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우리는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사단의 지배」를 받게된다"(2보감15)
두개의 메뉴
1.성령의 지배
2.사단의 지배
아무도 안 선택할 수 없다
세계 어디를 가도 어느 상황에서도 메뉴는 똑같다
온 인류는 둘 중 하나를 반드시 선택한다
이것은 단순히 교회를 다니느냐 안 다니느냐를 가르는 선택이 아니다
왜냐면 이 메뉴판은 교회내에서도 주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선택이 가장 헷갈리게 제시되는 곳은 교회이다
"미련한 처녀로 대표된 계급은 외식하는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진리를 존중」히 여기고, 「진리를 옹호」해 왔으며, 또 「진리」를 믿는 사람들에게 「매혹」되었다. 그러나 저희는「성령의 역사에 순종」하지 않았다"(실물411)
1번 메뉴를 선택하고도
성령의 지배를 받지 않고도
진리를 존중하고, 옹호하는 가운데, 얼마든지 옳은 일을 할 수 있다.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세상의 지배자, 사단은 신자들이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는 것 외엔 아무것도 두려워하는 것이 없다. 우리 머리 꼭대기위에 있다.
오히려 그는 종교적 열심에 더욱 불을 붙여 분주하게 봉사하고 일하게 만들고 성과도 나오게 만들어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 라며 사례발표도 하고 다니게 만든다.
생각해보라
분주한 활동과 일궈낸 업적들이 교회와 교인들의 간판이 되고 자랑이 되고 있다면 그 교회와 개인은 2번 메뉴를 선택하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분주한 활동과 또는 외적 성취가 있을지라도 그것이 만족이나 자랑이 되지 않고 신자들이 계속 목마른 상태라면...
그래서 분주한 활동속에서도
계속 갈급한 마음들이 기도회로 말씀연구 모임으로 모이는 교회라면
1번 메뉴를 선택하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내가 해낸 선행이나, 교회가 이뤄낸 업적이 제 아무리 위대하다해도
'오직 영혼의 전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예수님 뿐' 이라는 자각 상태,
그것이 라오디게아 시대에 희귀해진 참된 경험이다
우린 고도의 기만속에 살고 있다
분별해야한다
분별의 기준은 외적성과나 화려함이 아니라 이것이다
"나는(내 교회는) 성령의 지배를 받고 있는가?"
"그 어떤 프로그램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예수를 향한 갈급하고 목말라 있는 심령이 있는가?"