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대로」 「올라가서 얻으라」” (신1:21)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민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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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명령 -「올라가서 얻으라」
갈렙의 발언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갈렙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그대로」 말했다.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화이팅”을 외치는 긍정적 사고가 아니였다. “인생 만사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인생철학도 아니었다. 자신감, 자존감이 회복되면 갈등이 해소된다는 심리이론도 아니었다.
단순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말했다. “그 땅을 취할 수 있다” 가 아니라 “그 땅을 취하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의 믿음은 두고두고 회자되는데 그 비결은 바로 그것이었다.
12정탐꾼의 이야기는 흔히들 설명하듯 ‘긍정적 사고’ VS‘부정적 사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이야기는 ‘말씀이 있는자’vs’말씀이 없는자‘ 의 결정적 차이를 대조시키고 있다.
성경의 인물들은 ‘긍정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아니다. 엘리야는 우울증에 걸려 죽게 해달라고 애원했고, 모세는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보낼만한 사람을 보내소서’ 손사래를 쳤고, 예레미야는 소심했고 요나는 매사에 부정적이었고 베드로는 쉽게 흥분하고 말만 앞세웠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들은 전진했다. 그들의 비결 또한 갈렙의 비결과 같았다.
말씀 그대로를 받은 것. 선천적으로 낙천적, 긍정적 성격을 물려받은 사람, 또 부정적이고 신중한 성격을 물려받은 사람, 그 어떤 성향의 사람에게도 유불리가 없다.
말씀을 받아들이기 위해 먼저 마음을 긍정적으로 수양, 훈련해야한다고 믿게 만드는것은 진화론적 복음, 변장한 불신의 모습이다...
믿음의 조상들이 자신의 선천적 기질에 관계없이 마음의 변화를 얻게된 것은 말씀을 받은 결과였다. 정신 수련, 마음 다스림, 긍정적 사고훈련의 결과가 아니었다.
오늘날 많은 종교들이 정신수련을 말하며 또는 과학이라 일컬어지는 전문영역에서도 마음을 들여다 보고 내면의 깊은 자아를 만나라 한다. 그러나 성경은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자아)”이기에 “자아를 부정하라”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으라" 고 역설한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의 상처, 결점, 더러움을 그대로 예수께 가져오라고 말씀하신다(이사야55:1)
서로 상반된 말을 한다. 상반된 가르침은 반드시 상반된 목적지로 이끈다.
자아를 불신하는 길vs자아를 신뢰하는 길, 그 끝에 무엇이 있는가?
자아를 불신하는 가운데 말씀만을 신뢰하는 길, 자아를 긍정하는 가운데 자신의 의견과 잠재력을 신뢰하는 길, 그 길 끝에 무엇이 있는가?
갈렙과 여호수아 외에는 약속의 땅에 아무도 들어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