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된 신앙인들에게
“많은 사람들은 저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떠나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으며」 또 자기 자신과 죄에 대하여 종이 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같은 상태를 「개선하고자 애를 쓰고 있으나」 저희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지는 않는다.」 ... 그들은 막연하게 저희의 결함을 시인하나 그 죄를 「낱낱이 구별하여 버리지는 않는다」” (Object Lesson48)
그동안 들은 게 많고 배운 것도 많기에 뭐가 문제인지 안다. 그래서 막 살지 않는다. 경계선을 쳐 놓고 넘어가지 않는다. 성경공부, 교회활동, 기도모임 찾아다니며 자기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애쓴다.
돈도 내놓고, 봉사의 손도 내놓고, 시간도, 열정도 내 놓는다. 그러나 차마 자기 자신을 다 내 놓지는 못한다.
“나는 죄인이야” 입버릇처럼 죄를 시인한다. 그러나 차마 그 죄를 낱낱이 버리지는 못한다.
왜 다 꺼내놓지 못하는가?
한곳에 다 꺼내놓는, 하나에 다 걸어버리는 리스크가 두려운 나머지 여기에 조금, 저기에 조금 '분산투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도 조금, 저기에도 조금"
마치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처럼 말씀의 씨앗옆에 나란히 뿌려진 다른 씨앗들... 즉, 생활에 대한 염려, 미래의 이익을 위해 세워둔 복잡한 계획들, 즐겁고 평탄한 삶에 대한 애착 등 ...
이런 방식으로 나란히 분산투자된 말씀의 씨는 이내 말라죽는다
우리 다분히「신앙적」이지만
모든걸 내놓는「신앙」에서는 멀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계 3:17)
"그들이 전혀 잘못되어 있는데도 스스로 옳다고 확신하는 것보다 더 큰 기만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에 자리잡을 수 있을까! 참된 증인의 기별(계3:17)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비참한 기만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그 기만을 알지 못함을 보여 준다."
"예수께로부터 한줄기의 빛도 받지 못하면서 스스로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부하는 자들이 많이 있음을 보았다." (3T 253)
정말인가?
이렇게 많이 알고 많이 행하는 우리가 한줄기의 빛도 못받고 있다는게 정말인가?
정말이 아니라면 이런 기록들은 누구에게 적용되는 말씀인가?
하나님께서는 「죄를 버린 사람의 죄」만 도말하실 수 있으시다.
하나님께서는 「자아를 버린 사람의 자아」만을 새롭게 하실 수 있으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