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고전 9:25)
"우리 앞에는 이 영광스러운 경주가 있다. 사도 바울은 우리를 고무시켜서 고상한 경쟁에 돌입하게 하려 한다. ...생명의 면류관을 놓고 하는 이 경주에서 우리는 「모든 영적 신경」과 「근육을 다 사용」해야 한다.” (manuscript74).
“모든 영적 신경과 근육을 다 사용”해야 할 중대한 레이스에서 마귀는 반칙을 쓰고 있습니다. "오직믿음, 오직은혜"의 피켓을 들고 다니며 네가 뛰는 게 아니라며 주자들의 손발을 묶어 주저 앉히고는 자신은 저 멀리 앞서 달려갑니다.
'오직 믿음, 오직 은혜'는 루터처럼 돌계단을 무릎터지도록 기어오르는 사람들이 감격하며 알아듣지만, 이미 넓은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은 이 진리를 일하지 않을 핑계로 삼아 버리고 맙니다.
우리가 "오직 믿음" 의 피켓을 들고 욕먹지 않을 방법, 인기 얻을 방법을 찾고 있는 동안
신천지와 안상홍 증인회와 온갖 이설집단은 거리로 집으로 학교와 일터로 침투하여 온갖 비난과 지탄에도 아랑곳 않고 자기백성을 유유히 '추수해' 가고 있습니다
욕먹지 않으려고 그 납치의 현장에 바른 길을 알리는 표지판 하나 못세우고...
노아가 미치광이로 욕먹지 않았다면 어떻게 기별이 세상 끝까지 소문이 났을까? 위기의 때에 노아가 감성적인 설교로 서로 사랑하자며 중립을 지켰다면 기별은 사람들의 동기를 시험하는데 변별력이 없었을 것이며 결국 방주안은 거짓회심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예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왜곡된 외침이나 소수자 인권을 무시하는 듯한 “동성애 반대집회” 때문이 아니라 진리가 공격받을 때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며 가만히 있는 것 때문에 실추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이 짓고 있는 죄 중에서 그 어떤 죄보다도 진노하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위급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신앙적 위기에서 무관심과 중립은 하나님께 무거운 죄로 받아들여지며, 하나님께 대한 최악의 적대감과 같다.” (3Testimonies 281)
설교의 감동이 의무를 대신할 수 없고 성경연구 모임의 깨달음이 책임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의무는 무엇이고 책임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안락한 쇼파에 앉아 리모콘으로 뉴스속보를 돌려보다가 재림을 맞이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재림의 때에 성령께서 지도하시는 의무의 현장에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