지막 멸망을 경고하시고 그 날이 가까워 오는 징조를 주셔서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날에 임할 진노를 피할 수 있게 하셨다..”(대쟁투 37)
“초기의 제자들처럼 황폐하고 적막한 곳으로 피신해야 할 시기가 멀지않았다. 로마군대의 예루살렘 성 포위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도망하라는 신호가 되었던 것처럼 이 나라(미국)가 권한을 받아 법령으로서 법왕권의 안식일(일요일)을 강요하는 것은 우리들을 위한 경고가 될 것이다.”(교회증언 5권 464-465)
필자는 마지막 예언들이 이렇게 분명하게 성취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이 책을 통하여 전해지는 기별을 대하는 모든 독자들이 다가오는 사건을 위하여 준비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천재지변과 일요일 휴업령
일요일 휴업령을 앞당기는 또 하나의 징조가 있는데 그것은 현재 바다와 육지에서 사단이 일으키고 있는 천재지변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므로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을 벗어난 이세상은 앞으로 사단의 활동 무대가 될 것이다.
현재 우리 주변에서부터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재난들은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이 이 지구로부터 점점 거두어지고 있는 확실한 징조이다.
2005년 8월 29일 미국 남부 지방을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사망자가 일만 명에 이를 수도 있고 경제적으로 300억 달러 이상의 피해가 났다는 보도가 있었다. 오십만명이 거주하던 뉴올리언스는 유령의 도시가 되었고 그 소용돌이 속에서도 살인, 강간, 약탈로 인한 인간의 죄악들을 보게 되었다. 이 재난은 미국 역사상 최대의 자연재해로 기록되고 있다. 그것은 여러 면에서 9.11테러 사건을 능가하는 피해와 상처를 미국에 가져 온 재난이었다.
사단은 이러한 재난들을 일으킴으로 사람들을 두려움과 공포의 분위기로 이끌면서 일요일 성수를 강요할 구실을 만들 것인데 이미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사단은 아직 준비되지 아니한 영혼들을 자기의 수확물로 거두어들이기 위하여 천재지변을 통하여 일한다. 그는 천연계의 비밀을 자세히 연구하여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 범위 안에서 천연계의 이변을 일으키기 위하여 그의 전력을 기울인다. 욥에게 고통을 주도록 허락을 받자 그는 얼마나 신속하게 양 무리와 가축들, 종들과 가옥들과 자녀들을 휩쓸어 버리고 순식간에 재난이 계속해서 일어나게 하였는가. 피조물들을 보호하여 파괴자의 손에서 지켜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계가 여호와의 율법을 무시하였으므로 주님께서는 하시겠다고 선언하신 바로 그 일, 곧 당신의 율법을 배반하고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가르치고 그렇게 하도록 강요하는 자들에게서 당신의 보호의 손을 거두시고 당신의 축복을 땅에서 철회하시겠다고 하신 그 일을 행하실 것이다. 사단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보호하지 아니하시는 모든 자들을 지배한다. 그는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어떤 사람들은 잘되고 번영하게 하며 어떤 사람들은 고통을 당하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을 괴롭게 하는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믿게 한다.
사단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모든 질병을 고쳐 줄 수 있는 위대한 의사인 것처럼 가장하지만 질병과 재난을 가져와서 마침내 인구가 많은 도시들을 파멸과 황폐 상태로 바뀌어 지게 한다. 그는 지금도 역시 활동하고 있다. 사단은 뜻하지 않은 사고, 바다와 육지에서 일어나는 재난, 큰 화재, 사나운 풍랑, 심한 우박, 폭풍우, 홍수, 회오리바람, 해일, 지진 등 수많은 방법으로 각 지역에서 그의 능력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다 익은 수확물을 쓸어버림으로 기근과 불행이 뒤따르게 한다. 그는 치명적 병독을 공중에 뿌림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질병으로 죽게 한다. 이러한 일은 점점 더 빈번하고 비참해져 간다. 멸망이 사람과 짐승에게 똑같이 엄습한다.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세상 백성 중에 높은 자가 쇠약하며 땅이 또한 그 거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사 24:4, 5).
그 때에 큰 기만자는 사람들에게 이런 재난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고 역설할 것이다.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을 자극한 부류에 속한 자들은 범죄자들에게 언제나 무언의 견책을 하고 있는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자들이 그들이 당하는 모든 재난의 원인이 된다고 비난할 것이다. 사람들이 일요일 안식일을 범했으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있다는 것과, 그 죄가 재난을 일으켰으므로 일요일 준수를 엄격하게 강요하기 전에는 재난이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넷째 계명의 요구를 가르침으로 일요일에 대한 존중심을 없애 버리는 자들은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자요 하나님의 은총과 세속적 번영을 막아 버리는 자들이라고 선포될 것이다. 그리하여 옛날 하나님의 종 엘리야가 받은 그 비난이 반복되고 똑같은 동기가 조성될 것이다. ‘엘리야를 볼 때에 저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 저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왕상 18:17, 18). 거짓된 무고로 말미암아 분노한 사람들은 반역한 이스라엘이 엘리야에게 취했던 것과 똑같은 태도를 하나님의 사자들에게 취할 것이다.” (대쟁투 589, 590)
파수꾼이여! 이제 나팔을 불어라!
지금은 최후의 전쟁을 위하여 준비하라는 파수꾼의 목소리가 크게 외쳐져야 할 때이다.
“교회와 국가는 오늘날 장래의 투쟁을 위하여 준비하고 있다. 개신교도들은 로마교도들처럼 일요일을 앞세우기 위하여 ‘변장’하여 활동하고 있다.” (교회증언 5권 449)
현재 미국에서 사회 복리를 위하여 도덕 개혁을 주장하는 천주교회와 개신교 지도자들이 연합하여 미국의 정치를 기독교 방향으로 돌리고 있는 이 운동이 일요일 법령을 선포하기 위한 운동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이 시대에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 즉 예언의 신의 빛을 가지고 있는 백성 외에 누가 또 있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마지막 성도들은 이 시대의 파수꾼의 사명을 완수해야 할 사람들로서 깨어 있어야 하고 예언을 부지런히 연구해야 한다.
현재 일요일 법령 운동은 변장하여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자!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7) 가까운 장래에 우리는 계명을 지키는 자들을 대항하는 개신교회들이 세상과 법왕권으로 더불어 연합할 때 이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볼 것이다.” (교회증언 5권 449)
선지자가 말한 이 연합은 현재 이루어지고 있으며, 마지막 전쟁은 이미 경보가 울려졌다.
“백성들은 현 시대의 위험들에 관하여 깨우침을 받을 필요가 있다. 파수꾼들은 잠자고 있다. 우리는 여러 해 뒤떨어져 있다. 파수꾼의 대장들은 스스로 조심해야 할 긴급한 필요를 느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위험을 깨닫도록 그들에게 주어진 기회들을 잃어버릴 것이다.
만일 우리 합회들에 속한 지도적인 사람들이 하나님이 그들에게 보내신 기별을 지금 받아들이지 않고 행동한다면 교회들은 큰 손실을 당할 것이다. 파수꾼이 칼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분명한 소리로 나팔을 불면 그 대열에 있는 사람들도 경고의 음성을 반향할 것이고, 모든 사람이 전쟁을 위하여 준비를 갖출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너무도 흔히 지도자는 서서 머뭇거리며 말하는 것 같다.
‘너무 서두르지 말자, 실수를 범할 수도 있다, 우리가 허보를 전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의 편에서의 이 같은 주저와 불확실 그 자체는 이렇게 부르짖고 있다. ‘평안하다 안전하다(살전 5:3) 흥분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이 종교적인 (법률) 제정 문제에 대하여 필요 이상으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이 동요는 모두 진정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이 보내신 기별을 실지로 부인하고 교회들을 깨우기 위하여 마련된 경고는 그 일을 하지 못하고 만다. 파수꾼의 나팔이 분명한 소리를 내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전쟁을 위한 준비를 하지 못한다.” (교회증언 5권 716)
“국가의 개혁자들이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령을 강요하기 시작할 때 우리의 지도적인 사람들은 그 사태에 대하여 깨어 있어야 했고 그 노력을 좌절시키기 위하여 열렬하게 활동했어야 했다. 빛, 곧 우리 백성들이 이 시대를 위하여 필요로 하는 그 현대 진리가 그들에게 비춰지지 않고 보존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셋째 천사의 기별을 전하고 있는 우리의 모든 목사들이 그 기별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사실상 이해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국가 개혁 운동을 크게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그렇게 한다면 심지어 그들이 셋째 천사의 기별과 별개의 문제에 대하여 시간을 바치게 되는 것으로 느끼기까지 되었다. 이 시대에 필요한 바로 그 기별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는데 대하여 주님께서 우리의 형제들을 용서해 주시기를 바란다.” (교회증언 5권 715)
“셋째 천사의 기별을 우리에게 깨우쳐 주는 예언들의 적용성을 증거해야 한다.” (가려뽑은 기별 2권 105)
“로마 군대의 접근이 제자들에게 있어서 임박한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징조가 되었던 것처럼 이 배교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의 한계가 이르렀고, 우리나라의 죄악의 잔이 찼고, 자비의 천사가 바야흐로 날아가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징조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때에 선지자들이 야곱의 환난의 때로 묘사한 그 고통과 난관의 장면으로 돌입할 것이다.” (교회증언 5권 451)
“끝이 가깝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깨어 있도록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지나가는 시간마다 미구에 우리 앞에 펼쳐질 큰 장면에서 한 몫을 담당하도록 지상에 있는 한 백성을 준비시키기 위하여 하늘 법정에서는 활동이 이루어진다.
우리에게 별반 가치 없이 자나가는 순간들이 영원한 유익에 있어서 중요하다. 그것들은 영혼들의 운명을 영원한 생명이 아니면 영원한 죽음으로 꼴 짓고 있다” (교회증언 5권 716)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하여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함이니라” (겔 3:17,7)
이 시대의 파수꾼들은 셋째 천사의 경고를 발해야 한다. 미국에서 짐승의 우상이 서고 있는 사실을 아는 파수꾼들은 이제 셋째 천사의 기별을 외칠 때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기별에 하나님께서 힘과 능력을 주실 것이다. 셋째 천사의 기별에는 늦은비가 동반된다.
“우리는 우리 인간의 목소리로 셋째 천사의 기별을 선포해야 한다.
그것은 능력과 영광으로 세상에 전파되어야 한다.” (목사와 교역자에게 보내는 권면 214)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겔 3:18, 19)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별을 분명하게 전해야 할 책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친애하는 독자에게: 나의 형제 자매들에 대한 책임감과 영혼들의 피가 내 옷에 묻지 않게 하려는 열망이 나로 하여금 이 글을 쓰게 하였다. ...
주님께서 처음에 당신의 백성들에게 전할 기별을 나에게 주셨을 때 그 일을 전하는 것이 내게는 무척 힘들고 두려운 일이어서 나는 어떤 사람들을 비탄에 빠지게 할까 두려워 그 기별들을 가능한 한 부드럽게 하곤 했다. 주님께서 그 기별을 내게 주셨을 때 그 기별들을 전파하는 일은 나에게 하나의 큰 시련이었고, 내가 계시 중에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이끌려 갈 때까지는 내가 그렇게도 불충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으며 그렇게 하는 것이 죄요 위험한 일임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분(예수님)은 나를 보고 얼굴을 찌푸린 후에 나에게서 그의 얼굴을 돌리셨다. 그 때 내가 느낀 두려움과 고뇌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나는 그의 앞에 엎드러져 한마디의 말도 하지 못했다. 아! 나는 그 무서운 표정을 피해 숨기를 얼마나 원했던지! ...
얼마 후에 천사가 나를 일으켰는데 그 때 내가 본 광경은 말로 다 묘사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한 무리가 내 앞에 나타났는데 그들의 머리는 흩어지고 옷은 찢어졌었고 그들의 얼굴 표정은 절망과 공포 바로 그것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가까이 와서 그들의 옷을 벗어 가지고 그것을 나의 옷에 비벼댔다. 그 때 내가 나의 겉옷을 보았더니 그것들은 피로 물들어 있었고 그 피가 아직 올 사이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나는 다시 동행하는 천사의 발 앞에 죽은 사람처럼 되어 쓰러져 버렸다. 나는 아무런 변명도 할 수 없었다. 나의 혀는 굳어 버렸고 나는 그 거룩한 곳에서 떠나게 되기를 바랐다. 다시 천사는 나를 일으켜 세우고는 “너의 앞에 지나간 이 광경은 지금 너의 상태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지만 만일 네가 주님께서 네게 보이신 것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기를 게을리한다면 네가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네가 끝까지 신실하면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고 생명강에서 생명수를 마실 것이다. 너는 많은 고통을 당해야 할 것이나 하나님의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일러주었다. 그런 후에 나는 그분의 칭찬을 받고 그분의 무서운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 그분이 내게 요구하시는 일을 모두 다 기꺼이 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초기문집 75, 76)
지금은 낭비할 시간이 없다!!
“우리는 한 백성으로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업을 완수하지 않았다. 우리는 일요일 준수를 강요하는 법령이 우리에게 가져다 줄 문제를 위하여 준비되어 있지 않다. 위기가 다가오는 징조들을 볼 때, 일어나서 행동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어떤 사람들도 조용히 앉아서 악을 관망하며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예언되어 있으므로 이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과,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보호해 주실 것을 믿는다는 뜻에서 스스로를 위로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양심의 자유를 보존하기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안히 앉아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매우 오랫동안 등한히 해 온 사업을 완수할 때까지 이 재난이 지체되도록 열렬하고 효과적인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어야 한다. 우리는 가장 열렬한 기도를 드린 다음에 우리의 기도와 일치되게 일을 하자.” (증언보감 2권 320)
“저들에게는 멸망해 가는 세상을 위하여 전해야 할 마지막 경고의 기별이 위탁되어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흘러나오는 놀라운 빛이 저들에게서 비치고 있다. 그들에게는 첫째와 둘째와 셋째 천사의 기별을 전파하는 가장 엄숙하고 중대한 사업이 맡겨져 있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사업은 없다. 저들은 다른 어떤 것에 의해서도 그들의 관심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과거에 어떤 인간에게도 결코 위탁된 일이 없는 가장 엄숙한 진리를 전하는 일이 우리의 사업이 되어야 한다. 이 세상은 경고를 받아야 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은 저들에게 위탁된 의무에 충실하여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내리고서야 비로소 죄인에게 심판을 피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자 기다릴 것인가?” (복음전도 1권 152)
“안일함에 젖어 있는, 말하자면 잠들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일요일 준수를 강요하는 일이 예언되었다면 그 법령은 확실히 제정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결론을 내린 후 그들은 하나님께서 환난의 때에 당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실 것이라는 생각으로 자위하면서 그 사건이 일어나기를 조용히 기대하면서 앉아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당신께서 우리에게 책임 지워 주신 일을 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실 것이다.” (마지막 날 사건들 127)
“나는 현대 진리의 부족으로 죽어가는 불쌍한 영혼들과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사업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제공하지 않으므로 그들이 멸망에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때 나는 그 광경을 보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천사에게 그 장면을 보지 않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나는 천사에게, 세상을 사랑하고 그들의 재물에 몰두해서 그것에서 기꺼이 돌아서지 못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해 달라고 애원하였으며, 기별을 전하는 자들이 영적 양식의 결핍으로 죽어가는 굶주린 양들을 먹이기 위하여 헌신하게 하시고 그들의 사명을 속히 이행하도록 해 달라고 간구하였다.
나는 하나님의 사업이 저들의 재산을 필요로 할 때 예수님을 찾아왔던 그 젊은 관원(마 19:16-22)처럼 그들이 근심하여 돌아서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재앙이 내려 그들의 모든 소유를 쓸어버렸다. 그 때에는 지상의 재물을 드려 하늘에 보물을 쌓기에는 너무 늦게 될 것이다.” (초기문집 48)
“현대 진리를 믿는다고 공언하는 자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관리하라고 맡겨 주신 소유를 기별을 전하는 자들에게 그처럼 적게 투자하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인간을 위하여 그의 생명을 나누어 주시기까지 깊은 사랑을 보이신 고난당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보였다. 한편, 그분을 믿는 자들이라고 공언하는 자들, 곧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구속 사업을 돕는 일에 쓰기를 몹시 아까워하는 자들의 생애가 내 앞에 전개되었다.
‘이러한 자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하고 한 천사가 묻자, ‘아니다 결단코 들어 갈 수 없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업에 무관심한 자들은 하늘에서 구속의 노래 곧 사랑의 노래를 결코 부를 수 없을 것이다.’ 라고 다른 천사가 대답하였다.
나는 하나님께서 이 지상에서 하고 계시는 그 사업이 의로운 중에 속히 마쳐져야 할 것과 기별을 전하는 자들이 흩어진 양떼를 찾으러 빨리 돌아 다녀야 할 것을 보았다.
‘모두가 다 사자인가?’ 라고 한 천사가 묻자, 다른 천사가 ‘아니다, 하나님의 사자들은 기별을 가지고 있다.’라고 대답하였다.” (초기문집 50)
“나는 사단이 그의 천사들에게 특별히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면서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키고 있는 자들을 목표로 하여 덫을 놓으라고 명하는 것을 보았다. 사단은 그의 천사들에게 교회들이 졸고 있다고 말했다... ‘너희들은 가서 토지와 돈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을 근심의 사슬로 매어 놓도록 하라. 만일 너희가 저들을 이러한 물질들로 미혹할 수 있다면 저들은 우리 편이 될 것이다. 그들은 아마 그리스도의 왕국이 이룩되고 우리가 미워하는 진리가 전파되는 것보다도 돈에다 더 관심을 쏟고 그것을 더 기뻐할는지도 모른다. 그들 앞에 세상을 사랑하고 우상화하게 하라. 우리는 우리가 관리할 수 있는 모든 재물을 우리 편에 쌓아 두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그의 사업에 재물을 더 많이 투자하면 할수록 우리의 왕국은 더욱더 훼손 될 것이다.
그들이 각 처에서 집회들을 가질 때 우리는 위태롭다. 그러므로 신중히 살펴야 한다. 할 수 있는 대로 방해를 놓고 혼란을 일으켜라. 서로 사이의 사랑을 파괴시켜라. 그들의 목자들에게 실망과 낙담을 안겨 주라. 우리는 그들을 미워한다. 재물을 가진 자들에게 그들이 그것을 내어 놓지 않도록 갖가지 그럴듯한 구실을 만들어 주라. 너희가 할 수 있는 한 재물에 관한 문제들을 지배하여 저들의 지도자들이 경제적 궁핍으로 실망하도록 하라. 이 일은 그들의 용기를 꺾고 열성을 약화시킬 것이다. 한 치의 영역도 물러서지 말고 싸우라. 세상적인 물질을 사랑하고 탐욕을 부리는 것이 그들의 성격에 있어서 지배적인 경향이 되게 하라. 이러한 경향이 저들을 지배하는 한 구원과 은혜는 그들에게 대수롭지 않게 될 것이다... 누가 재물을 바치고자 하거든 그것을 아까워하도록 인색한 마음을 불어 넣어라.’
나는 사단이 그의 계획들을 잘 수행해 가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의 종들이 집회로 모일 때 사단은 그의 부하들과 같이 그 사업을 방해하려고 나타난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 가운데 끊임없이 나쁜 암시들을 불어 넣고 있다... 만일 그들이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사단은 그들 속에 기반을 잡게 되고 그의 모든 권능으로 그들을 범하기 쉬운 죄에 빠지도록 할 것이다.” (초기문집 270)
이 얼마나 무서운 사단의 음모가 남은 무리들을 삼키려고 준비하고 있는가? 지금 우리는 사단이 펼쳐 놓은 그물에 걸려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한다. 현대 진리의 빛이 탐욕적이고 이기적인 감정을 녹여 완전한 승리를 얻지 못한다면 사단이 유다의 이기적인 마음을 틈타 그를 멸망에 빠뜨린 것처럼 남은 무리들을 공격할 것이다.
“영혼들의 운명이 영원히 결정될 그 날이 가까웠다. 이 주제를 사람들 앞에 제시하는 데는 많은 수고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 엄숙한 사실, 즉 주의 날이 갑자기 예기치 않게 올 것이라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 앞에 뿐 아니라, 우리 교회들 앞에도 역시 제시해야 한다. 그 두려운 예언의 경고는 각 영혼에게 전파되어야 한다. 아무도 자신이 놀랄만한 위험이 없이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어느 누구의 예언 해석도 이 거대한 사건이 아주 가까이 왔음을 보여 주는 사건들을 앎으로써 얻게 된 확신을 그대에게서 빼앗지 못하게 하라.” (그리스도인 교육의 기초 335)
“조만간에 온 세상에는 환난이 있을 것이며, 우리에게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 (대쟁투 639)
“우리는 이 지구 마지막 단계에 살고 있다. 예언은 성취되어 가고 있다. 얼마 안 있어서 그리스도께서는 권세와 영광으로 재림하실 것이다. 우리에게는 낭비할 시간이 없다. 열렬한 경고의 말씀으로 기별을 외쳐야 한다. 주님께서는 오신다. 그대의 머리를 들고 기뻐하라. 우리는 여호와의 큰 날을 위하여 예비해야 하므로 분명한 나팔 소리를 내어야 한다... 우리 앞에 전개될 큰 사건들을 기대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의 맥박이 빨리 뛰고 있지 않은 자가 있을까?
주님께서는 오신다. 우리는 그 날을 위하여 사람들을 예비시키는 일에 우리가 맡은 책임을 다함으로 주님을 위하여 길을 예비해야 한다.... 오늘날 성취되어야 할 사업은 너무도 실제적인 사업이며, 진리는 너무도 의미가 큰 진리이다... 이 때를 위한 기별이야 말로 절대적이며 단순하고 가장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기별을 믿는 사람처럼 행동해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다리고, 깨어 있고, 일하고, 기도하고, 세상을 경고하는 일이다... 인자의 재림에 대한 문제는 사람들 앞에 항상 제시하여야 할 놀라운 주제가 되어야 한다. 이 문제야말로 우리 설교에서 빼 놓아서는 안 된다. 영원한 실체가 정신적 안목에 언제나 머물러 있어야 한다. 인치는 시기는 매우 짧으며, 곧 지나갈 것이다. 지금 네 천사가 바람을 잡고 있는 동안 바로 우리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할 때이다.” (복음전도 6장 중에서)
“그분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제자들에게 경고하시고 그 멸망이 가까워 오는데 대한 징조를 알려 주심으로 그들이 도망할 수 있도록 하신 것처럼 그분께서는 세상의 마지막 멸망을 경고하시고 그 날이 가까워 옴을 알려 주는 징조를 주셔서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 날에 임할 진노를 피할 수 있도록 하셨다... 그분의 강림의 징조를 보는 사람들은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마24:33)알 것이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막13:35)고 경고하신다.” (대쟁투37)
그러므로 항상 깨어 있으라
항상 깨어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마태복음 25장 1-13절에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린다고 자칭하는 두 부류의 사람들을 비유로 기록하고 있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다 신랑을 맞이하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신랑이 오자 한 부류의 사람들은 기쁨으로 신랑을 맞이하였지만 다른 한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내가 너희를 알지 못 하노라”는 가장 슬픈 운명의 선고가 주어졌다.
이 두 부류의 차이는 무엇인가?
항상 깨어 기다리는 슬기 있는 처녀들은 어떻게 반응하였는가?
“불이 켜진 등을 가진 다섯 처녀는 그 무리와 합세하여 그 행렬과 함께 집에 들어갔다.” (실물교훈 406)고 선지자는 기록하고 있다. 항상 깨어있는 사람들은 주어진 빛에 순종하는 사람들로서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최후의 기별이 전해질 때에 그 기별을 받아들이고 행동한다.
“비유에서 하늘의 신랑을 기다리는 사람들 모두가 주께서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잔 것으로 나타나 있지만 슬기 있는 자들은 그분의 오실 때가 가까웠다는 기별을 듣고 잠에서 깨어나 그 기별에 응답하였다. 그들의 영적 식별력이 다 없어진 것은 아니었으며 그들은 일어나 그 대열에 참여하였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꼭 붙들었을 때 그들의 신앙적 경험은 활기가 있고 풍성하여 졌으며, 그들의 애정은 위에 있는 것들에 고정되었다. 그들은 도움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았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였다. 그들은 성령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마음을 열어 놓았고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의 마음에서 흘러 나왔다. 그들은 등잔의 심지를 자르고 손질을 해서 불을 붙여 도덕적 흑암에 싸여 있는 세상에 한결같은 빛을 보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마음에 은혜의 기름을 가졌기 때문이었으며, 그들의 주님이 그들 앞서 행하신 일, 곧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는 일을 하려고 나아갔기 때문이었다.”(사인즈 1910. 6. 28)
이러한 사람들이 진실로 깨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미련한 처녀로 비유된 사람들은 옛날 유대인들처럼 진리를 아는 것으로 의를 이루었다고 착각하면서 자신의 참 상태를 알지 못하고 막연한 구원을 기대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미련한 처녀로 대표된 계급은 외식하는 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진리를 존중히 여기고 진리를 옹호해 왔다. 그러나 저희는 성령의 역사에 순종하지 않았다. 그들은 반석 되시는 예수님 위에 떨어져 옛 성질을 깨뜨리려 하지 않았다.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니... 그들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친밀히 사귀지 못했으므로 하늘나라의 방언을 알지 못하며 하늘의 기쁨도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성령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만을 아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성령의 감화가 없는 진리의 이론만으로는 사람의 심령을 깨우치고 마음을 심화시킬 수 없다. 우리가 비록 성경의 말씀과 약속들에 정통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이 진리를 깊이 깨닫게 하지 않을 것 같으면 우리의 품성은 변화되지 않을 것이다. 성령이 우리 마음을 밝혀 주지 않을 것 같으면 사람들은 진리와 오류를 분간할 수 없게 될 것이며 저희는 사단의 교묘한 시험에 빠지게 될 것이다.”(실물교훈 29장 중에서)
예루살렘의 멸망은 장차 이 세상의 종말에 일어날 일에 비교하면 희미한 그림자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보내시는 모든 경고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억제하시는 신이 떠나실 때 사단의 통치의 결과가 숨김없이 완전히 드러날 것이다.
예수께서는 마지막 시대를 내다보시고 예루살렘을 멸망으로 이끌어 간 그 같은 속임수에 온 세계가 속아 넘어가고 있는 것을 보셨다. 유대인들의 죄는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것이었고 그리스도교계의 큰 죄는 천지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정부의 기초가 되는 율법을 배척하는 것이 될 것이다. 죄에 속박되어 사단의 종이 된 무수한 자들이 둘째 사망에 처할 운명에 놓여 있으면서도 권고하시는 날에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자 아니할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맹목이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하늘의 대 주재께서 눈물을 흘리셨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마음이 상하셨고 고민하셨다. 그 광경을 보고 온 하늘은 놀랐다. 그 광경은 죄가 얼마나 사악한 것임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무한한 권능으로도 죄인을 하나님의 율법을 깨뜨린 결과에서 구원해 내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나타내 준다. (대쟁투 1장 참조)
미련한 처녀들은 예수님을 문 밖에 세워두므로 성령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성령의 변화시키는 은혜의 경험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지식이 없는 교회가 아니다.
지식적으로는 아무리 많이 알고 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지 아니하므로 토해 내침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일찍이 인간에게 들린 모든 말 가운데 가장 슬픈 말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고 하는 운명의 선고일 것이다. ”(실물교훈 413)
지금 우리는 어느 편에 속한 사람들인가?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은 부주의한 신앙이 아니며 단순한 지적 찬동이 아니다. 깊이 뿌리가 박히고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삼으며 모든 애정을 그에게 두게 하며 자신의 지식이 성령의 지배를 받게 하고 자신의 품성이 거룩한 품성을 따라 형성되게 한다. 그의 신앙은 죽은 신앙이 아니며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아름다우심을 바라보게 하고, 거룩하신 품성과 동화되게 한다.”(가려 뽑은 기별 1권 391)
성령은 그들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을 심어줌으로써 사람들 속에 하나님의 속성을 개발시켜주신다. 우리는 잠에서 깨어 기별을 받아들인다는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한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에 관해서 알아야한다. 지금우리는 하늘에서 마지막 조사심판이 베풀어지고 있는 때에 살고 있다. 깊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자신의 상태를 살펴야 할 때이다. 주님은 곧 오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닮은 백성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기 위하여 오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