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이 깨우침 받는 것은 논쟁이나 토론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쳐다보고 살아야 한다.
니고데모는 그 교훈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마음에 간직하고 돌아갔다. 그는 성경을 새로운 방법으로 연구하였으니
곧 이론을 변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명을 얻기 위하여 연구하였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복종시켰을 때에
그는 하늘나라를 보기 시작하였다.
니고데모처럼 우리는 죄인의 괴수로서 동일한 방법으로 즐겨 생명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스도밖에는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 그러나 믿음이 우리의 구주는 아니다. 그것은 아무런 공로도 주지 못한다.
믿음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붙잡고, 죄의 치료제인 그의 공로를 힘입는 손이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회개조차 할 수가 없다. 성경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이스라엘로 회개하게 하사 죄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행 5:31).
용서가 분명히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것처럼 회개도 그리스도에게서 온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가 있는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린 바 되었으니 뱀에게 속고 물린 자마다 쳐다보면 살수 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
ㅡ시대의 소망 17장 중
♡ 부지런히 말씀을 연구하여,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