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여러 다짐들과 구호와 표어와 주제성구, 계획과 전략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리고 1년이 다 지나갈 즈음에는 여기저기서 자성과 후회와 반성의 소리가 쏟아져 나오는 ... 영원히 반복될것만 같은 이 패턴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아쉬운 마음으로 문자적 정답을 열거해보며 현실, 현장의 정답이신 예수님을 다시 붙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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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형식주의)은 가장 단순한 예배의 형식과 가장 건전한 교리 아래서도 「침투해 들어가는 비결」을 알고 있다. 이것을 방지하고자 만든 엄격한 법규와 교회의 장정(章程;charter, 구호, 집단의 결의, 잘해보자는 다짐, 계획,단합대회)도 이것의 침입을 막지 못할 것이고 심지어 이것이 숨어있는 장소마저도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사도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계속적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길 외에는 어떤 것으로도 그것을 방지할 수 없다.
인간의 심령 속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은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계속적으로 나오는」 언제나 「새로운 성령의 능력」으로 지탱된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것이 참된 전통주의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기 개인의 믿음의 공효가 바울을 오류에서 안전하게 지켜주고 의식적으로 지적으로 복음에 충성하게 해 주었다”
(G. G. 핀들레이, 갈라디아서 주석 42,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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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안에 사는 것:
안보이는 것이 보이는 것처럼,
못 가진것을 가진 것처럼,
빈손이지만 잡은 것처럼 사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안 이뤄지는듯이 보여도 일하며 감사하며 자족하며 의지하며 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지 아니한 것이 죄입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보이는 것만, 잡히는 것만, 될 만한 일만 찾아다니는 합리적, 전략적 선택을 하는 것이지요.
믿음은 안보이는 것을 선택합니다.
믿음은 아직 못 가진 것을 선택합니다.
선택해봐야 손에 쥐어지지 않는데도 그것을 선택합니다.
믿음은 제일 볼 품 없는 것을 취하고 안될 것 같은 일만 벌입니다.
그러나 나의 냉철한 이성과 전략과 판단과 경험은 믿음을 용도 폐기합니다.
그래서
홍해앞에서는 다리를 건설할 것이며 광야길에는 직선고속도로를... 가나안 접경에서는 최신 무기를 도입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을 필요도
하나님께 심지어 물어볼 필요도 없게 만듭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물어보지 않게 만드는 것은 내 안에 오랜세월 세상의 학교에서 배워온 지식, 판단 전략적 사고방식, 이미 뭔가에 길들여진(?) 창의력
그러나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내고 약속돼있으나 아직 성취되지 않은 일을 계획해 낼 것입니다.
갈렙과 여호수아의 전략은 '어떻게든 되겠지'식의 근거없는 낙관주의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전략은 확고했고 치밀했습니다. 빈틈이 없었습니다.
그 확고함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고 있었고 그 약속과 약속하신 분을 하늘이 두쪽 나도 믿는 믿음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이 근거는 인간의 이성과 과학적 데이터와 오염된 창의성과는 비교가 안됩니다.
그들의 믿음은 미신적이지 않았습니다.
약속하시지 않은일도 무조건 '잘될거야' 낙관하는 초긍정, 몰합리, 몰지각이 아니었습니다.
약속을 철썩같이 믿음으로,
말씀하신 바를 확고히 믿는 믿음으로 짜내는 전략이었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약속에 근거한 믿음으로 치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