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주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명수를 제공하셨을 때와 똑같은 사업을 아직도 추진시키고 계신다.
예수를 따르는 자라고 자칭하는 자들이 혹시 버림받은 자들을 멸시하고 피할 수 있을 것이나 문벌이나 민족의 환경도,
생활 조건도 예수의 사랑을 인류의 자녀들에게서 돌이킬 수 없다. 예수께서는 아무리 죄악적이라 할지라도 각 영혼에게
네가 만일 나에게 구하기만 하였으면 내가 네게 생명수를 주었으리라고 말씀하신다.
복음의 초청을 상류 사회의 소수인, 곧 우리의 생각에 그들이 그 초청을 받아들이면
우리에게 영예가 되리라고 여겨지는 자들에게만 국한시켜서 제시해서는 안 된다. 이 기별은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한다.
어디서나 사람들이 진리를 받으려고 마음 문을 연 곳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가르치시려고 대기하고 계신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와, 마음을 읽으시는 그분께 가납되는 예배를 드러내신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자들을 위하여는 비유를 사용하지 않으신다. 그들에게는 우물가의 여자에게 하신 것과 같이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야곱의 우물에서 쉬기 위하여 앉으셨을 때에 그는 당신의 전도봉사가 거의 열매를 내지 못했던 유다 지방에서
돌아오시던 길이었다. 예수께서는 제사장들과 랍비들에게 거절을 당하셨으며 심지어 당신의 제자라고 고백하던 사람들까지라도
그의 신적인 신분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는 기진하시고 피곤하셨다. 그러나 그는 한 여자요, 그나마도 이방인이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외인이요, 공공연한 죄 가운데 살고 있는 그 여인에게 말씀할 기회를 소홀히 하지 않으셨다.
ㅡ시대의 소망 19장 중
♡ 예수님의 전 인류에 대한 크신 사랑이 제게도 있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