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날마다 위로 받고 싶다.
그런데, 내 마음을 훤히 다 보아도 정죄하지 않으시며, 소문날까 두렵지 않으며,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나의 모든 허물을 다 용서해 주시고 고쳐주시는 하나님께만 위로를 받고 싶다.
그 분을 잘 알지 못했을 때에도 막연하지만, 간절하게 그분께 위로받고 싶었다.
그리고, 이천년 전 십자가 위에서 이미 나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 놓으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임으로 용서 받은 자로서 나는 위로를 받았다.
그런데도, 나는 날마다 위로 받고 싶다.
왜냐면 죄인이기 때문이다. 나는 죄 자체이다. 이것을 깨달았을 때,
유일한 의인되신 예수님과 같이 되고 싶었다.
예수님은 감춰지고 드러나지 않은 나조차도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숨겨진 죄들이 드러나는 환경 속에 나를 두신다.
그러면서 드러난 죄를 깨닫고 회개케 하시며 그 죄악을 버릴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시고
자아의 속절없는 무가치함을 일깨워 주신다.
나는 죄가 원통하다, 처음부터 죄인으로 태어났고, 죄인으로 길러졌다.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사40:27)
이것은 내 마음이었다. 나는 가망이 없었다.
“너는 알지 못하느냐, 듣지 못하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 하시나니”(사40:28-29)
그러나 무한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가망 없는 나를 수리하여 주신다고 약속해 주셨다.
그 약속의 표징으로 안식일을 주셨고 이제는 그 약속을 기억함으로 나는 끝없는 위로를 받는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1:4)
나에겐 고침받을 기쁨의 소망이 있다.
고침받을 자로서 또한 고침받은 자로서 슬픔과 고통 속에 애통해 하는 자들에게
내가 걸어온 길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여주길 원한다.
바로 이 말씀이 나에게 약속을 주셨고 성취시켰다고.....
바로 이분이 나를 죄로부터 구원해 주셨다고.....
구주께 인도하는 도구로 쓰임을 받고 싶다.
나는 나와 같은 슬픔에 젖은 자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됐고,
아직 위로를 발견하지 못한 자들을 위한 기도를 내 입술에 두시길 원하며,
예수님의 마음을 내 가슴 속에 두어 주시길 소망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 도다”(고후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